이 누리 떠날 채비를

조회 수 2114 추천 수 0 2010.03.20 09:30:57

 

이 누리 떠날 채비를

                                                                박영호

 아끼는 게 많지만 그 가운데도 몸이 으뜸

자나 깨나 못 잊고 챙기는 건 내 몸이련만

숨지면 나무토막보다도 못한 더러운 송장일 뿐

이 엄청난 일을 아무 일 없는 듯 시치미를 뗀다

알리지 않고 때 없이 덮치는 죽음이란 갈림길

언제나 떠날 채비를 단단히 갖추고 있어야

뉘우침 없는 삶을 살고서 기쁘게 돌아가리

없던 게 있어 다시 없어지는 이 목숨 뭔지 몰라

 

다르다 다르다 해도 삶고 죽음만큼 다른 건 없다

살까워 하던 살붙이도 죽으면 전연 모르게 되고

살아보겠다고 모으던 재물도 몽땅 내 버리게 된다

예고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할 채비를 해야지

마음 쏟던 피붙이와 정 떼기도 미리미리 익히고

모은 재물도 이웃에 나누어 줘 버릴 줄도 알아야

정을 다 떼면 죽을 때 눈물 흘릴 일도 없을 것이고

멀리 떠날 때는 다 버려 짐 쌀 걱정 없단 말 뜻 알리

 

몸나의 짐승살이는 눈 뜨고서 꿈꾸는 것임을 알면

두려워 피하려던 죽음 고개도 사뿐히 넘어 가리니

제나 없어지면 하느님의 생명인 얼나로 솟나진다

이것을 깨달음이라 솟남이라 가르쳐온 말씀인데

참나인 얼나 깨달으면 하느님 아버지 만나게  되

이 세상에 다녀가는 일 끔찍히도 고달프고 싫었으나

떠나는 자리에서 돌이키면 고마운 생각만 남아

그리고 그리던 하느님께 얼시구 돌아가리

(20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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