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境界)
지금, 친구의 화두가 경계이다.
감나무 방제약 재료인 유황을 사러 영산으로 가는데
낙동강 지류 강가의 백사장이 봄 햇살에 한없이 한가롭다.
한가로운 백사장에 백로 한쌍을 올려놓고 보니 요새 친구가 고민하고 있는 경계가
백로의 노는 모습과 별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경계에도 눈에 보이는 경계와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으리라.
이 나라의 경계는 휴전선이고 국경선이다. 그 이상 넘을 수 없다.
이는 영역의 경계이며 또한 보이지 않는 이념의 경계이기도하다.
가난한 사람이 건너지 못하는 경계는 부자의 영역이며,
못 배운 사람의 경계는 배운 사람의 영역이리라.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저런 경계 때문에 삶이 힘들어지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또한 이 경계를 뛰어넘음으로써 보람과 희망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빈부, 배움, 권세, 명예, 이념, 영역 따위의 경계보다,
보다 근원적인 경계의 문제는 자유로움에 있으리라.
그러니까 돈과 명예와 권세를 얻는다 한들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면 참 행복은 가지지 못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며 처처곳곳에 놓여 있는 가로막으로 인해 그 자유로움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에리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우리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 자유를 구속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인간은 자유를 갈구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구속을 하면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갇힐 것 알면서도 사회적 관습적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결혼을 하고,
놀고 싶은 수험생이 자신을 구속하며 열심히 공부하여 합격이라는 자유를 얻는 것,
집안의 가장이 직장에 구속되어 일을 함으로써 가족부양이라는 자유를 얻는 것 따위가
대표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구속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자유이리라.
대체로 우린 언제나 이쪽 강(江)의 경계에 머물러,
부와 명예와 권세의 구속으로 인해, 저 백사장에는 죽을 때까지 가지 못하지만,
백로는 강에서 먹이를 갖고나면 다시 피안(彼岸)의 세계인 백사장으로 나서기에 그 모습이 부러워 홀로 불러본다.
비 갠 아침,
산세(山勢) 뚜렷하고,
백사장엔 햇살 나붓하여라.
거룻배조차 없는 강가.
강, 모래 오가는 백로는
무상(無常)한 경계를 허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