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2.20 11:34

권정생과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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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과 김수환


 권정생은 시골 교회 종지기로 살면서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쓰고,

쥐와 굼벵이와 여타 벌레와 새와 동물들과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살다가 2007년 5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부자로 남 보란듯이 잘 살수도 있었다.

죽은 후 그가 남긴 통장에는 10억여원이라는 돈이 남아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가 손수 지은 5평 남짓한 흙집에서 평생 병고로 살다가 죽었다. 그러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 주세요.

— 권정생의 유서, 《녹색평론》2007년 7-8월호


 시골에 내려오기 전에는 내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책을 보았지만,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는 단 한사람만이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 분이 권정생이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그이는 온 몸이 종합병원과 같이 되어있었다. 

살아서 숨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될 만큼 힘 드는 상태에 있는 처지라

만나러 가지 않는 게 그 분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부산한살림 대표였던 신종권님의 말을 듣고는 포기하였다.

그 분을 뵙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그토록 긴 세월을 병고와 고난의 삶을 살면서도

가난한 이웃과 온갖 벌레, 동식물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를 배우고 싶어서였다.

한 여름 뙤약볕에 지은 내 곡식을 벌레가 먹는다고, 멧돼지며 고라니가 내 곡식을 먹고, 밟고 피해를 준다고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농사꾼의 처지에서는 권정생은 이미 하늘에 사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글로써 말로써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웰다잉(잘 죽는 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같은 신앙인이었지만 권정생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 곁에서는 살았지만, 가난한 사람과 더불어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직을 그만두고 나서며 스스로가 항상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솔직한 모습은 아무나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처지를 어떤 형태로든 변명을 하려는 게 인지상정일터,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약점을 그대로 얘기하는 용기를 가졌다.

오늘이 김수환 추기경의 발인 날이다.

한 때 이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약자의 편에서 큰 힘이 되어주셨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한편, 권정생이 쓴 ‘우리들의 하느님’이란 산문집을 보며,

예수와 같은 성자의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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