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14 03:48

다행

조회 수 8547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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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多幸)


 노인은 벌초를 가고, 밤산에서 홀로 밤을 줍는데

힘도 들고 배고 고픈데 산을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 남은 부분을 마저 줍고 내려가는 것이,

다시 산을 올라와서 줍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 1시가 되어서야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노인이 없다보니 아내도 덩달아 바빴다.

같이 일손 놓고 들어선 주방, 둘이서 함께 차려 맞이한 점심,

식은 밥에 계란후라이, 열무김치, 참기름을 넣어 다른 반찬은 꺼내지 않고 젓가락이 필요 없는

비빔밥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웠다. 이때 ‘다행’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새벽 5시반부터 움직이기 시작해서 맞이한 이 밥 한 그릇,

종일 일하고도 밥 한 그릇 받지 못하는 사람에 비하면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반찬 없다고 투정하지 않고 맛나게 밥그릇을 싹 비울 수 있는 이 허기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가을일은 아무리 바삐해도 해가 져야 끝이 난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샤워를 할 때도 참 다행하다 싶다.

그러니까 해가 져서 계속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하고,

또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을 수 있으니 다행하다.


잠 잘 수 있는 방이 있어 아궁이에 매일 불을 때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노숙하며 지내는 이에 비해 따숩게 잘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누우면 쉬이 잠이 드니,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에 비하면 이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걸을 수 있는 다리, 온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옆에 아내가 있어 다행하고, 찾아오는 친구 있어 다행하고...


밤의 수확량이 작년에 비해 영 적은데, 그래도 주울 게 전혀 없는 것보단 다행하다.

고추가 병들어 죽어가도, 감이 벌레 먹어 뚝뚝 떨어져도,

벼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실하게 보여도 생각하기 나름..

우리 삶에 생각을 바꾸면 다행하지 않는 게 없다.

다행하다는 생각을 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또한 다행한 경우를 모두 모아보면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다행이 훨씬 많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행하다는 생각은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아침에 컵을 깨거나, 정초에 가벼운 차량 접촉 사고 따위가 나면

‘액땜했다’고 스스로 위로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 내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상황을 다행으로 보는 시각,

고달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다행(多幸)!

이 다행이라는 게 무얼까?

행(幸)이 많으니(多) 행복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생각을 바꾸면 행복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말인데,

지금 처한 내 상황을 다행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말은 맞는데,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고달프고 힘든다고요?

더 고달프고 힘든 사람에 비해선 다행이겠지요.

또 살아있기에 그런 고민도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죽은 것 보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하하..


   
  • ?
    박영찬 2009.09.14 12:22
    다행 - 많은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닌지요?  가을날의 마음이 묻어나는 내용이 마음에 닿습니다. 
  • ?
    김진웅 2009.09.14 20:07
    ㅎㅎ 영찬님! 다행(多行)으로 해석 하셨구먼유..말씀이 됩니다. 이 가을엔..
    시월 중 길벗농원에 박 선생님 모시고 한번 오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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