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不汗黨)!
아침 일찍 호미와 낫을 들고 출근길에 나선다.
앞산 소나무 숲 사이로 입술만큼 자태를 드러낸 태양의 고운 빛이 오늘 한낮의 더위를 가늠케한다.
땀을 많이 흘려야하는 일은 가급적이면 아침나절 중에서도 동트기 직전부터 하는 게 좋기에 일찍 서둔다.
그래서 오늘은 모내기 한 논의 뒤편이 어수선 하여 잡풀를 베어내고 논을 매는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출근길에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에 날듯이 걸어가는 남정네 한 사람이 보인다.
엉덩이를 살짝만 건드려도 날아갈 듯한 걸음걸이와 팔 흔들이가 참으로 신나고 경쾌해 보였다.
누군가 했더니 이웃 마을에 사는 불한당(不汗黨)이었다.
불한당!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명사」「1」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명화적02「1」ㆍ화적02(火賊).
「2」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 ≒한당01(汗黨).
다 알고계시듯이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글자를 그대로 해석하여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을 불한당으로 보았다.
그 대표적인 부류를 조선의 양반을 지칭했다.
그렇게 경쾌한 걸음걸이로 아침 운동을 하는 저이를 왜 불한당이라 불렀을까?
이유는 이렇다.
지난겨울 단감농사를 망치고 있던 차에 군에서 농림어업총조사라는 알바거리를 주었기에 그 일을 하면서
그이가 불한당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개인적으로는 농사꾼의 5-6년 고등학교 선배격이었다.
몇 해전 은행을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조선의 양반 노릇을 할 뿐 농사일은 손끝하나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사에 대해 질문을 던지니 그는 손사래를 치며 저 멀리 도망을 가면서 답변을 그이의 아내에게 미루기에,
그이 아내에게서 농사관련 질문을 하면서 왜 그이가 농사일에 대해서는 모르는가를 물었는데,
그때 그의 아내가 그의 행적을 일러바치듯 말을 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그이는 정년퇴직을 하고 병중에 계시는 아흔이 넘는 부모님을 봉양하러
시골로 온 것 까지는 칭송을 받아야 마땅할 터이지만, 그러나 시골에 와서 농사에 대해선 손끝하나 대지 않고
그의 아내에게 시부모 봉양이며, 병수발, 밭일이며 논일을 다 맡기고, 그는 아침 운동이나 읍내나 도회지에
얇은 가방하나 챙겨들고 일정한 직업도 없이 돌아다니며 소일을 한다는 것은 칭송받을 일은 아닌 것 같다.
저이가 저렇게 경쾌한 기분으로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아마도 저이의 아내는 부엌일에 농사일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리라!
다른 이의 희생위에 즐거움을 누리는(유포리아:병적인 행복감) 저이를 그래서 불한당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아내가 울리는 은은한 가스통 종소리가 아침 식사를 알린다.
이제 불한당 생각도 접어야 할 때..
허리를 펴고 뒤를 돌아보니 시원하게 정리된 논둑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다.
농사꾼이 저이의 즐거움을 모르듯, 아마 저이도 농사꾼의 이 기분을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으리라!!
Copyright © 2004 - 2015 dasuk.or.kr. All Rights Reserved 이메일:kyue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