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은 하나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가 만나 ‘중용’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유교, 불교, 노장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어 독창적인 종교 철학의 체계를 세운 대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 그는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석가․공자․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다석은 여러 동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겨 강의 자료로 썼으나 우리말로 완역한 것은 《중용(中庸)》과 《노자(老子)》뿐이었다.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은 다석의 직제자 박영호가 다석의 《중용》 번역과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이한 책이다.
다석 류영모가 YMCA 연경반 등에서 행한 고전 강의에는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석의 강의는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모아 세움으로써 사상의 일대 장관을 만들어냈다. 독창적인 언어로 대자유의 세계를 구현한 다석의 사상은 한국 지식계에 저류와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
《공자가 사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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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의 가르침은 하나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가 만나 ‘중용’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를 큰 줄기로 삼아 유교, 불교, 노장 사상 등 동서고금의 종교와 사상을 하나로 꿰어 독창적인 종교 철학의 체계를 세운 대사상가 다석(多夕) 류영모. 그는 성경 자체를 진리로 떠받들며 예수를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예수․석가․공자․노자 등 여러 성인을 두루 좋아하였다. 다석은 여러 동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겨 강의 자료로 썼으나 우리말로 완역한 것은 《중용(中庸)》과 《노자(老子)》뿐이었다.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은 다석의 직제자 박영호가 다석의 《중용》 번역과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이한 책이다.
다석 류영모가 YMCA 연경반 등에서 행한 고전 강의에는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해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다. 다석의 강의는 유교와 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모아 세움으로써 사상의 일대 장관을 만들어냈다. 독창적인 언어로 대자유의 세계를 구현한 다석의 사상은 한국 지식계에 저류와도 같은 영향을 끼쳤다.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에는 공자의 유교 사상뿐만 아니라 불교, 기독교, 노장 사상을 포함한 종교 사상 전반에 대한 다석의 고유한 해석이 깊고도 풍부하게 담겨 있다. 예수와 석가와 공자가 한자리에 모여 앉은 듯, 《중용》을 주제로 삼아 동서가 회통하는 말씀의 향연이 펼쳐진다. 다석의 해석을 통해 공자는 하느님의 아들로 나타나며, 《중용》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드러난다. 동서 사상을 두루 꿰뚫어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종합한 대각(大覺)의 정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막힘없는 깨달음의 경지가 독특하고 생생한 언어로 솟아난다.
동서고금의 많은 사상과 철학에 달통했던 사상가 다석 류영모는 매일 기록한 《다석일지》 외에 다른 저서를 남기지 않았다. 현재 다석의 사상이 담긴 책들은 다석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다석의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적은 기록이거나 해설서이다. YMCA 연경반 강의의 속기록 전문을 다듬은 《다석강의》와 금욕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서 한 강의를 녹취해서 푼 《다석 마지막 강의》가 다석의 육성을 생생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공자가 사랑한 하느님》을 통해 다석 류영모의 독창적 유교 해석을 만나게 된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통해야 한다. 그것이 중용이다.”
하느님 말씀이 곧 중용(中庸)이다
다석 류영모는 공자의 말씀이 담긴 《중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다. 다석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 곧 ‘중용’이라 하였다. 우리가 받은 본바탈(性)로 하느님 뜻을 실천하는 삶이 바로 중용인 것이다.
다석은 제나의 감정인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다시 말하면 제나 너머의 얼나를 《중용》의 중(中)이라고 본다. 제나의 감정이 일어나도 얼나의 절제를 받으면 인격이 부드러워(和)진다는 것이다. 중(中)은 이 우주의 근본인 하느님이고 부드러운 이는 세상에 하느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하느님 아들이다. 곧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가 중용의 뜻이다. 예수가 가르쳐준 “(하느님)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오 6:10)가 바로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와 같은 뜻이다. 이것을 더 줄이면 석가의 사성제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된다.
공자는 하느님 아들이다
다석 류영모는 예수와 붓다를 모두 어리석은 욕망과 동물적 본능에 사로잡힌 ‘제나’를 벗어버리고 ‘얼나’로 거듭난 하느님의 아들로 보아 좋아하였다.
그렇다면 예수, 석가와 함께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다석은 공자도 예수, 석가처럼 얼나로 솟난 하느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보았다. 공자의 말씀과 몸가짐에서는 짐승의 냄새가 안 나고 진․선․미의 거룩한 향내가 난다.
그 사람의 말을 알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공자는 사람으로서 꼭 들어야 할 말을 들으면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논어》, 이인 편). 말을 알자는 인생이고 말을 듣고 끝내자는 인생이다. 한 사람의 총결산은 그 사람이 한 말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에 너희들이 한 말이 너희를 판단한다고 했다. 그 말이란 우리 입으로 늘 쓰는 여느 말이다. 그 사람이 쓰는 여느 말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왼통이 된다. ― 길잡이말․15쪽
예수와 석가와 공자는 하나로 통한다
류영모는 평생 예수를 스승으로 섬겼으나 성경을 절대시하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류 역사에 등장한 모든 성인들을 두루 좋아했다. 그는 성경과 함께 동서고금의 다양한 사상과 종교를 공부하고 일상에서 성인의 삶을 실천한 끝에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바로 “생사(生死)와 애증(愛憎), 욕망의 노예인 ‘제나(自我, ego)’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인 ‘얼나’로 솟나야(부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류영모는 바로 이것이 예수와 공자, 노자, 붓다가 인류에게 가르쳐주려 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로 통한다.
주희가 입힌 겉옷을 벗겨내야 《중용》의 참뜻을 알 수 있다
다석은 《논어》, 《맹자》, 《서경》 등 여러 유교 경전을 두루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중용》만 유일하게 우리말로 완역하였다. 그것은 다른 유교 경전과 달리 《중용》에 형이상학적 진리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용(中庸)’이란 말은 원래 공자의 말이 담긴 《논어》에서 처음 나왔다. 그런데 공자가 다녀간 뒤로 공자처럼 깊은 깨달음을 이룬 이는 맹자밖에 없어 중용의 뜻을 바로 아는 이가 드물었다. 더구나 ‘중용장구’라는 《중용》의 주석서를 쓴 주희는 ‘중용’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여 공자의 사상을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저질렀다. 그로 인해 《중용》에 담긴 형이상의 사상이 사라지고 인간사의 문제를 다루는 형이하의 사상으로만 전해지게 된 것이다. 주희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사고(思考)를 하느님에 맞춘 공자의 《중용》을 바로 알 수도 없고 바로 풀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