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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코앞에 둔 조카 연희야 보거라.


당겨진 시위에 몸 실린 화살인 듯, 온 가슴이 떨리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이모부 가슴도 너 처럼이야 하겠냐마는 애닲고 안타까운 건 사실이다. 어제 이모부는 중학교 동창 중에 아들이 장가를 가기에 거기에 갔다 왔다. 혼주가 학교 동창이라 찾아온 동창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소 동창회 모임이 되었더라.


동창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이 나라 교육이란 것이 과연 어디에 소용이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하고 대학을 가는 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공부 잘하고 대학을 가면 이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며 행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동창들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살아온 인생이 눈에 보이는 듯 하더구나. 가끔 만난 동창도 있지만, 얼굴도 이름도 아렴풋한 친구들도 더러 있는데, 30여년이라는 세월동안에 그 변모한 모습들을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더구나. ‘저애는 학교 다닐 때 참 봉통하니 이뻤는데 왜 저리 얼굴이 상했을꼬? 아니 저넘은 내 보다 훨씬 키가 작았는데 이젠 거의 같잖아? ’하는 생각에서부터 ‘공부 잘한 쟤는 저 정도 밖에 못살고, 에구 공부는 지지리도 못해 마산에 있는 학교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저 넘은 돈 버는 재주는 있어서 수십억 재산가라니 참 조물주는 공평하네.’하는 생각들이  들더구나.

그리고 여동창들 중에는 공부도 그저 변변치 못했고, 얼굴도 그렇게 잘 생기지는 못했어도 남자를 잘 만나 그런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이뻤지만 남자를 잘못 만나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체 우리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학교에서 가르친 것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구나.


누가 얘기를 했어. 박사학위란 넥타이와 같은 것이라고. 넥타이는 없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지만, 다만 넥타이를 매고 다니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대학을 가는 것도 이 정도 아니겠느냐. 수능을 잘 치러 남들 보란듯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수준에 맞는 대학이라면 어떤 대학이라도 흡족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앞서 얘기했듯이 좋은 대학이 반드시 좋은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수능대박이라는 아주 요상한 말이 유행하고 있구나. 대박이라는 원래 의미야 ‘뭔가 큰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좋은 의미이지만, 그러나 요새 그 의미는 복권당첨이라든지 예기치 않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의미로 많이 사용을 하고 있는 듯해서 수능에 이 대박이라는 말을 붙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수능에서도 무슨 요행을 바래야 되겠느냐? 이건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는 것과 같으니 그 심보가 수상하지 않겠느냐? 이모부는, 연희가 수능시험에서 그저 지금껏 공부한 내용을 잘 기억해 내어 실수 없이 시험을 잘 치루었으면 한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지 그 점수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학교 성적이 바로 내 인생의 성적은 아니니 말이다.


사랑하는 연희야!

네 여린 마음과 몸을 생각하노라면 이 나라 학생들의 처진 기운을 보는 듯해서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다만,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거쳐야할 문이려니 생각하고 이 순간 잘 극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능 날, 수험장에 들어가면 우선 눈을 감고 기도를 하여라.

호흡을 깊게 천천히 쉬며 이 순간까지 너를 있게 해 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기도를 하여라.

그리고 ‘나는 실수 없이 시험을 잘 치룰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고 눈을 딱 뜨라.

그리고 시험이라는 괴물 앞에 당당히 맞서거라.


2008년 11월 10일

함안에서 이모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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