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01 05:32

내가 미워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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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마지막 날에
- 내가 미워질 때

요새는 운이 좋으면 북두칠성을 하룻밤에 두 번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저녁엔 하느님이 북쪽 깊은 바다에 물을 뜨기 위해 바가지를 푹 담그고 있는 중이라 희미하게나마 자루만 볼 수 있으나 지금 이 시각 02시경에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카시오피아와 마주하여 아주 선명하게 대가리 처든 바가지를 볼 수 있다. 밤하늘 보며 내가 아는 별자리는 몇 되지 않는데 그 중 확실히 아는 별자리가 북극성, 카시오피아, 북두칠성, 삼태성이다. 삼태성(삼성, 삼수 따위로 불린다 함)은 저녁엔 동쪽하늘에 있다가 지금쯤은 길벗농원 밤산 동쪽 초입 경계지점쯤에 머물러 있다가 새벽 3-4시경이면 우리 방 서쪽 창문을 아주 밝은 별이 두어 개 함께 지나가는데 난 그 별이 무슨 별인지 몰랐다. 그 중에 왼쪽 아래로 좀 처져서 따라오는 주먹별이 하늘에서 제일 밝은 ‘시리우스’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석가세존은 새벽에 별을 보고 현해(懸解)하였다하고, 다석 류영모는 밝음은 거짓이니 어둠이 진리라며 별을 자주 보라 하셨다. 그러나 별을 보되 그 뒤에 감안(玄)한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 밤 해우소에 밤마실 댕겨오다 그 별을 보며 석가세존과 다석 선생님을 말씀을 떠 올리는데 가슴 답답함을 느꼈다.

어제는 이유가 전혀 없진 않겠지만 딱히 뭐라 할 수 없는 이유로 짜증이 나고 마음이 심드렁하여 아내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날 위하는 여러 말들도 괜시리 잔소리로 들려 말대꾸도 귀찮았다. 뜻벗과 더불어 맛난 저녁을 먹으면서 5년 만에 열리는 가장 재미난 하이 코미디 주인공들 얘기가 자연스레 나올 법도 한데 소처럼 꾸역꾸역 밥만 집어넣었다. 가슴에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가득 차 있는 듯 답답하고 조급하고 그랬다. 오늘까지도 그 기분이 계속 연장이 되어 나 역시 이래선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낮 동안 쉽게 기분 전환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저녁을 먹으면서 많이 풀려 ‘아 참 맛있게 먹었다.’하니 내 눈치만 살피던 아내가 이때다 싶었는지  ‘어제 당신 기분이 좀 안 좋았던 것 같아. 어디 아퍼?  뭐, 내가 잘못한 게 있어?’했다. ‘아냐 안 퍼. 당신 잘못한 것도... 그냥 좀 짜증이 나고 그랬어. 일이 마무리 되어 좀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온 천지 깔려 있는 게 일이라 마음만 바쁘고...’하니 아내는 신이 나서 ‘그럼, 말해. 내가 뭐 해주까?’했다. 그 말에 수그러들던 짜증이 그만 되려 뛰쳐나와 버렸다. ‘아니 온 천지에 널브러져 있는 게 일인데 그걸 내가 일일이 말해야 알어? ’해 버렸다. 주인으로 보지 않고 객으로 보면 할 일이 없다. 아내에게 그걸 느낀 것이다.

이곳 길벗농원에 오면서 마음속에 다짐했던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뭐 잘해 보려고 서두르다 멀리가지 못할까봐 내 걸음으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게 ‘서두르지 말자’로 하였고,
둘째가 그저 밥술이나 먹고 살면 되었지 고소득이니 뭐니 하며 욕심내다 여러 사람에게 피해주고 멀리가지 못할까봐 ‘욕심내지 말자’로 하였고,
셋째가 ‘화 내지 말자’였다.

그러나 시골생활 7년으로 접어든 지금,
조오현님의 시 ‘아득한 성자’에 나오는 말처럼,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이 셋 지키며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오늘 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하현달과 그렇게 밝게 빛나는 별 ‘시리우스’를 보면서도 내 마음은 깜깜한 밤중을 헤매고 있으니 그 아니 답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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