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의 몸옷 벗고 가신 언님
박영호
1. 마지막 날이 머잖아 온다는 걸 모르고 잊었던 건 아니였는데 언님이 돌아가셨단 부음을 듣자니 뜻밖의 일로만 여겨져 멍하기만 늘 죽음을 직시하며 살자는 난데 죽음의 철학을 한단 말뿐이었는가 세월의 그네뛰기에 홀려 얼이 나갔나 죽음은 강건너 불이 아닌 발등에 떨어진 불 2. 언제나 어리고 못난 아우를 챙기시더니 이제 시름의 몸옷을 가볍게 벗어버리고 하느님 품안으로 돌아가 안기었겠지요 기쁨과 안식과 충만이 넘치오리다 이 땅에 계실 때 이따금 여기 포항이여 전선을 타고 오는 목소리 들려 주시었듯 여긴 하느님나라여라는 전화가 올 것만 이미 여러번 얼로 통하신 것을 몰라서야 3.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지었다는 곳 인각사 계곡이 단풍으로 선계를 이뤘지 그곳에 자리한 휴양림 산장에 묵으며 이른해 넘어 쟁여온 우애를 나눈 게 영원한 작별을 위한 준비였던가 오늘이 마지막날로 알고 살아야지만 헤어지며 마지막 두손 잡든 모습이 이제도 눈앞에 그림으로 떠오른다 4. 이 세상살이 여든해를 넘어 다섯해 이 우주의 외론섬 지구에 불시착하여 외롭고 고달픈 삶을 잘도 견디시었지 늘 밝은 얼굴로 남 생각하기를 잊지않아 떠난 빈자리에 우애의 무지개 피어올라 홀로 떨어진 이 아우를 달래 주는 듯 언님은 하늘나라에서 아우는 이 땅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우러러 찬양하오리다 (201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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