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痴, 음욕)에서의 자유

 

▶요즘 사람들은 인생 본연의 길에서 탈선하기가 일쑤다. 제 발로 굳

건히 서지 못한다. 자칫하면 나자빠져 버린다. 이것은 독립의 전복이

다. 우리가 마침내는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정신이 붙어 있는 동

안은 하늘에 머리를 두고 하느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떳떳하게 서서 나

아가야 한다. 독립 전진해야 한다. 그래서 결심할 강단이 필요하

다. (1956)

 

▶사람이란 곧게(貞), 반듯이(正), 똑똑히(明) 살아야 한다. 언제까지

나 엎어지고 쓰러지고 넘어져서 아래 위 구멍으로 콧물 눈물 흘리면서

지저분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지저분한 짓 빨리 걷어치우고 따로 설

수 있어야 한다. 따로 서서 우(하느님)를 바라보고 저 갈 길을 가야 한

다. (1956)

 

▶요새 세상에는 남녀내외(內外)라는 것이 없다. 신식 사교라 해서 남

녀의 가림이 없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본래 가슴속에 기록된

것은 무시해 버려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는 따뜻한 것도 필요하지만

쌀쌀하게 찬 얼음장 같이 냉철해야 할 때가 있다. 칼날의 그 날카로움

이 좋을 때가 있다. (1956)

 

▶사람의 눈은 함부로 맞히는 게 아니다. 총각 처녀가 눈이 마주치면

여자 쪽이 입덧이 나게 된다. 그것은 짐승이나 할 짓이다. 사람이 짐승

으로만 살 수는 없다. 사람이 사는 길은 짐승과 다르다. 사람은 구별할

것은 구별해서 택할 것은 택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본능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의지력으로 행동해야 한다. 본능의 욕구를 채워야 하는

것도 지켜야 할 차례를 지켜야 한다. 본능으로만 사는 짐승은 짐승이기

에 본능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별로 잘못하는 것이 없다. (1956)

 

▶요즘 젊은이들은 자식만 안 낳으면 좋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다치고

다닌다. 삶의 이치를 바로 알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어버이끼

리 다쳐서 나를 낳았다고 하지만 다치는 것만 이라면 무슨 예식을 을

릴 필요가 무엇인가? 다치기만 하는 것으로 철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

가슴 한가운데 도드라진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 때 자식도 낳고

남편도 시중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때를 모르고 서두르는 것은 잘못

이다. 그만두어야 할 때는 알아서 그만두어야 한다. 짐승으로 살은 지

나간 일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남녀의 바른 길이다. 그리고 우로

올라가자는 것이다. 독립심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자는 것이다. 그

만 콧물 눈물 거두고 올라가 보자는 것이다. 똥오줌 가리고 사는 게 인

생이지만 이제는 그만하고 하느님께로 올라가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대원칙이다. (1956)

 

▶이전 시대에는 20살 전까지는 남녀간의 성(性)을 전혀 모르고 지낸

시대가 있었다. 바르게 자라난 사람은 다 그러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

은 그렇지 않다. 춘기발동이 나면 이미 음탕한 것을 알고 보게 되는 세

상이 되어 사람들이 짐승 이하로 날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56)

 

▶20세 전의 사람이 신경과민의 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마침내는 실성(失性)을 하여서 미친 사람 모양이 되었다. 하루는 조용

한 날 그 원인을 가만히 따져 보았더니 스스로 더럽히는 자독(自毒)행

위를 너무 지나치게 하여서 신경쇠약 끝에 정신 이상에 이른 것이었다.

그래서 한 6년 동안 아주 다른 사람처럼 되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그

사람의 정신이 똑똑하게 들었을 때 일러 주었다. 감추고 있던 그 말까

지 내 앞에서 하는 것을 보면 정신이 있을 때는 내 말을 신임한 것이다.

   딱 끊도록 분명하게 말해 주었다. 너 같은 어린 사람으로선 그 짓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모르는 상식 부족으로 그러한 짓을 했으니

그 일을 딱 끊어 버려라. 그러면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 너의 정신이상

은 다른 원인이 또 있으면 모르되 이제 그 원인을 알았으니 그 원인을

아주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 얼마 뒤에 건강이 회복된 것을 보았다.

그는 미군정(美軍政)에 근무하다가 그 후유증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1956)

 

▶요새는 약이 좋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해소(기침)하는 이가 적

다. 이전에는 해소기침을 누구나 하는 것으로 보았다. 늙어서 해소하는

것은 젊어서 과도한 성생활을 한 인과응보로 찾아온 것으로 본다. 젊어

서 그 노릇을 심하게 하고서 늙어서 그 지경에 이른다. 또 다른 원인으

로 해소기침을 가지는 수도 있지만, 그러나 10명 가운데 5 ~7명까지는

짐승보다 절도 없는 성생활로 늦게 해소기침이라는 친구를 갖게 된다.

그러한 것을 보니 가엾기 그지없다. (1956)

 

▶성경에서 부부는 두 몸이 한몸이 된다고 했으나 거짓말이다. 부부

사이에서 자식이 나와서 그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다. 하느님이 주신

자녀는 아들과 딸이 다른데 다른 것은 다른 대로 길러야 한다. 다르게

길러야 부자유친(父子有親)이 된다. 부자(父子) 사이는 쪼갤래야 쪼갤

수 없다. 이혼하는 부부가 있는데 문서상 이혼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원 이혼이 아니다. 정말 이혼을 하려면 자식을 반씩 나눠 정자 난자를

찾아가야 참 이혼이 된다. 여자가 시집을 갈 때 기러기를 가지고 간다.

기러기는 짝을 잃으면 다시는 짝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안'이

라 해서 기러기를 보낸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이 바로 된다.

   요즘은 남녀평등이라 하여 남녀가 같아지려고 한다. 남녀가 같아지

면 나부터 아내를 얻으려고 하겠는가. 다른 것이 있어서 맞출 때 제대

로 바로 맞아진다. 그래야 아이를 낳아도 어버이와 친한 아이가 나온

다. 아이가 나왔는데 친하지 않으면 그런 변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세상에 자식을 낳는데 옳게 못 낳는다. 그래서 부자유친(父子有親)이

아니라 부자 원수가 된다.

   남녀가 전부 같으려 해도 벌써 다르게 타고난 것이 있다. 다르게 타

고 난 것은 다른 대로 길러야 한다. 다르게 기른다는 것이 유별(有別)

이다. 이같이 다르게 기른 뒤에 생전에 꼭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이 다른

곳이 맞아 같아지는 것을 혼인이라고 한다. 다른 것을 다르게 길러야

할 원인이 여기에 있다. 얼굴만 하여도 다르지 않으면 저 사람의 얼굴

이 내 얼굴인지 내 얼굴이 저 사람의 얼굴인지 모르게 된다. 이 세상에

는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다른 것이 있는 것이 고맙지 않은가? 그래

서 어디 있어도 다른 것은 다른 대로 하잔 말이다. (1956)

 

▶남녀가 만나면 깜짝할 사이에 변하지 아니하는 곳이 변하여 배꼽에

콧물이 난다. 한 번 변하면 계속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두 젖에서

눈물이 난다. 사람은 이렇게 생겼는데 왜 그렇게 생기었나?사람 꼴을

보여 주는 편지를 마주 쳐다보며 그 꼴을 한 번 해석하자는 것이다.

   자세히 우리 몸을 살펴보면 왜 젖에는 눈이 둘인가. 얼굴에는 눈이

둘이고 귀가 둘이고 눈 가운데 코가 있고 코 밑에 입이 있는데 가슴부

터 하반신 아래로 젖 눈이 둘이고 배꼽이 있고 코가 있고 여자는 입이

있는데 벌렁거리지 않고 꼭 다물고 있다. 꽁무니는 왜 꽁무니(꼭 문이)

이며 밑에 있는가? 몸에는 내려온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편지

가 아니고 무엇인가?왜 드러내 놓으면 숭업다고 하는가?봉투에 쌓인

분명한 편지이다. (1956)

 

▶곧이 곧게 살다가 에라 모르겠다면서 자빠져 버리고는 잠을 잔다.

이제까지 곧이 곱게 자라난 것을 다 버리고 깜짝할 사이에 고만 더럽

혀진 몸에서 눈물 콧물이 나온다. 그 뒤에 불러 오는 배를 감당치 못하

여 키니네 같은 약을 먹거나 병원을 찾는 등 하다가 아버지 어머니가

애꿎은 눈물을 씻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

   모름지기 곧이 곧게 따로 서서 내 두 발로 또박또박 걸어가야 한다.

엎어지거나 자빠지거나 쓰러져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따로 서서 독

립 정진해야 한다. 이에는 여간한 의지와 결심이 필요치 않다. 극기 독

립해야 한다. 모름지기 예(禮)를 알아야 한다. 때가 아니면 들리는 것

도 들어서는 안 되고, 보이는 것도 보아서는 안 된다. 때가 아니면 돌

아다니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함부로 때 없이 지내고 있다. 때라

는 것은 반드시 사람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때의 임자이다. (1956)

 

▶편지의 봉투를 단단히 하고 다녀야 하는데 요즘 여자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 훨훨 벗기를 좋아한다. 그래 가지고는 눈총을 맞는다. 그리하여

탈을 내어 죽느니 사느니 한다. 그렇게 죽는 것이 죽는 것인가?

   사람이 때가 오면 그때는 참고 참았던 것을 생각하고 진리(하느님)

와 의논해야 한다. 자기가 독립하고 확실한 것을 안 다음에도 부모 형

제의 비뚤어진 생각에 구애치 말고 진리(하느님)와 의논해서 확실히

사람으로서 살 수 있나를 안 다음에, 지구 위에 사는 사람에 대한 그

꼴을 보인 뜻을 확실히 안 다음에 몸담을 곳을(시집갈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류의 원칙이 어디 있는가 하는 대답이 그러하다.

   술 취해서 자식 낳으면 천생 못난 자식밖에 안 된다. 세상에는 못된

자식들이 많다. 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못된 자

식만 낳는다면 이 세상은 진물 쏟아지는 눈물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망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눈물 걷고 사는 밝은 세상을 이

루어야 한다. (1956)

 

▶내가 20살을 좀 넘어서 모든 것을 알면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육

체를 좋아해서 나를 낳지는 않았겠지' 이러한 생각이 내 마음에 들은

적이 있었다. 하늘처럼 믿는 어머니 아버지가그러한 더러운 일로서 나

를 낳지는 않았겠지 하고 그 사실을 부인한 일이 있었다. 우리들이 반

성을 하면 그러한 일은 안 할 것이다. 우리의 처지가 그러한 일을 그만

두어야 할 처지다. 그러한 몹쓸 짓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회

개해야 한다. (1956)

 

▶이 사회에 영화 광고 등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어떻게 흔히 나오는지

인제는 오히려 정신이 마비되어 그러려니 하고 지나게 되었다. 그 부끄

럽고 더러운 일을 공공연하게 내놓는다는 것은 하늘에 머리 두고 사는

사람들이 하는 짓들인가. 이렇게 키스가 흔하니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

를 해도 그 참된 맛이 이제는 없어졌을 것이다. (1956)

 

▶안해(아내)라 하는데 아내는 안 해야 아내이다. 나는 이런 것을 두

루 찾고 싶다. (1956)

 

▶소자(小子)가 아버지를 사모하는데 아버지와 하나되려고 사모한다.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되려고 아버지를 사모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

으려고 그리면 그리는 것이 제 모습을 그리는 것밖에 안 된다. 괴로워

하다 못하여 다른 무엇을 그려볼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옳게 바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헤매며 방황한다. 말 못

하는 지경에서 퍽 참고 있다가 '아이 못 견디겠다. 장가라도 가야 되겠

다' 하고 땅의 아버지를 모방하여 짝을 맞아 가정을 이룬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재력, 권력을 잡으려 한다. 이것은 멸망으로 나아가는 넓은

길일 뿐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버리고 다시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1956)

 

▶세계의 장래를 위해서 자식을 낳아 잘 기르고 가르쳐 큰 인물을 만

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보잘것없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남달리 하여 보

겠다고 죄다가 똑똑한 척한다. 맹자(孟子)시대에도 그러했는데 지금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참 아는 것이다. 자기보다 모르는 사람 앞에 가서 크게 안다는 소

리를 한다. 이것은 정말 모르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내가 알면 얼마나

알고 모르면 얼마나 모르는가? 아는 것은 알았다고 해도 나는 모르고

한다. 나는 모른다고 하는 이것이 원칙이다. (1956)

 

▶불가불 나왔으니 사랑을 하고 혼인해야 할 터인데 그 근본인 나를

모르고 흔인이라는 것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똑바로 모르고서는 흔인

을 할 필요가 없다. (1957)

 

▶색광(色光)을 가리지 않고 번쩍하는 맛에 홀리면 그만 헤어날 수 없

게 된다. 속살은 가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역사까지도 그르치게

된다. 속살을 가리는 것이 없으면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인충류(人蟲

類)가 되고 말 것이다. 짐승은 암수가 서로 만나 새끼를 낳으면 끝낸

다. 그런데 인류라는 것은 색광(色狂)이 되면 임자 있는 여자이든 임

자 없는 여자이든 그만 일을 저지르고 만다. 사람은 맛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산다는 것은 말끔 시험인데 맛을 좇아 살면 짐승만 못하게 된

다. 고기 맛을 보면 더 날뛰게 된다. 고기 맛을 살맛(肉味)이라고 해도

좋다. 어떻게 하면 속살을 만져 보나? 어떻게 하면 속살에 닿아 보나

하고 무척 동경한다. (1957)

 

▶얼나가 임자로 계시는 하늘마음(天心)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식욕

색욕에 마음이 살아나지 않는다. 얼나의 곧은 마음을 꼭 붙잡으면 인

(仁)을 해하지 않게 된다. (貞操 不害仁)(1957)

 

▶이 땅은 흘리(漏)는 데라 그 흘리는 일에 빠져 흘리고 흘리니 더러

운 이 세상이다. 사람들이 홀리고 흘려서 된 것이 이 세상이다. 자꾸

흘리고 흘려서 된 이 세상이라 앞으로 줄곧 흘리며 나갈 것이다. 흘림

이 없을 때 번뇌가 끊어져 니르바나님에게 이르는 누진통(漏盡通)을

이를 것이다. (1957)

 

▶세상에 꽤 똑똑한 사람도 먹는 문제와 남녀 문제가 되면 꼼짝을 못

한다. 식색(食色)의 문제에 꼼짝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고

무슨 자랑처럼 여기니 영웅이나 된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에 영웅이라는 자들이 권력이나 금력을 잡으면 고작 호의호식

(好衣好食)하고 처철(妻妾)을 많이 거느리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인 줄

로 생각한다. 과식(過食) 과색(過色)하는 악마의 나라를 세우고 멸망

해 간다. 밤낮으로 연회를 즐기며 음란에 빠진다. 그리하여 보신.보약

에 심지어 마약까지 쓰면서 음탕에 골몰한다. 중국에서 아편이 그렇게

유행한 것도 음란 때문이요 세상에 폐병이 그렇게 흔한 것도 음란 때

문이다. 지옥이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음란이 바로 지옥이다. (1957)

 

▶여자는 땅과 같다. 땅은 굳은 것이 특징이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이고

굳은 땅에 초목이 무성하다. 여자에게 있어서 정조는 생명이다. 그런데

사막이 되어 바람에 휩쓸리면 그것이야말로 불모(不毛)의 사각지대(死

角地帶)이다. 땅이 사막이 되면 하늘은 비를 잃고 오곡은 말라죽는다.

노자(老子)는 아끼는 것이다(莫若嗇)고 했다. 땅은 아끼는 것이다. 성

경 아가서에 보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

이라고 했다. 수도꼭지는 언제나 막아 두어야 한다. 우물가는 깨끗하게

닫아 두어야 한다. 샘이 언제나 열려 있고 동산이 언제나 열려 있으면

그 우물은 먹을 수 없이 더러워진다. 창녀가 더럽다는 것은 열린 우물

이 되어서 그렇다. 여자의 정조는 집의 터요, 나라의 터이다. 여성들은

자기들이 이 나라의 터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명의 핵심은 식색

(食色)에 있다. 식색을 절제할 줄 모르면 용기도 지혜도 정의도 있을

수 없다. (1957)

 

[주]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가서 4장 12절)

 

▶남녀의 성(性)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 뿌리는 언제나 땅속에 파묻어

두어야 한다. 뿌리가 드러나면 나무는 말라죽는다. 세상은 그것을 모르

고 뿌리를 들추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 사람들이 식색(食色)을 너

무 좋아하면 음란한 세상이 된다. 밥은 살려고만 먹게 되어야 하고 성

(性)은 자녀를 날으려고만 만나야 한다. 자연의 짐승들은 이 법칙을 잘

지키고 있는데 사람들만 이 법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것이 타락이라

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타락도 남녀의 관계가 깨진 것이다.

   요사이 성(性)의 자유니 개방이니 하지만 성을 개방하면 무엇이 자

유롭다는 말인가? 여자의 자유는 여자의 존엄에 있지 성(性)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의 존엄은 정신에 있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들이 미(美)의 선발대회라 하여 대중 앞에 나서서 하나의 상품

처럼 취급되는 것은 여자의 물화(物化)요 천대(賤待)이지 여성을 존중

하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이

자본주의에 이용된다면 그것은 여성의 모독일 뿐이다. 남자이건 여자

이건 모두가 절제해서 자기의 정 (精)과 신(神)을 보존해야 한다. (1957)

 

▶식색(食色)의 물신(物神)을 초월하지 못하면 우리의 정신 생명이 자

라지 못한다. 언제나 먹을 것을 삼가고 남녀(男女)를 조심해야 한다.

하룻밤을 자도 남녀유별(男女有別)하여 만리장성을 쌓아 놓고 자야 오

랑캐의 침입을 받지 않는다. 색마(色魔, 色馬)는 오랑캐의 말보다 더

무섭다. 포악하고 음흉하고 잔인한 것이 성범죄(性犯罪)이다. 언제나

자기의 몸을 공경하여 일평생 시험에 빠지는 일 없이 건강과 정결을

지켜야 한다. 건강한 육체로 음식을 이기고 건강한 정신으로 남녀를 이

겨야 한다. 음식과 남녀에 지면 곧 병신이 되고 등신이 되어 죽게 됨이

마치 서리가 내리면 곡식이 시들어지는 것과 같다. 음식과 남녀에 이긴

사람만이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새벽에서 저녁까지 참되게 살

아갈 수 있다. 식욕과 성욕에 끌려다니면 인생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신세를 망치게 된다. 식색(食色)을 삼가면 가정과 나라가 행복해 질

수 있다. (1957)

 

▶나는 사람의 이상(理想) 세계는 벌(蜂)사회를 닮는 것이라고 생각한

다. 여왕벌은 한 번 수정(受精)해서 그것을 평생 자기 속에 간직하여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무정란에서 수벌이 나오고 유정란에서 암벌

이 나온다. 수벌은 수가적고 암벌은 수가 한없이 많다. 암벌은 일하는

벌(?蜂)이다. 암벌은 결흔하는 법이 없다. 암벌은 평생 동안 정성을

다해서 꿀을 모아들이는 일에만 열중한다. 부국(富國)이 암벌의 꿈이

다. 수벌은 영웅처럼 나라를 지킨다. 수벌도 결혼하지 않는다. 다만 수

벌 한 마리만이 여왕벌에게 한 번 수정시킨다. 여왕벌은 한 번 받은 정

(精)으로 암벌을 생산한다. 그리고 온 국민이 꿀을 아껴 먹는다. 오직

여왕벌에게만 좋은 꿀을 많이 먹인다. 그러면 여왕벌이 된다. 다 같은

암벌인데 꿀을 많이 먹이면 여왕벌이 되고 꿀을 적게 먹이면 작은 일

벌이 된다. 여왕벌은 한 마리뿐이다. 수벌은 여왕벌에게 한 번 수정시

키고 죽어 버린다. 수벌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데 아주 강병(强兵)

이다. 벌 세계는 마치 정신세계와 같다. 벌 세계처럼 정성(惟精)되고

한결(惟一)같은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한 번 수정하면 죽을 때까지 쓰는 여왕벌은 성령을 받은 성인(聖人)

을 연상케 한다. 여왕벌이 백성을 낳는 세계가 벌 사회다. 일벌은 한

벌통에 4만 마리 정도라고 한다. 일벌은 1주일 동안 일하고 죽는다. 여

왕벌은 3개월쯤 산다. 여왕벌이 죽으면 새 여왕을 뽑는다. 그 새 여왕

벌에게 먹이는 로얄제리는 특별하다고 한다. 벌은 한 번 쏘면 독기를

뿜는다. 사람은 한 번 쏘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삶의 핵심을 바로 찍

으라는 것이다. (1957)

 

▶창세기에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 라고 한 것은 분명히 우리

의 생식기를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뱀이라고 말은 하나 뱀의 꼴이 마

치 남자의 생식기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생식기가 유혹하는 것 같은

유혹이 어디 있는가? 소위 시험 중에 색욕의 유혹이 대단한 것이다.

먹는 것은 제법 사양하고 사리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색(色)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인류가 이 시험에는 당했고 또 이기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아담이 하와를 유혹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아담은 부정하고 있지만 이치가 이렇게 되어야 들어맞는다. 모든 삼

독(三毒)의 근원은 남자가 책임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그런데 항시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시키려고 한다. 어쨌든 서로가 유혹한 것이기에

그 짓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맛도 있음직하고 만져 볼 만큼 탐스럽기

도 하고 먹어보니 맛이 좋고 해서 아담과 하와가 같이 먹었다는 것이

다. 맘에 잡히면 그때도 그랬는데 요새 와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다른

맛이 있음직해서 남의 여자도 건드려 보고 남의 남자도 꾀어 본다. 맛

에 맘이 나면 사람은 아주 짐승만도 못하다. 몇 번 먹어 보면 더 먹어

볼 것이 없다고 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실제로 어떤 부인은 자

식 하나 낳아 보고는 다시 더 볼 것 없다고 하여 남편은 새 장가를 보

내고 자기는 다시 자식을 낳지 않았다. 별 것 없는 그 맛을 자꾸 따라

가야 별 소득이 없는데도 늙어서까지 처녀첩을 두었느니 소녀 과부를

얻었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우리 인류가 무엇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1957)

 

▶얼마 전에 한 선생이 성경말씀을 할 때에 '요새 세상은 옛날과 다르

다. 웃은 입었으나 옷을 안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하고 다닌다 고

했다. 분명히 그러하다.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속살을 자꾸 만나보고

싶어서 그렇다. 물른 보기에 간단한 것은 좋을지 모르나 사리는 것이

이렇게 없고 보면 못된 것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낮에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짐승들에게는 그 짓에 무슨 강제나 폭력이 없다. 그러나

인충류(人蟲類)는 동물 이하의 짓을 곧잘 하게 되니 이것이 문제다.

동물은 자연을 쫓는데 사람은 의지(意志)가 발동된다. 행동으로도 조

히 동물과 같을 수 없는데 의지의 분방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

은 문명한 민족이거나 미개한 민족이거나 마찬가지다 (1957)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몸을 맡기게 된다.

껍데기 몸만 맡기고는 서로가 좋다고들 하지만 사람의 속마음이 문제

이다. 도무지 껍데기 몸만 맡기면 낭패다. 20년 30년, 40년 함께 지나

도 자꾸 얼의 마음이 서로 새로 나와서 보이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삶이 될 것이다. 깊은 얼맘의 샘물을 주고받는 부부생활은 한없고 끝없

는 그 무엇을 서로가 나눌 수 있을 것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을 발

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알몸 맡겨 버리는 날 얼맘 되어 뵈오리' 이 글

은 젊은 사람 특히 혼기를 앞두고 있는 사람은 참고로 많이 보아야 한

다. 이 생각 하나 가지면 늘 새로운 남편을 새로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957)

 

▶톨스토이는 이러한 말을 했다. 남녀가 꼭 어울려서 파티를 벌려서

좋을 게 무엇인가? 동양 사람들처럼 제각기 있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

고 하면서 동양 풍속을 퍽 동경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동양에서

더 남녀가 가까워지려고 하고 서양 것을 좋다고 하는 시속(時俗)이 되

었다. 왜 그렇게 하고 싶은가 하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해 보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저 남녀가 그대로 아무렇게나 그 짓만 하면 좋다는 그러한

생각이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고 하는

데 불가능이면 그만두어야지 의례 어지간히 할 수 있지 않은가 한다.

이는 사견(邪見)이다. 삿된 생각이란 말이다. (1957)

 

▶사물을 보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꽃을 보고 곱다면서 그냥 보는

선천관물(先天觀物)이 있고 그 꽃을 꺾는 견물생심(見物生心)이 있다.

앞에 것은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뒤에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

이다. 내가 잘 모르는 일의 하나로 미인의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그대

로 아름답고 그냥 보아지는데 기생(妓生)의 그림을 보면 음란한 생각

이 든다. 이것은 나의 선천관물의 두량(斗量)이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

도 기생의 그림은 미인의 그림이나 조각보다는 아주 깨끗하거나 아름

답게 보이지 않는다. 실상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로 나왔으면 고

우면 곱다고 그냥 느끼고 아버지에게 보고할 따름인 것이 선천관물(先

天觀物)이다. 선천관물과 견물생심 (見物生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

다. (1957)

 

▶우리가 안에서는 음란한 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이렇게 만나면 겉으

로는 점잔을 때고 자지 부지 소리만 하여도 못쓰는 건데 점잔 빼는 것

은 그만두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좀 다부지게 살아야 한다.

   혼인 안 했고 자식 안 낳아 본 이에게는 안 해야 할 미안한 말이지

만 산정(散精)하는 것이 인생의 쾌락이고 할 수 있는가? 교미한 뒤에

는 허전하고 후회되는 때가 어디 없었는가?경험 있는 분들이 어디 얘

기해 봅시다. 그것이 쾌락인가?그 짓이 쾌락이라고 하여서 남녀가 자

꾸 얼러붙는데 이것은 자기 기만이다. 결코 그 짓이 쾌락만일 수는 없

다. 알고 보면 남자가 정액을 왈칵 쏟는 일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 우

리의 알짬을 쏟아 버리는 것이 언제나 제일 후회되는 일이다. (1960)

 

▶남녀의 정사(情事)를 쾌락이라고 하지만 다 어리석은 짓이다. 이렇

게 말하는 게 포탄을 쏘는 말인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류영모란 사람은 정력이 약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보다 정력이 더 강할 것이다. 나같이 마른 사람

을 색골(色骨)이라고 한다. 나는 16살(만 15살)부터 성경을 읽지 않았

으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나는 51살까지 범방(犯房)을 했는

데 그 이후부터는 아주 끊었다. 아기 낳고 하던 일이 꼭 전생(前生)에

하던 일같이 생각된다. 정욕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이는 단욕(斷欲)하면 병이 난다고 하는데 세상 일 다 보고 더

러운 소설보고 음란한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하면서 참으면 병이 날

것이다. 갈라진 것은 갈라놓아야 한다. 갈라져야할 것들이 들러붙으면

못쓴다. 발가락도 들러붙으면 그 사이에서 무좀이 생긴다. (1960)

 

▶식(食) 문제 다음에는 성(性)문제이다. 식(食)은 안 먹으면 죽으니

까 먹어야 하지만 그러나 안 죽으려고 먹는 사람은 없다. 사람 노릇 하

는 데 시집 장가 못 가서 사람 노릇 못 하는 법은 없다. 그런데 식생활

보다 남녀 문제가 겉으로는 안 나타나도 더 복잡하고 괴상하게 얽혀

있다. 참으로 완전히 순결한 자가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이 성(性)에

대한 생각은 먹는 데 허덕이는 사람 외에는 다 가지고 있다. 이게 인생

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 세상에는 온갖 문제가 많지만 마침내는 남녀 문제와 생사(生死)

문제에 귀착하게 된다. 이것은 한없는 문제인데 이걸 연구한다고 한 짓

을 또 하며 되풀이하는 것은 못된 사람들이다. (1960)

 

▶나는 성(性)에 관해서는 괴설(怪說)이다. 톨스토이의 성관(性觀)도

괴설이다. 성경, 불경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괴설

이다. 성교라는 것은 죽어나는 것이다. 남자는 범방(犯房)하다 잘못하

면 죽는다. 거기에 빠지면 죽어나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

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야고보서 1 :15)고 한 그대로다. 얼

(靈)의 이지(理智)가 강한 이는 금욕생활의 길을 걷는다. (1960)

 

▶'약' (約)이란 '조르다'는 것이다. 채근(採根)도 조른다는 뜻이다. 자

기를 졸라야 한다. 조른다는 게 빚받는 것이다. 내성적 (內省的)인 사람

이나 자기 반성을 잘하는 사람은 자기를 바짝 졸라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빚받는 방법을 영국에다 했다. 빚을 꼭 받을 때까지 조르다가

독립을 성취했다. 자기를 빚 받듯이 바짝 조르면 성불(成佛)한

다. (1960)

 

▶오랜 조름 속에만 어려운 델 들어갈 수 있다. 입장이 엄격해서 여간

해서 못 들어가는데 들여 주면 참 기쁘다. 그것은 오랜 조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데라면 기쁘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우면 제 몸이 가 닿을까 염려된다. 이 세상에서 아름답다는

건 이놈 저놈이 다 가니 거짓 아름다움이다. 정말 아름답다면 감히 곁

에 못 간다. 우러러 볼 뿐이다. (1960)

 

▶사춘기(思春期)의 그리움은 치정(痴情)이다. 치(痴)의 결과로 혼인

하게 된다. 사람이 정욕에 붙잡히면 뗄 수 없게 된다 식탐(食貪)에서

시작하여 색탐(色貪)이 일어난다. 어떤 의미로 하면 이것도 하느님이

허락한 것이기도 하다. 소위 연애할 때는 남녀가 만나 얘기하는 것은

참으로 유치하다. 어리광을 상대방에게 하는 게 연애다. 일찍 철이 든

사람은 이런데 안 빠진다. (1960)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뱀이 꾀인다. 쳐다봐라 쳐다봐라

꾀이는데 쳐다보면 아름다운 것 같아 돌아가려다가 쳐다보고 돌아섰다

가 쳐다보고 하다가 결국 따먹어 버린다. 에덴동산의 일은 몸에서 일어

난 일이다. 뱀은 남자의 생식기다. 뱀의 대가리 같은 그게 먼저 요동을

했다. (1960)

 

▶나는 말을 함부로 하는데 연놈들이 들러붙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고

하는데 그러나 연놈들이 들러붙는 것처럼 보기 싫은 꼴은 없다. 다 속

아서 하는 일이다. 깬 세상에서는 안 하는 일이다. 하늘로 머리 둔 것

들이 개돼지 짓을 하는 건 다 속아서 하는 일이다. 영화관 앞에 가면

두 눈깔 멀뚱멀뚱한 것들이 입을 맞추고 있다. 그게 무슨 예술인가?

글쎄 그것 참 꼴 보기 싫은 것이다. 하더라도 불을 끄고 해야 한다. 그

런데 대낮에 내놓고 그게 뭣 하는 짓인가?그것 정말 꼴 보기 싫은 것

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곳을 뛰쳐나와야 한다. (1960)

 

▶이 세상에서 좋다는 것은 간질이는 것이다. 웃으면서도 죽을 지경이

다. 간질이는 게 싫으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는 게 이 세상이다. 참 기

가 막힌다. 견딜 수 없이 가려워서 긁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대도 꾹

참는 게 있어야 한다. 아니할 수 없는 것을 아니하고 꾹 참고 지내는

게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의 이 인생은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가 지나

가는 이 길은 죽도록 참아야 한다. (1960)

 

▶금욕자들은 성욕(性慾)이란 말을 안 쓴다. 수욕(獸慾)이라고 한다.

수욕이 어째서 성욕이 되는가. 바탈(性)의 하고픔은 하느님께로 오르

자는 것이다. 수욕을 성욕이라 함은 인정 (人情)을 치정 (痴情)으로 화

하게 한다. 인정은 단순한 인정이다. 프로이트가 일체를 성욕에 근원한

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사회가 망하게 된 것은 잘못된 성욕론

때문이다.

   모두 혓바닥의 장난이다. 아래도 위와 같이 입과 혓바닥이 있다. 이

것을 잘못 놀려서 작게는 나 자신이, 크게는 사회 전체가 화를 입고 망

하게 된다. 강간(强姦) 시간(死姦)하는 놈의 세상에 이게 실성(失性)

않고 이렇게 되는가? 천지에 가득 찬 성(성령)을 비쪽 나온 것과 움쑥

한 것에 성(性)을 붙여 놓는 세상이라 실성하지 않고 이렇게 되는

가?(1960)

 

▶인류(人類)라는 것이 돼지와 똑같이 이 몸을 위해 일하다가 나중에

서로 폭발(인구폭발) 하라고 만든 게 아닐 것이다. 맹수 같은 짐승은

서로 폭발되는 일이 없는데 왜 사람만이 이런 문명을 가지고 있단 말

인가?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그리워하고 따르는 건 다른 게 있으니

까 그렇다. 건강한 이는 별미를 찾지 않지만 약한 이가 별미를 찾는다.

남녀가 만나는 의의가 크구나 하다가도 성생활은 일찍 그만두게 되어

야 한다. 남녀의 관계를 자꾸 계속하다간 저 혼자만 망하는 게 아니라

온 인류가 망하게 된다. 가축이나 과일나무조차 새끼를 조절할 줄 아는

데 어찌하여 사람들이 왜 제 새끼 수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인가?(1960)

 

▶사람은 분명 짐승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음이 얼사람으로 솟나

는 우리의 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란 태어나서 다른 것을 직접 간

접으로 잡아먹고 사는 것은 짐승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맘속에 있는

얼을 밝혀 우로 한없이 솟아나려 함이 인생의 길이다.

   이 세상 일반의 최대 흥미와 관심은 색(色)과 식(食)이다. 사람들의

일체 문화 활동의 초점은 이 이대욕구(二大欲求)를 충족시키는 데 있

는 것 같다. 참으로 식색(食色)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삶의 목적

이라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볼 필요가 없다. 이것은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이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다른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다. 다른

짐승들은 고뇌도 없이 이 두 가지 욕망을 자유롭게 충족시킨다. 짐승들

은 그 밖에 다른 목적이 없다. (1960)

 

▶톨스토이의 성관(性觀)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단지 생각만으로는

안 된다. 수십 년을 수도한 수도자가 순간에 넘어간다. 성경이나 불경

은 다 독신주의다. 그러나 그게 좋다고 해서 누구나 될 수 있는 줄 알

면 잘못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성관계와 식생활에서 나온다.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다. (1960)

 

▶요새는 정력(精力)을 발산하라고 하지만 직접적으로 발산해선 못쓴

다. 학문이나 예술이나 운동으로 발산해야 한다. 정욕이 왕성한 청년기

에는 여러 방면의 재능이 잘 길러지는 때이다. 외(外)호르몬을 방출하

게 되면 내(內)호르몬이 생성될 여가가 없다. 외호르몬을 방출 안 하면

외호르몬은 생산할 필요가 없어 내호르몬이 충족되게 된다. 외호르몬

은 자꾸 방출하면 내호르몬이 생성되지 않아 기운이 쇠잔해진다.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