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瞋, 성냄)에서의 자유

 

▶아무리 아힘사(不殺生)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라도 악한 사람을 보면

금방 죽이고 싶어진다. 그러나 참으로 선(善)을 알고 사랑을 알고 악을

없애겠다는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는다. 독사, 맹수조차도 죽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이것들이 놀라지 않을까 조심까지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있는 것도 다 하느님의 뜻인 줄 알고 살생을 하지 않는다. 악한 사람을

보면 당장에 때려죽일 것처럼 날뛰는 사람이, 악을 가장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악을 범하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는 냉정하여 무아(無我)의 지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불살생(不

殺生) 무상해(無傷害)가 원칙이다. 내가 괴로움을 당하지만 남에게 괴

로움을 주지 않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직도 선(善)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할 수 없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자기도 악당이 되고 만다. 악

이라는 존재는 하느님의 뜻으로 없어질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면 악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라

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사상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간

디의 진리파지 정신이다. 간디의 진리파지는 정의의 싸움으로 악과 타

협하지 않는 것이다. 비타협은 적극적인 전법의 하나이다. 이것을 하지

않는 한 진리파지는커녕 아무것도 아니다. 간디주의는 상식적으로 생

각하면 배우기 쉽다. 그러나 불살생 비타협의 실천은 쉽지 않다. (1956)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한 탓

이 옵니다. "(시편 73:3) 악인이 잘 살고 오만한 것을 생각한 나머지 미

끄러질 뻔했다는 것이다. 못된 놈치고 형통하지 않는 놈 없다. 우리 눈

앞에 당장 보고 있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는 대개 못된 놈이 잘된다.

잘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는 권력을 잡고서 떵떵

거리며 잘 사는 것을 잘된 것으로 본다면 대개 못된 놈이 그렇게 산다.

그 꼴을 보고 시샘한 것이다. 못된 놈은 잘돼 가지고 오만을 부리지 않

고는 못 견딘다. 그래서 질시를 받고 미움을 받는다. 이런 못된 놈들을

보고 질시하다가 실족할 뻔했다는 것이다. (1956)

 

▶물건의 수량을 따지고 기계를 돌리는 데는 세밀하고 자세한데 사람

노릇 하고 삶의 뜻을 따지는데는 아주 눈이 멀었다. 돈을 만지려고, 재

미를 보려고 사람까지 죽이려 한다. 사람을 죽이면 죽인 자신도 죽는

것을 안다. 그래서 죄를 저질러도 따진다. 웬만하면 사람을 안 상하게

해야 나중에 벌을 당하더라도 덜 당하게 된다. 물론 안 붙잡히려고 하

지만 혹시 잡히더라도 제2선 제3선을 따진다. 그리하여 될 수 있는 대

로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하려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없어졌다. 도

무지 따지지를 못하고 무모하고 충동적이다. 이렇게 캄캄한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1956)

 

▶인류 역사를 돌에 새기고 쇠에 녹여 부어 수천 년 수만 년을 지나

왔어도 결국 싸우고 물어 찢은 기록들이라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인류의 역사는 죄악의 역사지 그 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개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역사는 모두가 죄악뿐이요 후회뿐이지 누

가 감히 자기의 과거를 자랑할 수 있으랴. 어거스틴만 참회록을 쓰고

루소만 참회록을 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의 과거를 쓰면 다 후회

요 참회일 것이다. 지나간다는 과(過)는 본래 허물 과'자이다. 뱀이

허물을 벗어 버리듯 벗어 버릴 것이지 영원히 보존할 것이 못된

다. (1956)

 

▶하느님 받들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사람 짓이기는 일은 살일 난 듯

잘한다. 서투른 사람이 언제나 일을 저지른다. 도둑은 도둑질을 하여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오히려 서투른 도둑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다. 죽여도 아주 비참하게 죽인다. 서로 당(黨)을 가지고 있으

면 적(敵)인 상대당을 없애기 위해서 다투게 되는데 상대당을 참혹하

게 짓이긴다. 일제(日帝)시대에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만

보산 사건 당시인데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나 중국 사람들을 못살게 하

여 한국에 있는 중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피하여 숨어 다니느라

볼 일을 못 본 일이 있다. 남을 짓이기기를 좋아하는 개인이나 나라나

결국 망하고 만다. (1956)

 

▶'내가 누구인데'라고 하는 나는 삼독(三毒)의 제나(自我)이다. 조금

만 해도 노여워서 '네가 감히 나한테'라고 한다. 이러한 삼독의 나는

벗어 버려야 한다. 내가 할 때 책임질 얼나(靈我)가 되어야 한다. 온

세상이 하느님을 배반하여도 나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나는 로고스(말

씀)의 나이고 보혜사(성령)의 나이다. 어쨌든 제정신을 차려 얼나가 임

자가 되어야 한다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