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하느님 아버지만이 계심니다 父在

 

아버지 당신만이 아주 크신 얼이옵고                父爾絶大中

닮지 못해 작고 작은 아들이옵니다                  不肖微小子

있어 있으셔 오직 하나로 계시옵고                  存存唯一在

힘쓰고 힘써 이어 갈 많은 아들들이옵니다           孜孜代多仔

                                                                      (1957.1.8)

 

爾 너 이, 뿐 이 不肖(불초)닮지 않은 微 작을 미. 孜孜(자

자) :부지런히 힘쓰는. 孜: 부지런할 자. 仔 : 이길 자 여기서는인자

存 있을 존  代: 갈아들 대

 류영모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 이르기를 "우리는 전체

에서 나온 부분이다. 부분은 전체를 밝혀야 한다.부분은 전

체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분은 전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전체를 아

버지라면 부분이 아들이다"라고 하였다. 부분의 생명은 전체에 있다.

부분은 전체에서 떨어지면 멸망이다. 그러므로 부분은 전체를 잊어서

는 안 된다. 그런데 "온통(전체)을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절대

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다석어록)

   전체를 생각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인 하느님을 없다고 하거나

모른다고 하기가 예사다. 부분의 생명체로 전체를 없다고 하면 어리

석은 사람이다. 모른다고 하면 멍청한 사람이다. 전체를 모르면서 아

는 체한다면 그 잘못은 더없이 크다. 예수·석가는 다른 이가 아니다.

전체인 하느님을 안 이다. 석가는 이르기를 "아난다야, 나의 정신적인

힘은 커서 못할 일이 없다. 또 나의 정신적인 눈은 보지 못할 곳이 없

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오직 니르바나(하느님)만을 가장 잘

알고 또 기뻐하고 있다"(대반열반경)라고 하였다. 또한 예수는 이르

기를 "내가 나 자신을 높인다면 그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영광을 주시는 분은 너희가 자기 하느님이라고 하는 나의 아

버지이시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알고 있다. 내

가 만일 그분을 모른다고 말한다면 나도 너희처럼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있으며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

(요한 8:54~55)라고 하였다. 예수와 석가는 이렇게 전체인 하느님 아

버지와 유대를 확립한 성자들이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인격은 하느님 아버지와

교통할 수 있는 아들의 자격을 갖추겠다는 거기에 있다. 혈육을

가진 짐승인 우리가 개나 돼지와 다른 것은 하느님과 교통하는 얼을

가졌다는 것밖에는 없다"고 하였다.

   예수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러서 거룩한 천륜(天倫)이 회복되고

확립되었다. 이것이 극기복례이다. 이것은 예수의 지대한

공로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진리의 아버지를 찾은 것은 인류에게 역사

적인 큰 경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른 것은 예

수가 처음인 것은 아니다. 예수가 읽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에레미야

서에도 나온다. "너희가 나를 아버지라 부르며 행여 나를 떠나지 않기

를 바랐다."(에레미야 3;19) 예수에게 직접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지만

중국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인 황제를 천자라 불

 렀다. 천자란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아들이란 뜻이다. 더욱 놀라운 것

은 노자는 하느님을 어머니로 나타냈는데 장자는 하느님

을 아버지로 표현한 것이다. "여느 사람들도 특별히 하느님을 아버지

 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몸소 사랑한다. 그런데 하물며 뛰어난 이들이

 랴."(彼特以天爲父 而身猶愛之 況其卓乎 장자 대종사편)

 

 아버지 당신만이 아주 크신 얼이옵고          父爾絶大中

    예수의 하느님 아버지 관은 생각할수록 감동스럽다. 예수가 말

하기를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선생이라 불러주

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선생 소리를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

지라 부르지 말아라. 너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한 분뿐이다"(마태오

23:9)라고 하였다. 이는 하느님 아들인 얼나(靈我)를 깨닫지 않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하느님이야말로 사부일체이시

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을 스승으로 배우지 않

고는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믿는다고 할 수 없다.

하느님만이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로 생멸하는 모

든 상대적 존재의 근거이며 귀착이다. 그래서 절대중이라 하

였다. 예수가 이르기를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

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한 10:29)라고 하였다. 중(中)이란

선악, 유무(有無), 생사를 초월한 절대를 말한다. 中은

절대라 아무 것도 없으면서 성령으로 가득찼다. 그래서 중용에서도

  가운데란 우주의 큰 밑동이다."(中也者天下之大本也 중용 1장)라고

 하였다.유영모는 이르기를 "절대 유일을 알고 거기에 붙잡히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다.거기에 삶의 참 맛이 있다"라고 하였다.

 

닮지 못해 작고 작은 아들이옵니다             不肖微小子

   창세기에는 "하느님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창세기

1:27)고 하였지만 그것은 사람의 바람일 뿐이다. 사람이 하느님 모습

을 닮았다고  할 구석은 전혀 없다. 하느님은 얼로 자유한데 사람은 몸

에 갇혀 꼼짝 못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몬에 갇혔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참 못

난 것이다.물질에 갇혀 있음은 참 못난 짓이다.이 틀(몸) 쓴 것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못난 거다."(다석어록)

   번뇌하는 사람을 가엾게 생각하였는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몸생명은 살았으되 죽은 것이다. 류영모

는 이르기를 "내 맘속에 있는 하느님의 씨인 하느님 아들을 믿지 않

으면 이미 멸망한 것이다. 죽을 몸을 나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위

로부터 난 얼생명인 하느님 아들을 알지 못하면 그게 이미 심판받고

정죄받고 멸망한 것이다. 얼로 거듭날 생각을 안 하고, 그것을 모르니

까 이미 죽은 거다. 몸의 숨은 붙어 있지만 벌써 멸망한 거다"(다석어

록)라고 하였다.

   얼나로 거듭나도 아버지의 얼은 무한한데 우리의 얼은 한 긋(點)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한 l4:28)라고 하

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얼이라 예수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하였다. 예수는 이르기를 "하늘과 땅의 임자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

려 철없는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고맙습니다" (마태오

11.25)라고 하였다. 여기에 어린아이들(小子)이란 예수 자신을 포함

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킨 말이다. 이러한 소자 정신은

예수가 말한 무익한 종에서 잘 드러나 있다. 예수는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가 17:10)라고 하였다.

 

있어 있으셔 오직 하나로 계시옵고             存存唯一在

   전체인 하나(一)는 있어서 있는 것이지 누가 있게 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없게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자

유하고 자존한다. 하나(一)는 없이 있는 절대존재라 하나 속에

생기는 여러 유(有)의 개체들은 아무 것도 아니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로 시작해서 마침내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생각

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대종교가, 대사상가가 믿는다는 것이나

말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를 구하고, 믿고, 말한다. 성인이고, 부처고,

그리스도고 도(道)를 얻어 안다는 것은 다 이 하나다. 사람이란 이처럼

하나를 구해 마지 않도록 생긴 존재다.그래서 나는 참나인

하나의 증인이다."(다석어록) 류영모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참나에 대해서

자세히  알 것 같으면 하나의 증인이다. 그 하나가 나에게 계셔 나에게

사람의 사명을 주신 이다. 그 사명을 받아서 '하나'의 아들이 된다.

하나의 아들이 된 것을 느끼므로 하나의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

내 맘에서 자꾸만 하나의 뜻이 일어난다.

 

 힘쓰고 힘씨 이어 갈 많은 아들들이옵니다            孜孜代多仔

사람도 몸으로는 탐 진 치로 사는 짐승임에 틀

림없다. 그러나 사람을 낸 하느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될수록 짐

승 노릇을 그만두고 하느님이 주시는 얼생명으로 하느님 아들이 되라

는 것이다. 하느님 아들은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이것

을 깨우처준 이가 예수 석가이고 노자 장자이며 공자 맹자다. 20세

기에 와서 틀스토이 ·마하트마 간디 류영모가 이를 다시 확인하여 주

었다.짐승인 제나가 거짓 나인 줄 알고 짐승 노릇을 싫어하면 하느님

아들인 얼나로 거듭난다. 얼나는 하느님의 얼이라 영원 불멸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허공으로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다. 백

간짜리 집이라도 고루고루 쓸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주 허공 그

너머의 하느님 아버지의 성령도 내 것으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늘 스스로 반성하고 좋

은 일에 전력을 다 하면 마음이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악해질 리가

없다. 악한 놈이 길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입 달린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얌전해도 못쓴다 하고, 정직한 사람은 못 사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은 거의 세기말적이라고 하지만 그 가운

데도 하느님의 아들들이 살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겉으로 나타

나지 않지만 악에 무릎을 꿇지 않고 버티고 있다. 그들이 없다면 세

상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악한 세상에 무슨 하느님 아들들의 시대                                                                                                

 가 오겠느냐고 하지만 하느님 아들들의 시대는 반드시 올 것이다. 이

것을 믿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쉽다."(다석어록)

   하느님 아들로 살고자 한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마하트마

간디는 암살을 당했다. 미인박명이라더니 진인박복인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식색의 생활이 풍부 한것이

참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하느님 아버지의 사

랑을 받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르기를 "행복의 열

쇠는 일체 만물을 주신 진리(하느님)를 받드는데 놓여있다"

The key to happiness lies in the worship of truth, which is the

giver of all things -M.K.간디. 날마다의 명상)라고 하였다. 하느님의

사랑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사랑하는 이에게는 하느님 당신의 실체를

많이 드러내 보여준다. 예수가 하느님을 잘 알고 간디가 하느님을 잘

안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다. 그들이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받았는가. 그들이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있으므로 몸나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잠시 지나갈 뿐이다.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