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거짓 님에 굽히지 말자 不拜偶像(三)

 

   제나로는 못 얻되 얼나로 빔에 이르러         有爲不得無爲空

   나아가 씨알 평안케 하면 길이 조용해         民將安之長安定

   요순도 그걸 걱정하다 오히려 아쉬웠고        堯舜病諸猶有憾

   공자 맹자도 부르짓다가 말 없고자 해         孔孟說破欲無言

                                                (1957.1.12)

 

   爲 다스릴 위,할위 得:잘할득 將 나아갈장 病:아파할병

   諸 .그것 저 憾:아쉬워할 감. 設破 :자세히 밝혀 힘주어 말하다

 

   지금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이 물질세계는 분명히 참이 아닌 거짓이

다. 왜냐하면 없었던 것이 생겼다가 다시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므로 이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우상(偶像)임에 틀림없다. 이 현상세

계에 붙잡히는 것은 우상에 절을 하는 것이다.이 현상세계는 환상의

신기루임을 아는 것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다.류영모는 이렇

게 말하였다. "없는(無) 걸로 시작해서 없는 걸로 그친다. 있다는 것

도 마침내는 없는 거다. 우리가 이를 느껴야 하는데 느끼지 못하니까

좀 느껴보자는 것이 우리의 노력이다. 이 세상은 그만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땅에서 그만

이라면 소극적인 것이다. 위로 가서 그만이라는 '그이만'이다. 참으로

하느님 그이뿐이다." 그러므로 불배우상의 사상으로 살겠다는 사람은

이 세상에 미련 갖지 말아야 하고 몸뚱이에 사로 잡혀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할 일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3년을

더 살든 3달을 더 살든, 3일을 더 살든, 3시간을 더 살든 그 사는 동

안에 우리는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찾아야 한다. 류

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제각기 살겠다는 근소한 것들은 수효가 많

다. 마치 구더기 같은 존재들이다. 다만 구더기와 좀 다른 것은 자꾸

원대(遠大)를 찾고 위(하느님)로 올라가겠다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위로 올라가겠다는 정신이 없으면 우리는 구더기와 같다.위로 올라

가겠다는 한 말씀을 받들고, 머리 위에 존중(尊重)한 님을 이고,무겁

고 괴로운 삶을 이겨 나가야 한다.이 명령이 우리의 목숨이다.이 얼

생명을 가지고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다.역사를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좇아가다가 도중에 그만둔 것 같다. 그러나 우

리는 다시 이어 끝까지 좇아가야 한다."(다석어록)

 이 세상에는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사람들과 어

떻게 지내는가. 류영모는 좋이 지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이 세

상에 나왔으면 좋이 살아야지 나만 여기서 좋이 살면 안 된다. 한 어

머니 배에 쌍둥이가 있으면 쌍둥이 하나 마저도 좋이 좋이 이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는 수십억의 쌍둥이(인류)가 있지 않

는가. 이 수십억의 쌍둥이가 좋이 좋이 다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 우리

의 소원이 아니겠는가.좋이 살겠다는 이것은 하느님의 큰 뜻이다."

 

제나로는 못 얻되 얼나로 빔에 이르러         有爲不得無爲空

   짐승인 삼독의 제나로 사람을 다스리겠다는 것은 원숭이들처럼 대

접을 받으며 자기 새끼를 많이 두자는 것이라고 드바르는 "침펜지의

정치"에서 밝히고 있다. 지난날의 임금들이 우리에게 고맙기는커녕 역

겹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위(無爲)는 하느님 아들인 얼나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 석가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보여

주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서로 예수의 좌우에 서려

고 하자, 예수가 그들을 불러서 말하였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

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

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마태오20 :25-28) 예수가 가르친 것이 무

위 (無爲)의 삶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세상은 하느님의 그물이다. 제 맘대로 안

된다"(天下神器 不可爲也- 노자29장)고 하였다. 노자도 하느님의

뜻대로 해야지 사람의 뜻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류영모가 이

르기를 "영웅주의 심리로 역사에 저지른 아무개같이 하고 싶다는 생

각이 들면 밤낮 이 모양 이 꼴밖에 안 된다. 사람은 자기가 살았을 때

에 그 사업이 완성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자기 생전(生前)에

했다고 해야 좋아한다. 그러자니 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밤낮 다스

린다는 정치(政治)는 불치(不治)이다. 욕속(欲速)이면 부달(不達)이

다. 빨리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다. 천천히 찾아가면서 가는

사람이 바른것을 찾는다. 급하게 서둘러서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니까

결국에는 피까지 흘리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낙심하지 많고 서두르

지 않으면서 꾸준히 그 길로 나가는 것이 바른 신앙인 것이다"

(다석어록)라고 하였다.

 

나아가 씨알 평안케 하면 길이 조용해         民將安之長安定

자로가 스승인 공자에게 참 사람(君子)에 대해서 물었

다. 공자가 말하기를 "하느님을 받드는 것으로써 나를 닦는다. (나아

가) 나를 닦아서 남을 평안케 한다.(나아가) 나를 닦아서 씨알을 평안

케 한다. 그것을 요순도 오히려 걱정하였다"(脩己以敬 脩己以安人

脩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논어 헌문편)고 하였다. 류영모는 공

자(孔子)의 이 말에서 따온 것이다. 이은 시구인 요순병저유유감(堯

舜病諸猶有憾) 으로 더욱 분명하다. 공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

이라 이것도 정치적인 얘기임에 틀림없다. 요즘 말로 하면 치안과 복

지를 잘하여 백성들이 평안히 살아갈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평안을 주지 못한다. 예수가 이르기를 "너희는 걱정

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2)라고 하였다.

여기의 나는 얼나인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영원한 생명을 깨달

으면 참으로 아무런 걱정이 없다. 모든 걱정은 노자의 말대로

몸뚱이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몸이 죽어도 좋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

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죽음은 없다.그런데 죽음이 있는줄 알고 무

서워 한다.죽음을 무서워하는 육체적 생각을 내 던져야 한다"고 하였

다.이쯤 되어야 불안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몸나로 사는 동안은 온 인류를 내 쌍둥이 형제

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기본

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씨알을 위함이 하느님 위함이

다. 이 소자 중에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 백성을

모른다 하면서 하느님만 섬긴다 함도, 하느님은 모르면서 백성만 위

한다 함도 다 거짓이다."(다석어록)

 

요순도 그걸 걱정하다 오히려 아쉬웠고      堯舜病諸猶有憾

  공자와 맹자는 참으로 출중한 재상감이었는데 어느 임금도 공자

맹자를 재상의 자리에 앉히지 못하였다. 공자 맹자를 참으로 알아주

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류영모는 공·맹에 대해 말하기를 "중

국의 공 맹은 사람들의 살림을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시대에는 이에 열띤 활동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자 맹자

를 다 몰랐다. 누구를 존경하고 좇는 것이 다 제 욕심 채우려 드니까

모르게 되는 거다. 예수 석가도 바른말을 하였는데 사람들이 못 알

아들었다"라고 하였다 .

  공자 맹자가 정치지도자로서의 본보기로 삼은 이가 요순이다. 공자

와 맹자가 다 같이 흠모하고 찬양하였다. 공자 ·맹자의 말에 의하면

요순이 이상국가를 세우기라도 한 듯이 말한다. 그런데 류영모는 그

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옛날에 이상의 시대가 있었다는 사상도 미래

에 이상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사상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추측한 범

위 내에서는 옛날에 좋은 때도 없었고 차차 내려오면서 언짢아졌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천국이 온다고 해도 거기서는 정신적

으로 얼마나 키가 커지겠는가. 얼마나 좋은 것을 보겠는가. 무엇이 이

상적으로 될 것인가. 사람이 몸뚱이를 가진 이상 그대로 바로 되리라

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이 상대성 속에서 원만한 이상적인 무엇이 일

 어 난다는 것은 이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다."

공자 맹자도 부르짓다가 말 없고자 해         孔孟說破欲無言

   공자 맹자는 제후를 찾아다니며 정치학 강의를 한 셈이다. 그것을

유세(遊說)라고 한다. 그러나 공자 ·맹자의 정치학 강의가 너무 어려

웠는지 한 제후도 그들을 등용하지 않았다. 공자가 14년 동안 이른바

 주유천하를 하였으나 뜻하던 바가 물거품이 되자 뒤늦게

체념하고서 "나 말 없고자 한다"(予欲無言- 「논어」 양화편)고 하였다.

공도자가 맹자에게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은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맹자

가 대답하기를 "내 어찌 말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내가 할 수 없어서이

니라"(予豈好辯哉 予不得已也-맹자 등문공 하편)라고 하였다. 맹자

를 읽어보면 맹자는 말 잘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눌변에

속하였는데 맹자는 달변이었다. 그러나 맹자의 달변도 공자의 눌변과

다름없이 제후들의 소귀, 말귀에는 소용이 없었다. 맹자는 자신이 득

의(得意)하지 못함은 하느님의 뜻이라며 체념하였다. 이르기를 "저 하

느님이 세상을 고르게 다스리려고 하지 않아서이지, 세상을 고르게

다스리고자 한다면 오늘 이 세대에 있어서 나를 두고 또 그 누구이겠

는가"(맹자 공손추 하편)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