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거짓 님에 굽히지 말자 不拜偶像(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빈 염불이고                  修齋治平空念佛

'널리 베풀어 중생 건지기'는 버린 과제인가           博施濟衆廢宿題

너와 내게 얼나 있으면 바람직한 나라                 有道彼我理想國

스님의 탁발에도 말법이면 얼님이 하늘에 올라         僧託末法主昇天

                                                      (1957.1.I2)

 

修齊治平(수제치평) :修身 齋家 治國 平天下의 줄임

 

   참괴스럽도록 죄악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에 그래도 자랑스런 일이

있다면 짓밟혀 오기만 하던 씨알(民)이 주권을 찾아 민주정치를 이룩

했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바쳐야 할 씨알의 충성을 옆에서 가로챈 임

금이 사라지게 된 것은 정치 못지않게 종교쪽에 큰 뜻이 있다. 신이

아니면서 신처럼 군림하던 우상(偶像)이 부서진 것이다. 류영모는 이

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 임금(王)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

을 깔고 앉아 충성을 바라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

다. 사람이 사람 위에 서 있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니겠는가.그 뒤로

민주정치가 발달되어 지금은 밝아진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이 없

어졌다. 임금이 없어진 세상에, 민주정치가 시행되는 이 땅에 우스운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세상에서 높은 분은

하느님 한 분밖에 안 계신다. 이것을 모르고 아직도 우스운 짓을 하고

있는 민족이야말로 마지막에 달한 우스운 민족이다."(다석어록)

  이제 임금이란 우상은 없어졌는데 아직도 정치(政治)를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아는 정치우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인생의 목적

이 정치를 잘 하는 데 있는 것으로 안 이의 대표자는 공자(孔子)일 것

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듣는 사람들 가운데는 사람은 오로지 벼슬을

하는 데 삶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깨뜨려야 할

정치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마하트마 간디는 정치를 하면서도 정치

가 목적이 아니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목샤, Moksha)이 목적이라고 하

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가 세상(나라)을

잘 다스려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에 가는 일을 잘 해야지 세상이

나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은 기어코 헛일밖에 되지 않는다. 사

람들은 하늘에 먼저 해야 할 것을 땅에 먼저 한다. 사는 목적을 하늘

에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가질 목적이 없다.

이 땅에서 참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 참이지 온전한 참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진리란 없다. 절대진리는 하늘 위에 있다. 우리는 이 절

대진리를 좇아 올라가는 것이다. 절대가 아닌 것은 생각하지 말고

지상의 것은 훌훌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一) 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의 님을,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이 우리의 일이다.절대진리인 하느

님을 위해서는 내버릴것은  모두 내버려야 한다."(다석어록)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빈 염불이고         修齋治平空念佛

  수제치평 (修齋治平)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 齋家治國平天下)를

줄인 것이다. 이 말은 『대학』(大學)에 나온다. 몸을 닦아, 집을 가지

런히,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안케 하는 것이 큰 사람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수신(修身) 앞에도 마음을 바르게 하다(正心), 뜻을

참되게 하다(誠意), 앎에 이르다(致知), 사물에 다닥치다(格物)가 있

다. 그런데 여기에서 격물(格物)의 해석이 가지가지다. 격물(格物)은

장자의 재물(齋物)과 같이 물질을 통해서 물질 너머의 정신을

파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유교의 말인데

그것 가지고는 몇만 년이 지나도 안 된다. 사람은 한 자리에 혼자만

오래 앉아 있으려고 하면 안 되게 되어 있다. 서양은 자꾸 변하였기에

발달하였다. 나는 치국평천하가 그렇게 호락호락 될 것

같지 않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이 제한이 있다. 형이하에도 형이상에

도 그만큼 되는 거지, 뭐든지 다 되는 법은 없다. 그것은 욕심이다."

(다석어록) 그래서'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공염불로 내려왔지 그대로

실현된 적이 없다.

 

널리 베풀어 중생 건지기'는 버린 과제인가     博施濟衆廢宿題

  어느 날 자공(子貢)이 스승 공자(孔子)에게 말하였다. "널리 씨알들

에게 베풀어 뭇 사람을 건질 수 있을 것 같으면 어질다고 말하겠습니

까?" 공자가 가로되 "어찌 어질다 뿐이겠는가, 틀림없이 거룩할 것이

다. 요와 순도 오히려 그걸 걱정하였다"(如能博施於民 而能濟衆 何

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乎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 논어 옹야

편)라고 하였다.

   대통령이 국빈이 되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반드시 장애인을 수

용하는 시설을 찾아본다. 그 장애인은 그 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

이다. 가장 어려운 이를 찾아보는 것이 온 국민을 찾아보는 것과 같

다. 맹자도 이르기를 "늙고서 아내 없는 홀아비, 늙고서 지아비 없는

과부, 늙고서 자식 없는 홀앗이, 어리고서 어버이 없는 외로운 아이,

이 네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백성으로 얘기할 데가 없는 이

들이다. 문왕이 정치를 일으켜 어짐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사람들을

먼저 하였다"(맹자. 양해왕 하편)고 하였다. 또 예수는 이르기를 "너희

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

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오

25:40-45)라고 하였다.

  박시제중(博施濟衆)이 넓게 베푼다 하여 잘사는 사람에게까지 더

준다는 뜻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

(孔子)는 말하기를 "쪼들리는 이에게 두루 주는 것이지 잘사는 이에

게 이어 주는 것이 아니다"(周急不繼富 논어 옹야편)고 하였다. 그

런데 정치하는 이들이 박시제중(博施濟衆)이라는 제일의 과업을 내버

렸다.그래서는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할 수 없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로 하려고 노력했지만 바로 되지 않는 게 인간의 역사

다. 실패의 역사에서 무엇을 보려나. 이 원정미정(願正未正)의 역사에

그래도 바르게 해보겠다는 이것이 우리의 길이다.그러니 정치도 반

듯한 사람이 하여야 모든 것이 반듯해지는 법이다. 마음이 반듯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영원(하느님)과 마음이 끊어지고 미혹하게 된다."

(다석일지) 그러나 저마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영원한 생명인 얼나

를 깨우치는 데는 일체의 차별이 없다. 빈부,귀천, 남녀, 노소를 가리

지 않는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온세상이 다 눕지 않도록 얼 생명을 일

으켜 세워야 한다.그렇게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이 누구냐 말이다.

참으로 모든 사람을 다 일으켜 세우는 박시제중할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것이 나다.그런데 나부터 서지 못하고 누워 버렸으니

입명(立命)을 못하였으니 못난 나가 되고 말았다.

나가 못나면 못 보게 마련이다."(다석어록)

 

 너와 내게 얼나 있으면 바람직한 나라        有道彼我理想國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세상에 올바름이 있으면 나타나고 올바름

이 없으면 숨는다"(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논어 태백편)고 하였다.

류영모의 모든 말의 초점은 얼이다. 그것은 예수 석가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 시의 유도(有道)도 올바름이 있다는 것보다는 얼나가 있

다로 하였다. 유도(有道)는 영성존지(靈性存持)함이다. 류영모는 이렇

게 말하였다. "몸나가 없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 하느님 앞에는 얼

나가 있다. 얼나가 있는, 하느님 계시는 곳이 거기(彼岸)다. 거기가

하늘나라다. 거기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거기에 가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요 참나를 깨달음이다.하늘나라가 깨달음이다.자각과 천국이

둘이 아니다.얼나와 하느님은 하나다."(다석어록)

류영모가 말하는 이상국(理想國)인 얼의 나라는 진리의 나라, 하

늘나라를 말한다.

   류영모는 이 땅위에는 유토피아(理想國)가 없다고 하였다. 공산주

의가 이 땅위에 공산 유토피아를 세우겠다며 온갖 죄악을 저지르는

지옥나라를 만든 것을 언짢게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툭하면 유토피아

(理想國)를 말하는데 이상세계가 오면 어떻단 말인가. 유토피아

(utopia)도 상대세계일 것이고, 나고 죽는 세계이겠지. 우주 자체가

한숨인데 유토피아엔들 울음소리가 없겠는가.한숨은 이상세계에서도

나온다. 그놈의 이상세계가 어떠한지, 그 세상 가지고 사람을 심판할

만한 것이 되겠는가. 공산 유토피아 때문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

여도 된단 말인가."(『다석어록』)

   류영모는 이 땅위에서의 유토피아를 벌(蜂)에서 보았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사람의 이상세계는 벌(蜂)의 사회를 닮

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왕벌은 한 번 수정해서 그것을 평생 자기 속

에 간직하여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쓴다. 무정란에서 슷벌이 나오고 유

정란에서 암벌이 나온다. 숫벌은 수가 적고 암벌은 수가 많다. 암벌이

일하는 일벌이다. 암벌은 결혼하는 법이 없다. 암벌은 평생 동안 정성

을 다해서 꿀을 모아들이는 일에만 열중한다. 부국(富國)은 암벌의 꿈

이다. 수벌은 영웅처럼 나라를 지킨다. 수벌도 결혼하지 않는다. 다만

수벌 한 마리만이 여왕벌에게 한 번 수정시킨다. 여왕벌은 한 번 정

(精)을 받으면 평생 그 정(精)을 가지고 일하는 일벌을 생산해 간다.

국민은 꿀을 아껴 먹고 여왕벌에게는 좋은 꿀을 많이 먹인다. 그러면

여왕벌이 된다. 왕벌은 한 마리뿐이다. 벌 세계는 마치 정신세계와 같

다. 벌 세계처럼 순수(惟情)하고 한결같은(唯一) 사회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가장 높은 이상은 모두가 얼생명으로 하나 되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몸으로는 나와 너로 나뉘어졌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인 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석도(夕濤) 유형재는 서법예술사에서 뽑은 우리나라 10대 서예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찍이 이 사람을 찾아와서 "글씨는 진리(道)를

담을 그릇인데 진리를 모르고 글씨만 쓰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글씨는 일창(一滄 兪致雄) 선생님에게 배웠는데 선생님은 아쉽게도

도(道)는 모르시는 분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말이

하도 고맙게 들려 그의 서실에서 다석사상 강좌를 열었다.(1990년~

1995년)다석사상 강좌는 이것이 역사적으로 처음인 셈이다.그가 불

혹(不惑)의 나이에 들어서는 연초서(連草書)를 쓰기에 이르렀다. 그

가 일필휘지하면 붓끝이 종이 위를 떨어지지 않고 여러 글자가 한 글

자인 듯 이어 쓰여진다. 마치 흑룡(黑龍)이 승천하는 것 같다. 여러

글자가 한 글자로 이어지는 연초서야말로 여러 사람이 한 얼(道)로

꿰뚫린 모습이다.

 

스님의 탁발에도 말법이면 얼님이 하늘에 올라    僧託末法主昇天

   탁발이란 스님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동냥을 하는 것이다. 진리

(法)도 상대세계에 나타난 이상 생로병사에 걸리게 된다. 진리도 나와

서 알려지고 쇠퇴한다. 그것을 정법(正法), 상법(上法), 말법(末法)이

라 한다. 예수.석가처럼 참나를 깨달은 이가 있을때가 정법시대다.

가르치기는 하되 깨달은 이가 없을 때를 말법(末法)시대라 한

다. 말법시대에 깨달은 사람이 없는 것은 임자(主)인 얼(하느님 아들)이

하늘나라에 갔기 때문이다. 얼은 절대존재라 없는 곳이 없기 때문에

가고 오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얼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잡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마하트마 간디는 진리를 꼭 붙잡자는 것

이다. 진리를 생각(意識)으로 꼭 잡는 것이 사탸그라하(眞理把持)이

다. 진리파지를 한 이가있으면 정법시대다.하느님과 연락이

끊어진 시대가 말법시대이고 하느님과 연락이 이어지면 정법시대다.

   정법시대에 대해서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생명의 말씀 줄을 이어오기를 온전히 했다면 지금쯤은 이상국가가 이

루어졌을 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잘 이어오지를 못하여 토막난 시

대가 되고 말았다. 부처가 나타난다, 예수가 다시 온다 하지만 그런

분이 나타났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한 줄기 이

어 내려오는 영원한 생명의 줄을 올바르게 이어온 시대가 좋은 시대

이고 그 시대를 올바르게 지도한 이가 부처(Buddha)가 되고 그리스

도가 되었던 것이다. 태초부터 이어오는 생명의 한 줄이 이어 닿는 여

기가 '예'다. 예는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 가는 자리다. 또 영원에서

상대세계로 떨어져 몸부림치는 곳이 예이다."(다석어록)

   이돌라(Idola. 우상)에 대해서 글을 쓴 사람은 베이컨(l561~1626)이

다. 과학적인 지식에 눈을 뜨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이 우상론

이다. 사람은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

라는 4개 우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베이컨은 자아(自

我)도 우상이요, 국가도 우상이요, 우주도 우상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므로 베이컨은 구경각에 이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

란 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