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거짓 님에 굴하지 말자 不拜偶像(一)

 

    어둠의 힘이 일곱 마귀를 움직이는 끈이요        暗權操縱七魔線

    옷 밥  집이 멋스러운 걸 복 받은 걸로           衣食宮惠業藝色

    온 세상이 꼭두각시와 배우의 무리들인지라       擧世傀儡俳優輩

    나눠진 쪽정이를 기분으로 인기치레에만          虛分氣分人氣粉

                                                    (1957:1.12)

 

    偶像(우상):신(神)이 아닌 걸 신으로 모시는 것. 偶 허수아비 우

    拜굽힐 배. 七魔(칠마) :일곱 마귀. 宮 집 궁 惠業(혜업) :복된

    일. 藝色(예색) :예술과빛깔이 멋스러운 去世(거세) .온세상 愧

    儡(괴뢰) 허수아비 꼭두각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인생의 목적이 있다. 형이하의 짐승인

몸으로는 자식을 낳고 길러 대를 잇는 것이고 형이상의 하느

님 아들인 얼로는 하느님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은 형이하의 사명에만 관심을 가질 뿐 형이상의 목적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런 사람들은 미안한 소리지만 짐승으로만 사는 이들이다. 어

려서는 어버이를 의지하다가 젊어서는 짝을 의지하고 늙어서는 자녀

를 의지해 삶을 끝낸다. 이러한 가족주의 인생은 짐승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형이상의 목적에 눈뜬 사람은 가정에만 안주할 수 없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유교에서 위(上)를 받든다는 것은 부모나 조상

을 받드는 것을 말한다. 위로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 권속을 거느리는

것이 인간의 본연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태극에서 음양만을 말하고

그 윗자리인 무극(無極)을 잊은 탓이다. 유교가 활발히 발전을 못 본

것은 이와 같은 근원을 잊어버리고 천상(天上.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

아서다. 예수 석가는 가정에 갇혀 살지 않았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

의 아들 노릇을 하려고 하였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관을 형이하에서

형이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인생관을 높이기 전에는 그 사회는 볼

장 다 본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느님을 찾는데도 아직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여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으로 섬기는 어이없는 일을 해 왔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하였

다.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으로

섬기는 것이 더 큰 문제다."(톨스토이, 종교와 도덕) 그러다가 예수 석

가에 와서 하느님을 바로 찾는 반야바라밀다(pranja paramita,하느님을

아는 지혜)가 성숙하여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으로 섬기는 우상숭배

에서 온전히 벗어났다. 이것이 '아눗다라삼막상보디'이다. 예수 석가

가 이룬 이 공로는 아무리 찬양하고 감사하여도 모자랄 것이다.

   예수나 석가는 사람의 머리로 상상해 그리는 관념적인 절대자(하느

님 니르바나)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다. 각자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하느

님의 얼을 믿으라고 하였다. 예수 석가는 스스로 체득한 하느님을 믿

은 이들이다.다른 사람에게도 각자가 체득한 하느님을 믿으라고 가르

쳤다.체득한 하느님이 프뉴마요,다르마인 얼이다.

 이 얼이 우리 마음속에서 말씀으로 샘 솟는다.예수는 이에 이르기를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

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

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요한 4:13-14)라고 하

였다.

 

어둠의 힘이 일곱 마귀를 움직이는 끈이요         暗權操縱七魔線

일곱 마귀란 예수가 한 말이다. 어떤 사람의 맘속에 들어 있던 마귀

(魔鬼)가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있을 만한 곳을 찾지 못하자, 다른 마

귀 일곱을 더 데리고 먼저 있던 곳으로 찾아와 머물게 되니 그 사람

의 마음이 더 비참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마태오12:43-45) 이 말은

마음의 회개를 바르고 철저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하지 않았을 때보

다 더 사악하게 된다는 말이다. 처음으로 예수나 석가의 가르침을 좇

겠다고 결심할 때는 그래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했으나, 석가나 예

수의 가르침을 바르게 배우지 못하면 나중에는 바리사이인들처럼 위

선자가 된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편협하고, 과

격하고, 음란해진다. 이러한 일을 도처에서 보게 된다.

   불교에서는 눈  코 귀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여섯 뿌리(六根

)라 하여 단속의 대상으로 친다. 거기에 손발을 더하면 칠마(七魔)

팔마(八魔)가 된다. 이 몸을 조종(操縱)하여 악한 카르마(業)를 저지

르게 하는 것이 암권(暗權)이다. 제나(自我)가 지닌 수성(獸性)이 암

권의 주체다. 수성인 삼독(三毒)이 지배하는 세계는 그야발로 만인

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생존의 싸움을 벌인다. 가장 믿음직한

것이 그래도 가족이다. 그러나 가족이라고 믿을 수만은 없는 것이 실

상이다. 대학 교수와 미국 유학생이 돈 때문에 어버이를 죽이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옛날에도 네로가 어머니를 죽이고 당 태종이 아버지

를 죽였다.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죽였다. 이게 암권(暗權)의 조종

인 것이다.

  수성인 암권은 하느님의 얼을 받아서 없앨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하느님의 얼이 있는줄도 모른다. 그리하여

큰 암권(暗權)으로 작은 암권을 다스리겠다며 세운 것이 나라(국가)

다. 이것을 영국의 홉즈는 위대한 괴물(리바이어던.Great Leviathan)이

라 이름하였다. 이를 사람들의 평화를 지키는 죽는 하느님(Mortal God

)이라고 미화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리바이어던(국가)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 온 것만 보아도 암권의 본색을 저버릴 수 없다

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원숭이들이 벌이는 권력투쟁을 사람들이 하

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가정이 삼독의 소산이듯이 나라도 삼독의 소

산인 것이다. 에라스무스는 삼독을 바보신(神) 모리아(Moria)라

고 하였다. 모리아는 버려야 할 우상이다. 그래서 예수는 말하기를

"내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요한 18:36) 또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오6:10)라고 하였다. 이 두 말을 아울러 생각하면

예수는 짐승인 제나의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인 얼나의 사람임

이 분명하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얼(성령)을 받아 사는 얼 나라

사람이었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얼에는 나와 나라가 다르지 않다. 얼

이란 유일 절대이기 때문이다. 땅위에서 이루는 나라는 좇아갈 필요

가 없다. 세상의 나라를 좇아간 것이 오늘날 이러한 나라를 만들고 말

았다. 본 생명의 자리인 얼나를 세워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

는 서지 않는다. 자기의 참나를 찾은 다음에는 그 참나에서 떠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영원을 붙잡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6천만 년 전 자연환경의 변화로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갑자기 사

라지듯 21세기에는 정신환경의 변화로 국가가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

다. 모든 사람들이 얼나를 깨달아 몸이 지닌 수성(獸性)을 없앤다면

가정이나 나라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온 인류가 얼나로 한 생명을 느

끼면 너와 나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울타리가 필요하겠는

가. 그러나 제나는 쉽게 꺽이지 않는다.

옷 밥  집이 멋스러운 걸 복 받은 걸로       衣食宮惠業藝色

옷 밥 집이 호화스러우면 성공한 삶이요 축복 받은 삶으로 생각

한다. 이것은 짐승인 제나(自我)의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었다. "이 세상에 무소유로 살다간 예수 석가를 믿는다는

사람들도 바라는 것은 식색(食色)의 풍부함뿐이다. 부귀(富貴)란 식색

의 사회적인 표현이다. 이 세상에서 부귀란 병 아니면 죄다. 참으로

온전한 세상이라면 부자와 귀인이 있을 리가 없다."(다석어록)

예수는 이르기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태오 19:23-24)

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부(富)는 힘과 빛 때문에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정신력과 얼빛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정신력과 얼빛이 힘있고 빛나야 사람이다.정신력이 없고 얼빛이 어  

두워진 뒤에 부귀를 가지고 대신하려 하면 그것은 인류 별망의 징조

다"라고 하였다.

온 세상이 꼭두각시와 배우의 무리들인지라        擧世傀儡俳優輩

꼭두각시는 조종하는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배우는 연출자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니 실체도 주체도 있을 수 없다. "온 세상이

직접 간접으로 암권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와 배우의 무리들"이란 말은

세상사람 모두가 거짓 나인 제나(自我)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류영모

는 이르기를 "이제 여기의 이 나라는 제나(自我)는 거짓된 것이다. 참

나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라는 것도 거짓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껏 찾아야 할 것은 오직 참나다"라고 하였다.

주체인 얼나를 깨닫지 못하면 너나 나나 가릴것 없이 모두가 수성의

꼭두각시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회에 온갖 유행이

전염병처럼 잘 퍼지는 것은 주체성 없이 남의 흉내만 내기 때문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었다. "재주 부리는 인형을 괴뢰(愧儡)라고 하는

데,소위 지도자들의 괴뢰 노릇을 낙제생들은 못 하고 이른바 똑똑하

다는 총준(聰俊)들이 한다. 꼭 돈 한가지가 없어서 그 짓을 한다. 돈

받고 힘있는 사람들의 괴뢰 노릇을 한다. 또 백성은 깨닫는 것이 아니

다. 그저 좋다면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는 것들이다. 남이 하는 짓은

빠지지 않고 죄다 한다. 그러나 뭐가 뭔지 모르고 한다. 단순히 허영

으로 다수에 따라갈 뿐이다. 뜻을 찾지 않는다. 민주(民主)가 되려면

깨달은 사람의 수효가 많아야 한다."(다석어록)

 

나눠진 쪽정이를 기분으로 인기치레에만           虛分氣分人氣粉

우리는 어버이에게서 받은 몸뚱이만으로는 쭉정이(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쭉정이가 허분(虛分)이다. 개체란 쭉정이다. 개체라도 전체의

식 진리의식을 가지면 속알이 차서 충실해진다. 공자(孔子)가 말하기

를 "하느님이 내게 속알을 낳으셨다"(天生德於予-논어 술이편)라고

하였다. 공자는 하느님으로부터 얼을 받아 허분(虛分) 아닌 충분(充

分)이 되었다는 말이다. 무정란처럼 죽은 것이 아니라 얼생명을 지녔

다는 말이다. 류영모는 사람들이 마땅히 택선의지(擇善意志)로 살아

야 하고 진리파지(眞理把持)로 살아야 하는데도 기분(氣分)을 쫓아

사는 것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류영모가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기분이라는 것을 가지고 사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 기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대기(大氣) 가운데 사니까 그 대기의 공기

가 우리 몸에 와서 접촉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때는 좋게 느끼고 어

떤 때는 언짢게 느끼는 것 같다. 그리하여 때에 따라 달라 날이 궂으

면 나쁜 기분이 더 많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속이 어두

위서 그렇다. 속이 밝을 것 같으면 그런 일이 없다. 제대로 제가 살

것 같으면 무슨 그렇게 날이 궂었다고 기분 나쁘고 날이 개었다고 기

분이 좋고 그럴 일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다.

사람이 바라야 할 것은 하느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그런데 사람의

이목을 끌려고만 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이목을 많이 끌게 되면 제법

성공한 인생인 듯 스스로 인기에 도취한다. 그것은 속는 일이요 속이

는 일이다. 지난날 십여 년 동안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의 말이

"인기란 아무 것도 아니에요,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석

가는 성주(城主)의 아들이라 귀한 몸이었다. 석가는 비록 임금의 자리

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왕자의 신분이 그의 전도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보여진다. 거기에 비하면 예수는 시골의 무명 청

년이었다. 그런데 2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사

람이 없다. 이것은 예수가 그의 맘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말씀을 내놓

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상의 존엄(authority)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날 세상은 나를 몸뚱이로만 알아 몸

의 나밖에 모른다. 그리하여 신체가 미끈한 자를 부러워하고 인기있는

자를 부러워한다. 이게 다 악인의 낯을 보는 것이다. 우리도 이 몸에

붙잡히면 이 짐승인 몸에 잡아먹힌다. 이 짐승을 따르지 말고 참나인

얼나를 좇아야 한다.서로의 속알(얼)을 내놓는 것 같이 좋은일이 없다.

동지(同志), 지기(知己)란 서로 속알을 내놓는 것이다."(다석어록)

하느님의 뜻을 내 뜻으로 하여 사는 이라야 주체성이 있는 사람이

다. 하느님의 뜻 밖에서 수성(獸性)의 말만 듣고 남의 말만 들으면 괴

뢰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종교는 자

유인데 자기가 어떻게 믿든 자기가 분명한 것을 믿으면 된다.남의 말

듣고 믿으면 그게 무엇인가. 한 마리의 개가 의심이 나서 짖는데 다른

개들이 따라 짖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