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하느님밖에)다른건 없다 無他

 

빔일 수도, 몬일 수도 있고 다 알고 다 할 수 있어       能空能物全知能

달라지며 달라지지 않는 하나에서 둘이 나와 바뀐다      變易不易一二易

(하느님) 아버지 우뚝 계시니 본디 이와 같아            父在從本來如是

(아들인) 나, 예서 이제 맘으로 차차 (아버지를) 닮으리  吾玆今心稍肖亦

                                                        (1957.1.14)

 

變 : 변할 변   易 변할 역, 바뀔 역. 從 : 우뚝할 종. 玆 : 이 자.

稍 : 점점 초. 肖 : 닮을 초. 亦 · 어조사 역.

 

  류영모는 신앙생활로 평생(91세)을 일관한 사람이다. 도중에 신앙생

활에 회의를 갖는다거나 탈선한 적이 없었다. 류영모는 평생을 신앙

생활로 보낸 소감을 이렇게 말하였다. "산은 오를수록 험하다. 학문도

종교도 올라갈수록 어렵다. 그것은 행(行, 체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기쁨이 넘친다. 이것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

지 못하는 것의 증거다."(히브리서 11·1) 우리는 하늘나라에 못 가보았

지만 하늘나라에는 기쁨이 넘칠 것이다. 산에 올라가면 곧 알 수 있

다. 산에 올라가 보면 오르는데 기쁨이 넘치는 것으로 보아 하늘나라

에도 기쁨이 넘치는 곳임을 알 수가 있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신앙생활이 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는 것은 믿음이

깊어짐에 따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몸을 지닌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정

상(頂上)의 지경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믿음의 정상(頂上)이 있다면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이를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깨달음인 구경각(究竟覺)을 아눅다라삼먁삼보디

(Anuttara-Samyak-Sambodhi)라고 한다. 이를 의역하여 무상정등정각

(無上正等正覺)이라 한다. 신앙이란 주관적인 체험이라 남이 이렇다

저렇다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사람의 말과 삶으로

신앙생활의 정도를 헤아릴 수는 있다. 그 사람의 말은 하느님에 대한

인식정도를 나타낸다. 그 사람의 삶은 탐 '진 '치를 여윈 정도를 드

러낸다. 류영모가 구경각을 이룬 것을 나타내는 말이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 하나를 들어본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내 뜻 없이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다. 내 뜻 없이 볼 때 진리(하느

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 성의다.

진리(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진성(盡性)이라고도 한다.

이는 내 뜻이 없어지고, 내 고집이 없어지고, 나(我)라는 것이 없어지고.

반드시(必)가 없어진 세계다.진리(하느님)와 참나가 하나되는 세계다."

(다석어록)

   구경각을 이루었음을 드러내는 가장 간단한 말은 이 시제(詩題)인

무타(無他)다. 하느님밖에는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느

님은 절대존재인 것이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하

는 것이 아니다. 유일(唯一)한 존재인 하느님의 부속물로 있을 뿐이

다. 시간도 공간도 모두가 하느님의 내용물이다. 하느님을 떠난 시간

이 어디 있으며 하느님을 떠난 공간이 어디 있는가. 시간 공간 속에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시간 공간 속에 살면서 시간 공간만 알고

하느님을 모르는 것은 마음의 얼눈(靈眼)을 뜨지 못한 탓이다. 밤이나

낮이나 우주를 내다보면서 우주로만 보고 하느님을 못 알아보는 것도

마음의 얼눈을 뜨지 못한 것이다. 시간 . 공간이나 우주도 하느님의

한 모습이다. 마음의 얼눈을 뜬 류영모는 우주를 이렇게 내다보았다 .

"그믐이나 초하룻날 밤에는 하늘에 가득한 밝은 별들을 볼 수 있다.

그때 우리 눈은 가까운 데서는 볼 것이 없다.멀리 내다보는 우리 맘

에는 어떤 정신의 빛이 별빛처럼 쏟아져 온다. 그것이 진리(하느님)의

얼이다.석가가 샛별을 보고 진리(하느님)를 깨달은 것은 그래서다."

(『다석어록』) 하느님을 떠나 그밖에 존재하는 것은 없다 (We have no

exitence outside and apart from god M.K.간디. -「날마다의 명상」)

 

빔일 수도, 몬일 수도 있고 다 알고 다 할 수 있어     能空能物全知能

   하느님은 허공일 수도 있고 물체일 수도 있다.허공과 물체에서 허

공이 실체(實體)이고 물체는 변태(變態)이다. 스피노자의 자연신이 실

체와 양태(樣態)라 하였을 때 실체가 성령이고 양태가 물질이다. 스피

노자는 석가 장자 류영모처럼 허공을 언급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성령을 실체로 보고 물질인 양태를 성령의 변태로 봄으로써 범신(汎神

)의 유일신관(唯一神觀)에 이르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구경

각에 이른 것이다. 스피노자의 범신(汎神)과 예수의 영신(靈

神)이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실대로 스케치한다면 해안(海岸)이 없어 무한(無

限)하고 해저(海底)도 없는 심연(深淵)의 허공 바다에 1천억 개가 넘

는 별무리로 된 1천억 개의 별구름 덩어리가 유영(遊泳)하고 있는 모

습이다. 또 달리 비유하면 무한 심연의 중심만 있고, 둘레 없는 공

(球)안에 무수한 별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있다.

무한 심연의 허공인 하느님을 생각할 때 나라는 존재는 강진(强震)을

만난 듯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공포의 전을이 아니라 환희의

전율이다. 남녀가 처음 만나서 느끼는 감각적인 짜릿함은 비교가 안

된다.

   하느님의 전지(全知)와 전능(全能)은 예로부터 하나의 화두(話頭)

가 되었다. 인간 세상은 너무도 모순투성이라 전지 전능한 하느님의

실패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낸

것을 후회하면서 홍수로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지 전능한

하느님께는 후회 같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의 토인비조차도

하느님의 전능을 믿으려 하지 않았고 칼 융은 전지(全知)를 의심하였

다. 토인비는 하느님의 전능을 못 믿어서인지 사람들의 사랑을 강조

하게 되었고, 칼 융은 사람들이 보고를 해야 신이 알게 된다는 어리석

은 소리를 하였다. 이 무한 우주, 유한 우주를 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어디 있는가. 무극 태극의 우주를 내는 것은 전지 전능이 아니고

는 불가능한 일이다.

 

달라지며 달라지지 않는 하나에서 둘이 나와 바뀐다   變易不易一二易

   류영모는 변하지 않는 절대(絶對)의 무(無)와 변하는 상대(相對)의

유(有)를 합친 것이 하느님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은 하느

님 한 분뿐이다.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의 부속이고 내용이기 때문이

다. "허공인 하늘과 물질인 땅(相對)을 합한 것이 하느님이다. 절대의

무(無)와 상대의 유(有)를 합한 것이 하느님이다. 절대를 무극(無極)

이라, 상대(相對)를 태극이라 한다. 태극 무극은 하나라 하나가 하느

님이다." (『다석어록』 )

   무(無)는 변하지 않는데 유(有)는 변한다. 우리는 지금 변하는 유

有)가 되어 있다.그래서 변하지 않는 무(無)를 그리워한다. 무(無)

가 유(有)의 밑동이기 때문이다. 류영모는 말하였다. "자꾸 바뀌고(變

易), 자꾸 사귀고(交易),그 가운데 바뀌지 않는 불역(不易)의 생명을

가져야 한다. 바뀌는 것은 상대생명이요 바뀌지 않는 것은 절대생명

이다. 바뀌는 것은 겉나요 바뀌지 않는 것은 속나이다. 절대세계는 상

대세계를 내포(內包)하기 때문에 바뀌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해

야 한다. 변화하는 겉나(몸)에서 변화하지 않는 속나로 솟나면 무상

(無常)한 세계를 한결같이 여상(如常)하게 살수 있다."(다석어록)

   변하지 않는 존재를 하나(一)라 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一)가 변하

는 것으로 바뀐 것을 둘(二)이라 한다. 노자(老子)는 변하면서(二) 변

하지 않는(一) 절대를 셋(三)으로 생각한 것 같다. (道生一 一生二 二

生三 三生萬物 노자 42장) 류영모는 하나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

(元一 )는 밑동(根本)이다. 또 주체(主體)로서 영(令)을 내린다. 이 영

(令)은 우리에게 직접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

느님의 뜻으로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 하느님의 영(令)을 받고 있다. 이것이 원일령(元一令)이다.

하나(一)는 전체를 말한다. 전체의 하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라고 하

였다.

 

(하느님) 아버지 우뚝 계시니 본디 이와 같아  父在從本來如是

   모든 것은 다 없는 것과 다름이 없고 오직 하느님 아버지만이 계신

다. 아버지는 본디부터 이렇게 계시는 분이다. 시작도 마침도 없는 영

원한 존재다.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 한 분인데 하느님의 존재를 모르

는 사람이 많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잊은 사

람은 자기 자신을 잊은 사람이다."(He who denies the existence of

God denies his own.He who forget shimself. M.K.간

디, 날마다의 명상) 간디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았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인식

부족(認識不足)이라고 말한다. 절대자 한 분(하느님) 계시는 것을 있

느니 없느니 하고 떠드는 무식한 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 인식부족

인지도 모르고 있다. 절대자(하느님)는 계신다. 다른 것은 다 없어도

절대자만은 계신다. 절대자는 우리가 인식하고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는 것을 누가 아느냐 하면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이 세

상이 괴롭고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걸어오신다.

절대자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알고 싶은 생각을 일으켜 준다. 절대자

가 자신이 아버지라는 것을 아들에게 알게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말

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다석어록)

 

(아들인) 나,예서 이제 맘으로 차차(아버지를)닮으리  吾玆今心稍肖亦

   예수가 말하기를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

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오 5.48) 이것은 하느님의 얼을 받아

얼나로 거듭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

는 정도가 아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요한 10:30)라고 하였다.하

느님으로부터 내가 받은 생명이 하느님의 생명인 얼나이니 하느님과

하나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를 드높이는 것을 '아버

지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러낸

 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본성(얼나)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얼나)다. 본성의 완성이 진리다. 진리를

깨쳤다는 것은 본성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스스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를 가까이 하고 더 가까이 하면 나도 모르게

하느님 아버지를 닮게 된다. 하느님 아버지를 닮고 또 더 닮아가면 마

침내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 된다는 것은 하

느님이 참나임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제나(自我)가 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