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하느님의 소리(뜻)가 사람의 말로 天音人言

 

(얼나로) 나서부터 말씀이 있어 (제나의) 입 빌리고      生來有言借口能

(제나가) 죽자 입 없어 (얼나는) 성령으로 돌아가        死去無口還本音

대대로 말이 끊겼으나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남겼고      代代斷言猶遺志

세세로 말씀할 하늘 소리 담은 큰 그릇                  世世欲言大畜音

                                                       (1957.11.I6)

 

生來(생래) 나서부터 .   借 : 빌릴 차. 還 : 돌아갈 환. 猶 :오히려

유. 畜 : 쌓을 축

 

  하느님은 전체(全體)라 대괴(大塊)요, 대체(大體)요, 대축(大畜)이

다. 하느님은 정신적으로 말하면 얼(soul) 탱크요, 물질적으로 생각하

면 별(star) 탱크다.얼 탱크는 곧 참의 탱크(truth tank)요,생각의 탱

크(think tank)요, 말씀의 탱크(word tank)라는 말이다. 하느님의 소

리란 이것을 말한다.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하느님

의 뜻밖에 없다. 영원히 갈 말씀은 이 혀로 하는 말이 아니다. 입을

꽉 다물어도 뜻만 있으면 영원히 갈 말씀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소리

를 낼 필요가 없다. 소리를 받아서 귀로 들을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

었다. 그것을 기록한 것이 경전이다."(다석어록)

  하느님의 얼이 지구의 지각 속에 들어 있는 라버(lava,암장)라면 사

람의 입으로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라버가 아니라 마그마

(magma, 용암)다. 암장에는 용암과 함께 가스가 있다. 땅위로 분출되

면서 가스는 공중으로 날아간다.그래서 우리는 용암만 보지 라버는

못 본다. 사람의 입으로 나온 말씀에는 이치만 있지 거룩은 볼 수 없

다. 그것이 천음(天音)과 인언(人言)의 차이다. 음(音)과 언(言)의 글

자의 형성은 비슷하다. 둘 다 창으로 찌르는 것을 형상화한 신(辛)과

입의 모양을 형상화한 구(口)를 합친 회의문자다. 지각을 뚫고 올라오

는 암장처럼 마음을 뚫고 나오는 말씀이다. 지각을 뚫고 나오는 용암

을 막을 수 없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막을 길이 없다. 류영모는 말하였

다. "생각을 자꾸 하는 사람은 말을 하고 싶다. 참 말씀을 알고 참 말

씀을 하려는 사람은 그 가슴 속에서 생각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사

람이다." (다석어록)

 

(얼나로) 나서부터 말씀이 있어 (제나의) 입 빌리고  生來有言借口能

사람과 촌수가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나 오랑우탄이 사람의 말귀를

얼마만큼은 알아들어도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야말로 말 같

잖은 소리를 내면서 저희끼리 집단생활을 하는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

다. 사람도 5백만 년 전에는 침팬지나 고릴라와 공동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인류의 조상도 오늘날의 말 같은 말을 하게 된지는 그

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 독일의 철학자 카시이러(Cassirer,

I874~l945)는 "신화(神話)와 언어는 손잡고 사람의 정신적 창조와

우주에 대한 통일적인 비전이 생겨나는 저 위대한 총합을 위해서 정

지(整地)하는 것이다"(카이시러,언어와 신화)라고 하였다.카이시러는

신화와 언어가 함께 사람의 머리에 샘솟았다고 말하였다. 털 없는 원

숭이의 생각에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 일어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을 때부터 사람다운 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래 되어야 농경

을 시작한 1만 년 전후일 것이다. 가장 높은 깨달음에 이른 때가 2천

년 전에서 3천 년 전 사이로 그 시대에 석가 노자 공자 장자 맹

자 예수가 나타났다. 생래(生來)란 하느님의 얼이 사람에게 나타난

것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참 사람은 두려운 것이

셋 있다. 하느님의 이르심을 두려워하고 큰 사람(깨달은 사람)을 두려

워하고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

人之言 -논어  계시편)라고 하였다. 천명(天命)은 하느님의 뜻이고,

대인(大人)은 하느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고, 성인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말씀을 뜻한다.셋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하느님 말씀

하나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을 헤아릴 수 있

다. 예수가 이르기를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 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

대로 이 세상에 말할 뿐이다"(요한 8:26)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의 얼은 사람(성인)의 마음속에 임재(臨在)하여 사람

의 입을 빌려서 하느님의 뜻을 사람에게 알렸다. 예수 석가는 철저

히 하느님의 입 노릇을 하였다. 그런데 세상에는 제 말을 하면서 하느

님의 대변인인 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이른바 거짓 선지

자들이다.이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그들을 따르는 것은 소

경이 소경을 좇는 것과 같이 위험하다.

(제나가) 죽자 입 없어 (얼나는) 성령으로 돌아가  死去無口還本音

   공자(孔子)는 "속알(얼나)을 가진 이는 반드시 말씀이 있다"(有德者

必有言-논어 헌문편)라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하느님께서 내게 속알

(얼나)를 낳으셨다"(天生德於予-논어 술이편)라고 하였다.그렇다면

속알을 가진 공자가 말이 없을 수 없다. 공자의 말씀도 하느님의 말씀

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왔

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논어를 읽으면서 공자의 말인 줄로만 안

다. 공자가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한 것인 줄은 모르고 있다.

그래서는 공자의 말을 바로 알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

왔다가 떠나가자 예수가 베드로에게 너도 떠나가겠느냐고 물었다. 베

드로가 대답하기를 "선생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

데 우리가 선생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우리는 선생님께서

하느님이 보내신 거룩한 분이심을 믿고 또 압니다"(요한 6:68-69)라

고 하였다. 베드로는 스승인 예수가 하느님의 대변자임을 알았던 것

이다.

  하느님의 입노릇을 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니 예수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는 미리 예수가 죽

은 뒤의 일을 제자들에게 일러주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나의 죽음으로 끝나 이제부터 너희들은 직접 하느님의 말

씀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성령은 예수의 생사와 관계없이 본음(本音

말씀)으로 있기 때문에 성령의 말씀을 직접 받으라는 것이다. 예수가

이르기를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낼 협조자(보혜사) 곧 아

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

이다."(요한 15:26)  또 이르기를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

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요

한 16:5-7)라고 하였다. 하느님의 성령은 없는 곳이 없으니 가고 오

는 것이 없다. 예수의 말은 스승인 내가 있으면 너희들이 나에게 의지

하려 하지만 내가 가면 너희도 하느님의 성령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가 떠나면 너희는 더 빨리 성령을 받아 얼나를 깨닫

게 된다. 그것이 정신적으로 빨리 독립하게 되어 더 낫다는 말이다.

이것이 사거무구환본음(死去無口還本音)이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하

느님의 성령이 말씀이요 참나(眞我)이다. 얼나로 거듭나면 몸나의 삼

독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죽음에서 조차도 자유롭다.하느

님의 성령인 얼나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성

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

기만 하면 아버지께서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을 넉넉히 부어주신다.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하느님의 소리(뜻)를 알 때 너와 나의 벽을 뚫

어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소리인 본음(本音), 정음(正音)

복음(福音)을 알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대대로 말이 끊겼으나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남겼고 代代斷言猶遺志

 석가는 40년을 넘게 설법을 하였으나 예수는 4년도 못 되게 가르치

고는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그들이 남긴 말씀으로 하느님 아버지

의 뜻은 뚜렷하게 밝혀졌다. 예수는 말하기를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그렇다. 제 속에 있는 아들을 보고 믿는 사

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요한

6;38-40)라고 하였다.

류영모도 톨스토이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이 예수의 유지(遺志)라

할 가르침을 좇아서 참나를 깨달아 하느님 아들로 거듭났다. 류영모

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할 일이 없어서 인간을 낸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깨닫게 하려고 인간을 내었다. 절대자이

신 하느님이 나에게 계시니 나에게 사람의 사명을 주신다. 그 사명을

받아서 하느님의 아들이 된다. 나는 하느님 아들이 된 것을 느낀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아마 예수도 이것을 느낀 것

같다."

 

세세로 말씀할 하늘 소리 담은 큰 그릇   世世欲言大畜音

류영모는 이르기를 "인류라는 것이 끊어지기 전에는 생각이 사람에

게서 자꾸 나온다. 인류가 있는 동안에는 생각을 자꾸 할 것이다. 생

각이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우

리에게 생각이 있기에 말씀을 하고, 말씀이 있기에 우리가 생각을 한

다. 말씀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말씀이 곧 하느님이다"라고

하였다. 하느님은 말씀의 얼이 가득 찬 탱크(tank)이다. 그 얼을 받아

서 우리는 하느님을 생각한다. 그 얼이 아니면 하느님을 그리워할 리

가 없다.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짐승과 다름없이 하느님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얼을 받아들이려면 마음이 한번 죽어 빈마음이 되어야 한다.

제나가 죽어야 성령의 얼나가 들어설수 있다.

 대축(大畜)이란 말은 주역(周易) 26번째 괘(卦)에 나온다. 산()

이 위에 있고 하늘()이 밑에 있다. 하늘이 산 속에 있다고 하여 천

재산중(天在山中)이라 한다. 류영모는 이 괘(卦)를 풀이하기를 "이를

정신적으로 해석하여 우리 몸 속에 성령이 충만한 것으로 생각하였

다. 예수도 하늘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뒤에 오는 이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할

사람이 나온다고 하였다. "내 뒤에 오는 자가 나보다 앞선 자라는 것

은 이즈음 진리의 발달이 그렇다. 내가 아무리 예수를 믿는 척해도 내

말을 듣고 뒤쫓아오는 사람은 언젠가는 나를 앞설 것이다.나 역시 미

완고(未完稿)를 완결짓기를 바라나 내 손으로는 할 수 없다. 내 뒤에

오는 이가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이신 참나를 찾을 때에만 존속

될 것이다." (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