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낮이나 밤이나(우러러야지) 晝夜

 

 초승달 베개 치워져 많은 (아들) 새벽에 살핌          初月枕去多晨省

 남쪽 하늘에 두성의 침상이 나와                      南斗牀來一昏定

 하느님의 잠자리를 펴드려

 (하느님 아버지께) 혼정신성함을                      昏定晨省曾缺如

 일찍부터 빠뜨려 온 것 같아

 술 취한 듯 살고 꿈처럼 죽는 걸 어찌 바로잡을까      醉生夢死何頓整

                                                      (1957.9.18)

 

 初月(초월) :초승달. 晨省(신성) 새벽에 문안드림. 南斗(남두) :초저녁

 남쪽하늘에 뜨는 두성(6개의 별). 昏定(혼정) '저녁 잠자리를 펴드림

 牀 평상 상. 醉生夢死(취생몽사) :술에 취한 듯 살다 꿈처럼 죽어버림.

 頓整(돈정) 가지런히 바로잡음. 頓:가지런할 돈. 整:가지런할 정.

 

류영모는 말하기를 "낮은 밝아 세상이 눈에 보여 우리의 생각이 낮

아지기 때문에 낮이라고 한다.밤은 어두워 세상이 물러가고 먼 하늘

에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는 바람의 밤이라고 한다.대낮처럼 밝은게

한없이 좋긴 하지만 그 대신 잊어버리는 것이 많게 된다.더구나 굉장

한 것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다름이 아니라 얼이신 하느님과의 정

신적인 거래를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낮을 좋아하고 밤은 쉬는 줄 알

고 있기 때문에 밤중에 저 깜박이는 별들이 영원(하느님)과 속삭이는

것을 모르고 있다"라고 하였다.

  R.W.에머슨은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볼 때 뭇 별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만일 별들이 천 년마다 하룻밤에만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좋아하고 찬미할 것인가. 그리고 수많은 세대에 걸쳐

모습을 드러냈던 하느님의 나라인 별 밤의 기억을 새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미(美)의 사절들은 밤이면 밤마다 그 모습을 나타내어 뭔가를

알려주려는 듯한 미소로 우주에 빛난다."(에머슨. 수상록 자연)

 

 초승달 베개 치워져 않은 (아들) 새벽에 살핌  初月枕去多晨省

류영모는 말하기를 "예수는 절대의 아버지의 권한을 믿었다.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아들의 노릇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신 그

대로 이르는 것이 예수의 하는 일이었다"(『다석어록』)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예수처럼 하느님 아버지에게 효(孝)를 다하고자 하였다.

류영모는 숨질 때까지 아버지 하느님을 불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

하였다. "유교에서는 효를 부모에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마침내는 하

느님에게 바치는 마음이 참으로 효가 된다. 하느님 아버지께 효할 줄

알아야 사람의 아들로서 땅의 아버지에 대한 효를 할 수 있다. 효도의

실상은 하느님 아버지에게 하라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를 바로 아

는 사람은 최선의 효를 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정성이 어버이에

대한 정성이 되고 만다. 이 근본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 서러움

받는 어버이들이 많다."(『다석어록』)

   예로부터 효자는 저녁에는 부모님의 잠자리를 펴드린 다음 평안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올린다. 또 날이 밝으면 이른 아침에 부모님을 찾

아가 밤새 평안하시었는가? 하고 살피는 아침 인사를 올린다. 늙으신

부모님이 외롭지 마시라는 자식된 도리다. 이를 혼정신성(昏定晨省)

이라고 한다.이 말은 중국 한나라 때 이루어진『예기』(禮記) 곡례편

에 나온다. "무릇 남의 자식된 예절은 어버이에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저녁에는 잠자리를 펴드리고 새벽에는 안후(安

候)를 살핀다"(凡爲人子之禮 冬溫而夏淸 昏定而晨省-예기 곡례편)

고 하였다.

   류영모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혼정신성(昏定晨省)을 생각한 것이

다.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혼정신성은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류영

모는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보고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고 주무시

는 베개로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과 같은 몸을 갖지

않았다는 것을 류영모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다.류영모는 없

이 계시는 하느님을 믿었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하늘을 쳐

다본다. 보통 상식으로 별자리쯤은 기억할 만큼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하늘을 자꾸 쳐다보고 그 다음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위까

지 쳐다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윤극영은 낮에 하늘에 떠있는 반달을 등굽은 할머니가 차고 다니던

쪽박으로 비유하였듯이 류영모는 초저녁에 뜬 초승달을 하느님께서

베고 주무시는 경침(脛枕)으로 비유했다. 이쯤은 되어야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이 그리워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줄여져 글이

되었기 때문이다. 초승달은 뜰 때 이미 중천(中天)에 와 있기 때문에

새벽이면 벌써 서쪽으로 져서 보이지 않는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일

어나셔서 베개를 치운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하느님 아

버지의 자녀들이 하느님 아버지께 신성(晨省)의 아침 인사를 올렸는

가.새벽 기도를 바르게 올리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남쪽 하늘에 두성의 침상이 나와      南斗牀來一昏定

   신성(晨省)이 있었으니 혼정(昏定)이 있어야 한다. 파스칼은 대구

(對句)의 글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너무나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말을 사용하여 억지로 대구(對句)를 만드는 이들은 균형을 잡기 위

해 필요 없는 들창을 만드는 사람과 같다. 그들의 목적은 정확하게 말

하려는 게 아니라 정확한 형태를 만들려는 것이다."(파스칼. 팡세 27)

파스칼은 이 세상이 음과 양으로 된 상대세계인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는 것이 자연이듯이 대구(對句)도 자연스런

것이다. 과학에서도 음양의 법칙을 알아내어 발전을 본 것이다.

   남두성(商斗星)은 북두성과는 대조되는 별이다. 북두성은 일곱 별

인데 남두성은 여섯 별로 일(日)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류영모는 하

느님 침상으로 비유하였다.하느님의 침상에 누가 이부자리를 펴드려

혼정(昏定)을 하였는가. 그런데 이 인류역사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혼

정신성을 하도록 천효(天孝)를 다한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 류영모

는 하느님께 으뜸가는 효자는 예수가 아닌가? 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하느님 아버지께 효(孝)하는 길을 말하기를 "나는 하느님을 찾는데

무엇을 바라고 찾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쯤 하면 하느님께서 은혜를

주시겠지?' 이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향해

무엇을 바라며 믿는것은 섬기는 것이 안된다.죽이든 살리든 이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죽이든 살리든 간에 하느님을 따라 가는 것이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 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하느님 아버지께) 혼정신성함을 일찍부터 빠뜨려 온 것 같아

                                               昏定晨省曾缺如

  이 땅의 어버이에게 효성(孝誠)을 다하는 이도 없다시피 됐는데 하

느님 아버지께 효도하는 이를 만나기는 어렵다. 예수의 가르침을 좇

는다면서 예수처럼 하느님의 얼을 받아 얼나로 하느님 아들이 되겠다

는 사람이 없다. 자기 가족의 육체적 행복을 바라는 기복신앙이 대부

분이다. 기복신앙은 외형으로는 신앙이지만 진리로는 신앙이 못 된다.

진리와는 관계없는 탐욕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생은 고달픈 삶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하

느님과 통하는 길 뿐이다.천명을 받들어 느낄줄 알면 성령을

받아 권능을 얻게 된다. 그것은 하느님 아들이라는 권능을 갖는다.우

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으므로 더 나아질 것이 나

아져야 할것이 아닌가.아버지에게 보다 가까워져야 할 것이 아니

겠는가.나아지는 것은 물론 정신이다. 이렇게 되는 것을 믿는 것이 종

교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석어록)

 

술 취한 듯 살고 꿈처럼 죽는 걸 어찌 바로잡을까     醉生夢死何頓整

 술 취한 듯 산다는 것은 실성 (失性)한 것을 말한다. 참나인 얼생명

을 깨닫지 못하고 짐승인 몸생명 의 수성에 끌려 다닌다.류영모

는 이렇게 말하였다. "구약 시대에도 그랬지만 예수도 이 세상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 시집가고, 그러다가 멸망하고 마는 데라고

하였다. 이 고깃덩이 몸은 온통 죄악이다. 깜짝 정신을 못 차리면 내

속에 있는 하느님 아들을 내쫓고 이 몸뚱이가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

로 이 짐승인 몸삶의 꿈을 탁 깨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하느님이 주신

얼생명으로 영생하는 것이다."

   요즘에 사람의 이성(理性)을 마비시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

이라는 최면과 허영이다.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 사람

들의 마음을 보니 진리를 따르는 이는 없고 다 가짜 문명이라는 최면

과 빛에 홀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이에 참으로 진실한 한 점 얼 마

음으로 하느님께 제사드리고 싶은 것은 모든 인류가 하느님의 은혜로

마음속의 진리의 한점(얼)을 깨치고 나오기를 빌 뿐이다."

참나인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이다.

참나를 모르고 사는 삶이 참삶이 될수 없다.류영모는 이렇게 말

하였다. "우리의 삶은 꿈을 꾸는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잠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느니 가느니 성공이니 실패니 가르

치느니 배우느니 하는 게 다 잠꼬대다. 꿈이요 잠꼬대며 거짓이요 가

짜이므로 꿈은 깨야 한다. 인생이란 참나를 깨닫지 못 하면 마침내 꿈

만 꾸다가 마는 것이다. 꿈깨자고 하는게 바른 생각이다. 니르바나

니 하늘나라니 진리니 하는 것은 이 삶이라는 꿈을 딱 깨자는 것이다.

얼나를 깨달아 영원한 생명으로 살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개인의 발자취로나 민족의 발자취로나 인류이의 발자취로나 지나간

것은 모두가 꿈이다. 사라진 꿈을 주워 모아놓은 것이 역사기록이다.

꿈을 적어 놓는다고 현실이 되는 일도 없다. 꿈은 어디까지나 꿈일 뿐

이다. 사람을 폄하(貶下)해서 말하기를 똥 만드는 기계라고 하지만 꿈

을 짓는 짐승이다. 꿈을 지어서 무엇에 쓴단 말인가. 그래서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땅위의 인간이란 아무것도 아니다.인간이란 벌레가

이 우주안에 없다고 해서 어떻다는 것인가.지구도 달과 같이 생

물이 없이 빤빤하게 있다고 해서 무슨 서운함이 있는가. 우주조차도

마침내 다 타버린다는 사상이 있다. 우리가 옷에 묻어 있는 먼지 하나

털어 버린다고 해서 누가 눈 하나 깜짝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지구에

서 인류를 털어 버린다고 해서 무엇이 서운하겠는가. 똥벌레 같은 인

류지만 생각해 사상을 내놓는 것이 여느 동물과 다르다. 이 사상이 문

제다." (『다석어록』)

  사람이 이룩한 사상의 핵심은 하느님이다.하느님을 아는 것이 깨달

음이다. 꿈의 허망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깨달은 이들만이 꿈에서 깨어난 사람들이다. 영원한 생명이

란 꿈에서 깨어난 참나를 말한다. 아직도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꿈을 깬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이 참나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