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옛 베개를 생각지 않고 내게서 새 침상을 찾아

                               不思舊枕求我新床

 

  바람과 달빛이 빈방에 들어오니               風月中空房

  무서운 더위 수그러지고 서늘함 세어져        恐炎柔凉剛

  시인은 평안하여 시름조차 없어라             騷人保無恙

  한 벌 나무 판자 침상에 누웠도다             一張木板床

                                              (1957.9.6)

 

  枕:베개 침. 床 :침상 상. 中 :뚫을 중. 炎:더위 염. 凉 서늘할

  양. 騷人(소인) .시인. 保 :평안할 보. 恙 근심할 양. 張 :벌 장.

 

  불사구침(不思舊枕)은 옛날 함께 베던 베개를 생각지 않겠다는 뜻

으로 가정을 초월하였다는 말이다. 예수가 이르기를 "여우도 굴이 있

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나)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마태오 8:20)고 하였다. 이것은 예수의 불사구침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예수는 가정을 이루지 않았다. 석가는 가정을 버렀다. 그들은

가족 이상으로 사랑해야 할 영원한 님이신 하느님을 맞이하였던 것이

다. 류영모는 가정을 하늘나라로 뛰어오를 도약대로 삼아야지 가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정이라는 데서 살림

을 하지만 세상을 지나간뒤에 보면 빈 껍데기 살림을 가지고 실 생활로

여기고 산 것이다.물질생활은 변화해 지나가는 것 뿐이다.예수

석가는 가정에 갇혀 살지 않았다. 하느님의 속인 무한대(無限大)에

살았다."(다석어록) 마태오복음(8장 20절)에 "머리 둘 곳조차 없다"를

일어(日語)로는 'まくら(枕)するところがない'라고 옮긴다. 베개 베고

잘 데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의 머리는 여인과 함께 동침(同枕)하자는

머리가 아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우리 머리 위에 받들어 이어야 한다.

구아신상(求我新床)은 사상의 집을 짓겠다는 뜻이다. 누에가 고치

를 짓는 것은 자기가 드러누울 침상을 만드는 것이다. 예수가 이르기

 를 "너희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곳을 마련하러 간다"

(요한 14:I~2)고 하였다. 예수의 이 말을 바로잡아서 류영모는

말하기를 "이세상은 거저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진리의 실을

뽑아 말씀의 집을 지으러 왔다. 하느님을 생각하러 왔으므로,말씀의

집을 지어야 한다. 예수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

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가 있을 집을 지어 놓겠다고 하였지만

가서 지어 놓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벌써 지어 놓았다"라고 하였다.

   형이상의 집도 형이하의 집처럼 정신적으로 안정되게 하여 헤매지

않게 하여 준다. 그것이 예수와 류영모가 마련한 사상의 집이다. 예수

의 사상이 예수의 맘속에서 나왔듯이 류영모의 사상은 류영모의 맘속

에서 나왔다. 그래서 류영모는 내게서 새 침상(사상)을 찾는다고 하였

다. 사상의 집을 짓는 재료는 생각의 말씀이다. 누에가 입에서 실을

뽑듯, 거미가 꽁무니에서 실을 뽑듯 말씀의 실을 뽑아야 한다. 그 말

씀의 실을 날라서 집을 지은 것이 성경이다. 류영모가 얼마나 생각을

중요시하였는가를 이 한마디로도 알 수 있다. "생각이 문제요 말씀이

문제다. 생(生)도 사(死)도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생각이

다. 사람은 진리의 생각이 문제다. 위로 올라가는 생각이 문제다. 위

로 올라가는 생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참이다. 나를 통한 성령의 운

동이 말씀이다. 성령은 내 마음속에서 바람처럼 불어온다. 내 생각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은 것이 말씀이다."

전구의 필라멘트에 전기가 들어와서 빛이 밝아지듯 사람의 의식(意

識)에 하느님의 성령이 와서 슬기가 밝아진다.성령으로 밝아진 슬기

로운 생각이 하느님의 아들이다.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성령을 받

아 하느님 아들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 아들은 결국 하느님의 성령이

라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면 다른 전구로

갈아끼우면 다시 빛이 밝아진다. 개인이 죽어도 다른 개인의 의식에

다시 성령의 빛이 밝아진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들인 영원한 생명에

는 개인의 제나(自我)란 없다. 부처나 그리스도는 제나(自我)의 생명

이 아니다. 석가와 예수는 제나(自我)가 죽고 얼나(靈我)로 솟난 영원

한 생명이다. 그러므로 부처나 그리스도를 석가나 예수의 개인 생명

과 혼동하면 큰 잘못이다.

바람과 달빛이 빈방에 들어오니           風月中空房

이 시는 1957년 9월 6일에 썼다. 그때는 장남 의상(宜相)이 1960년

에 결혼하면서 지은 단층 벽돌집은 없었다. 류영모는 옛 한옥의 안방

에 거처하였다. 9월 6일이면 음력으로 8윌 13일이다. 추석을 이틀 앞

둔 날이라 달이 아주 밝았다. 가을 달빛이 가을 바람과 함께 류영모의

침실을 찾아들었다. 그때 아직 구기동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류영

모는 긴 책상 위에 램프등을 두고 불을 밝혔다. 그러니 달빛이 유난히

더 밝았다. 1957년도의 구기동은 여느 시골과 다름이 없었다. 류영모

의 집은 1천2백 평이나 되는 넓은 터에 감나무, 복숭아나무 등이 서

있고 집 둘레에는 이미 고목이 된 단풍나무, 밤나무, 아카시아로 둘러

쳐 있었다. 같은 북한산록이지만 우이동 계곡에 살았던 김교신은 이

렇게 말하였다. "세상에 견디기 어려운 일이 적지 않으나 도시의 수십

평도 못 되는 작은 집에 살면서 한 뼘도 채 못 되는 땅을 가지고 이

웃집과 다투는 일도 어려운 일이다. 광활하게 살고 싶은 소원으로 말

할진대 백두산 차일봉 정상에 집을 짓고, 개마고원에 화초를 심고, 동

해에 양어를 하면서 만주 벌판에 채마밭을 두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신세임을 어찌할 수 없어 북한산록이나마 지계(地界)에 황지(荒地)가

남아 있고 어루만지면 초목이 자랄 수 있는 개척할 여지가 남아있는

것으로써 만족하지 않을 수 없다."(1937년 성서조선107호) 김교신의

기개야말로 대장부답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무서운 더위 수그러지고 서늘함 세어져     恐炎柔凉剛

   추석이 가까워지자 삼복 더위도 가셔져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것

을 그리고 있다. 류영모의 집은 북한산 비봉산록 끝자락인데 대남문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계천과 비봉에서 내려오는 계천이 만나는 삼각

언덕(지금의 구기 파출소 뒤)에 자리했다. 그리하여 계천가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바위에 앉아 있으면 한 여름에도 더운 줄 몰랐다. 류영모가

구기동으로 처음 이사했을 때는 그곳도 경기도 땅이었다. 오랜 뒤에

서울에 편입이 되었다. 처음에는 서대문구였으나 뒤에 종로구로 바뀌

었다. 류영모는 자신이 서울에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같

이 꿈틀거리고 사는 이 세상에서 지각있는 인사라면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살지 않는다. 이 사람은 거의 70년을 서울에서 사는데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싱겁기 한량없는 것이 아니겠는가.이제는

아주 진저리가 처질 지경이다."

 

시인은 평안하여 시름조차 없어라      騷人保無恙

소인(騷人)이란 시끄러운 사람이란 뜻인데 시(詩)를 읇는 사람을 뜻

한다. 류영모는 산문보다 간결한 시(詩)를 더 좋아하였다 .일본의 우

찌무라(內村鑑三)는 동양의 한시에는 사상(思想)이 없다고 하였다.

우찌무라가 문재(文才)만 있고 신앙(信仰)이 없는 글을 읽고서 한 말

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김삿갓(金笠)만큼 문재를 타고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김삿갓의 시(詩)를 읽으면 재미는 있는데 진리에 대한

말은 반 마디도 없다. 김삿갓처럼 집을 떠나 삼천리 방방곡곡을 30년

동안이나 방랑했다면 고생과 설음이 얼마였겠는가. 그런데도 인생의

의미를 캐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산사 스님들과 만나서는

인생을 논할만 했는데  풍자와 해학의 시짓기 내기로 끝냈다. 그

러나 우찌무라가 류영모의 한시를 읽었다면 한시에는 사상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류영모는 한시를 1천3백 수, 시조를 1천7백 수를 남겼으니 스스로

를 소인(騷人)이라 하고도 남는다. 퇴계 이황이 1천5백 수, 다산 정약

용이 2천5백 수의 시를 남겼다. 밥 먹고 시만 지었는가 할 만큼 대가

들임에 틀림없다. 류영모는 만년 20년 동안에 지은 것으로 시 한수

한수마다 진리인 하느님에 대한 사랑의 향기가 그윽하다.

보무양(保無恙)이란 평안하여 시름이 없다는 뜻이다. 류영모의 평

소의 신조가 "몸성히 맘놓이 뜻태움이다. 몸은 병 없이 성히 가지도

록 힘써야 하고, 맘은 삼독에서 놓여야 하고, 뜻은 성령의 불을 태워

야 한다"이다. 류영모는 체격도 작은 편이고 체력도 약한 편인데도 91

세로 장수하였다.

 

한 벌 나무 판자 침상에 누웠도다     一張木板床

류영모는 52세 때 구경각에 이르면서 밖으로 세 가지 변화가 있었

다. 해혼(解婚)을 선언하고 금욕생활에 들어간 것과 하루 두 끼니만

먹던 것을 한 끼니로 줄인 것과, 방안에 널판을 깔고 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무릎을 꿇고 앉는 것, 한복만 입는 것

냉수 마찰을 하는 것, 늘 걸어 다니는 것 등은 이미 20대부터 해왔다.

  류영모가 널판자를 침대 삼아서 자게 된 것은 척추를 곧게 하자는

건강상 이유와 죽음을 잊지 말자는 정신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류영

모는 40대에 나무 전지(剪枝)를 하다가 삼각 다리가 쓰러져 척추를

다쳐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널판자 위에 자게 되

었다. 공자(孔子)는 침불시(寢不尸)라 하여 송장 잠을 안 잤다는데 류

영모는 바로 누워 송장 잠을 자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류영모가 널

판자 위에서 잔 것은 관 속에서 생활하는 것과 같았다. 류영모는 이렇

게 말하였다. "죽음을 생각하여 언제 떠나도 미련이 없도록 준비와 각

오를 하면 좀 더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아프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

다. 아프지 않으면 죽음을 잊어버린다."(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