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제나(自我)가 죽어야 얼나(靈我)가 산다 終始

 

 배꼽 막고 숨 열리듯 참나는 제나 죽어야 비롯           封臍通鼻誠終始

 잘못 본떠 (생긴) 고달프고 역겨운 거짓 나는 나서 죽어  效嚬疲厭妄始終

 비롯 없고 마침도 없는 맨 처음 으뜸님                  無始無終元始初

 비롯 있어 마침 있는 제나는 이내 죽어                  有時有終自乃終

                                                         (1956.10.20)

 

 終 :죽을 종. 始 :처음 시. 封臍(봉제) :갓난아기의 탯줄을 끊어 봉

 함. 封:봉할 봉. 臍 배꼽 제. 效嚬(효빈) :남의 결점조차 좋은 것

 으로 알고 함부로 흥내를 냄. 效:본받을 효:嚬 찡그릴 빈. 妄:

 거짓 망. 疲:피곤할 피. 厭 : 싫을 염.

 

 종시(終始)라는 말은 대학(大學)에 나온다. "몬(물질)에는 밑동과 끝

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비롯이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곧 참에 가까울 것이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義-

대학 경지장) 그런데 대학을 풀이한 이들은 종시를 뒤집어서 시종으

로 풀이하고 있다. 비롯이 있어야만 마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시의 바른 뜻을 모르는 소리다.

   류영모는 종시(終始)의 뜻을 주자(朱子)의 '知止能得'보다 더 분명

하게 말하였다. "시작했다 끝이 나는 것은 몸의 세계다. 그러나 끝을

맺고 시작하는 것은 얼의 세계다. 낳아서 죽는 것이 몸이요, 죽어서

사는 것이 얼이다. 얼은 제나(自我)가 죽어서 사는 생명이다. 형이하

(形而下)에 죽고 형이상(形而上)에 사는 것이다. 단단히 인생의 결산을

하고 다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회개(悔改)요 회심(回心)이

다. 얼에는 끝이 없고 시작이 있을 뿐이다. 종시란 쉽게 말하면

상대세계를 부정해야 절대세계가 열린다는 뜻이다.

 상대세계는 우리의 심안(心眼)을 가리는 비늘과 같다. 이

비늘을 떼어버리지 않고는 절대존재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다.류영

모가 이르기를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른다. 세상을 미

워하는 사람에게만 하느님이 걸어온다.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하느님

을 알고 싶은 생각을 일으켜 준다"라고 하였다. 예수 석가가 가르친

것도 바로 이것이다.

   예수가 말하기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원

한 생명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한

6:40)고 하였다. 마지막 날이 종(終)이고 살린다가 시(始)이다. 석가

가 말한 사성제(四聖諦)인 고집별도(苦集滅道)도 종시(終始)이다. 상

대세계를 부정하면 제나(자아)가 죽는다.

제나가 죽으면 얼나(靈我)가 산다.

얼나가 사는 것은 하늘나라가 열리는 것이다. "제나가 죽어야

참나가 산다.제나가 완전히 없어져야 참나다.참나가 우주의 생명이요

제나의 임자다. 참나와 하느님이 하나다. 참나와 성령이 하나다.

참나와 하느님은 이어져 있다."(다석어록)

 

배꼽 막고 숨 열리듯 참나는 제나 죽어야 비롯  封臍通鼻誠終始

   봉제통비(封臍通鼻)란 태아가 태어났을 때의 상황을 그린 것이다.

갓난 아기는 첫 울음과 함께 숨길이 열리고 탯줄은 잘라 봉한다. 이제

까지는 탯줄로 산소를 공급받다가 이제부터는 숨을 쉬어 산소를 얻는

다. 이 세상에는 의미 없는 우연이란 없다. 탯집 속 양수에서 9달 동

안 보낸 것은 생물이 30억 년 동안 바다에서 진화한 것을 축소한 것

이다. 이것을 요점반복(要點反復)이라고 한다. 태아가 양수 속에서 대

기 속으로 태어난 것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 온 것이다. 원시 동물

이크시오테가가 육지로 올라 온 것이 3억6천만 년 전이다 .

  바다의 생물들이 아가미로 물을 숨쉬다 육지에 올라와 땅위의 짐승

이 되어 허파로 대기를 숨쉬게 된 것은 비약적인 진화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천 년에서 2천 년 전에 또 한 번의 높은

단계의 숨쉬기가 열렸다. 이번에는 사람의 마음에서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숨이 열렸다. 얼숨이 트인 것은 형이상의 하늘나라가 열린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기도에 하늘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

한 것이다. 또 예수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

도 이것을 말한 것이다. 기도나 명상은 얼숨을 쉬는 것이다.

   류영모는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숨은 목숨인데 이렇게 할딱할딱 숨을 쉬어야 사는 생명은

참생명이 아니다.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 생명이다. 영원

한 생명에 들어가면 코로 숨쉬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얼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제나(自我)는 소용이 없다. 숨 안 쉬

 면 끊어지는 이 목숨은 가짜 생명이다. 하느님의 성령인 말숨(말씀)을

 숨쉬지 못하면 사람이라 하기 어렵다. 하느님이 보내는 성령이 얼나

 인 참나다. 석가의 법신, 예수의 하느님 아들은 같은 얼나인 영원한

 생명이다." (다석어록)

   석가와 예수가 집을 뛰쳐나간 것은 가난해 못 살아서가 아니라 나

 를 몰라 속이 답답해서였다. 마치 물 속에 들어가서 숨을 못 쉬는 것

 처럼 죽을 것 같이 마음이 답답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

 는 얼숨이 터지자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생의 모

 든 의문이 저절로 풀어졌기 때문이다.

   성(誠)은 얼나인 참나를 말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

 (誠)은 하느님을 말한다. 유교에서는 참(誠)은 하느님이라고 말하였

 다. '참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길이다. 참을 그리워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다' (誠者天之道也 思誠者人之道也-맹자』 이루장 상편)라고 하였

 다. 이 하늘 길을 가려면 곧이 곧장 가야 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꾸 중간에서 장애가 생긴다."(다석어록)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그리워하면서도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지 못하는 것은 제나(自我)가

 살아 탐 ·진 ·치가 얼숨 쉬기를 막기 때문이다.

 

 잘못 본떠 (생긴) 고달프고 역겨운 거짓 나는 나서 죽어  效嚬疲厭妄始終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월(越)나라 구천이 오(吳)나라 부차를 쓰러뜨

 리고자 미인계를 썼다. 구천은 월나라 미인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쳤다. 서시는 속병이 있어서 통증이 일어나면 얼굴을 찡그렸다. 서

 시에게 빠진 부차는 서시의 찡그리는 얼굴을 더 아름답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월나라 여인들은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고자 너도나도

  서시처럼 찡그렀다. 그러나 찡그린 여인들의 모습은 더욱 꼴불견이었

  다. 이리하여 남의 결점을 좋은 것으로 알고 본뜨는 것을 효빈(效嚬)

  이라 하게 되었다. 류영모는 효빈에 대해서 말하기를 "남을 본받아 흉내

  내는 것을 효빈이라 한다.이 세상은 통히 효빈하는 세상이다.이 따위 짓을

한다면 성불(成佛)이고 구원이고 소용없다"라고 하였다.류영모는 혼인하는 것은

분명 잘못인데 좋은 것으로 알고 너도나도 혼인하는 것을 효빈이라 하였다.

  혼인하여 태어난 몸나의 삶은 거짓(妄) 나로 태어나서 고달프고 서

  럽게 살다가 죽는다. 류영모는 말하였다. "이 몸은 얼마 앞서 어쩌다

  가 어버이의 정혈(精血)로 시작되었다. 실없이 비롯되었으니 머지않

  아 사라진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 몸은 참나가 아니라 거짓 나

  다. 그러므로 몸나가 산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참나인 얼나를 찾아야 한다.우리의 일은 참나를 찾는 거다.

하늘나라에는 영원한 생명인 참나가 들어간다. 가짜 생명인 몸나는

죽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 생명을 연명시키는 데에만 궁리

하고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 ·석가는 가정에 갇혀 살

지 않고 하느님의 속인 허공에서 살았다. 아기를 낳지 말아요. 세계의

장래를 위해서 자식을 낳아 잘 길러 큰 인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렇게 맘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 자식을 못

낳는 게 불효하는 게 아니다. 무책임하게 아이 낳는 것보다 더 심한

부자(不慈)는 없다."(다석어록) 예수는 본보기로 가정을 이루지 않았

고 자식을 낳지 않았다. 가정은 음욕를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가정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된 하늘나라에 이르러야한다. 가정이란 잠시 머

무는 쉼터에 지나지 않는다.

 

비롯 없고 마침도 없는 맨 처음 으뜸님 無始無終元始初

   장자(莊子)의 말대로 여름철에만 살다 죽는 쓰르라미가 겨울철을

상상하기 어렵듯이 짧은 삶을 살다 죽는 사람이 비롯도 없고 마침도

없는 영원 무한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리하여 역사적으로 유식하고

영리하다는 동서양의 학자들조차도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절대존재인

하느님을 잘 알지 못하였다. 러셀은 하느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를

따지다가 찾지 못하자 아버지 없는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 없는 우

주도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무시무종의 허공인 절대존재를 모르니

그런소리를 하게 된다.무시무종이란 상상만도 아니고 관념만도 아니다.

사실적인 인식이고 체험적인 자각이다.영원 무한한 허공은 과

학자들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고기들의 진짜 근원은 엄마 아빠 고

기가 아니라 바다인 것이다. 바다가 없으면 고기가 존재할 수 없기 때

문이다. 그처럼 모든 천체(별)의 원시초(元始初)는 허공인 것이다. 허

공이 없으면 모든 천체가 있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

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보내 주시는 하느님의 성령으로 알게 된다.

 

 비롯 있어 마침 있는 제나는 이내 죽어   有時有終自乃終

   비롯이 없어야 마침이 없지 비롯이 있으면 마침이 있다. 바꾸어 말

하면 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말이다. 시(始)와 태(胎)는 같은 뜻글자로

모태(母胎)에서 비롯한다는 뜻이다. 종(終)은 다 감은 실꾸리로 끝났

다는 죽음을 뜻한다. 유시유종(有始有終)은 생사(生死)이다. 무시무종

은 不生不滅 이다.하느님은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절대존재이지만

사람은 나서 죽는 상대적 존재다. 사람의 몸생명

 은 아무리 금이야 옥이야 해도 보잘것 없기가 성냥불이요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인 성령을 우리 맘속

에 보내신다.

그 하느님의 성령이 우린의 얼생명이다. 이 얼생명은 하

느님의 생명이라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불생불멸로 영원한 생명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오늘날 세상은 나라는 것을 오관(五官)

과 사지(四肢)에 한정해 버려 몸의 나밖에 모른다. 그리하여 권력을

쥐고 으스대는 자, 금력을 가지고 뽐내는 자, 명성이 높은 자, 신체가

미끈한 자를 부러워한다. 이게 다 악인의 낮을 보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싼다. 그러면 제가 잘 살거니 한다. 이게 다 꿈지럭거리며 짐승 노

릇, 벌레 노롯 하는 거다. 나는 몸을 부정한다.조금 하면 피곤해 지

치고, 조금 하면 시시하게 죽어버린다. 이러한 몸을 위해 살다가 죽어

서 그만두게 된다면 정말 서운할 거다. 그저 남 먹는것 입는 것에

빠지지 않겠다는 게 육신 생활의 전부다. 멸망의 몸나가 거짓나임을

알고 영생의 얼나로 솟나자는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