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참 길은 들락날락 아니해야 人道非首鼠

 

참을 가까이, 색욕을 멀리함은 반비례                  近道遠色反比例

참을 찾아 힘쓰기,먹기를 잊음은 진분수(관계)          發憤忘食整分數

부자됨,어질게 됨은 어긋나는 법                       爲富爲仁葛藤式

여색을 좋아함,속알 좋아함은 맞지 않는 셈             好色好德矛盾籌

                                                        (1957.11.8)

 

首鼠(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해 쥐 머리처럼 들락날락,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 發憤(발분) '마음을 단단히 먹고 힘쓰는 것. 葛藤(갈등) .어긋

나는 것. 式 법 식. 矛盾(모순) :이치에 맞지 않는 것 籌:셈놓을 주

 

예수가 이르기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

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

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마태오

7:13-14)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 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되는 일도 없

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마태오 6:19-21)고 하였다.

우리는 좁은 문과 넓은 문 그리고 재물을 땅에 쌓기와 하늘에 쌓기

에서 선택해야 한다. 이것을 알기 쉽게 말하면 짐승인 몸생명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아들인 얼생명으로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

다. 얼생명으로 사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는 일이다. 몸생명으로 사는 것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

이고 땅에 재물을 쌓는 일이다. 예수 자신이 얼생명으로 사는 길을 보

여주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따르려고 선뜻 나서지 못한

다. 예수의 말대로 살자면 인생을 포기해야 될 것 같이 생각한다. 그

래서 의심 많은 쥐가 쥐구멍 입구에서 나갈까 들어갈까 망설이듯이

기웃거리고 머뭇거린다. 그러나 류영모는 참을 찾아가는 사람의 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人道非首鼠)

류영모의 소신(所信)있고 확신(確信)에 찬 말을 들어보자. 이 정도

가 되어야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얼생명밖에 정신이 만족할 만

한 것이라고는 상대세계에는 없다. 그러므로 상대세계에 한눈 팔 겨

를이 없다. 그래서 내게는 당연히 머물러서 마음 붙일 곳이 이 세상

에는 없다.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금강경)이다. 참

좋은 말이다. 이 상대세계는 내가 머물러 맘 붙일 데가 없으므로 이

상대세계에 머무르지 않는 참나인 얼나에 맘을 내라는 것이다.이 말

한마디만 잘 알면 해탈할 수 있고 구원받은 지경에 갈 수 있다." 이렇

게 생각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일이다. 류영모는 몸생명을 부정한 다음에 얼생명으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참을 가까이, 색욕을 멀리함은 반비례     近道遠色反比例

  도(道)를 가까이하려면 색(色)을 멀리해야 하고 색을 가까이하면 도

와 멀어진다는 말이다. 근도원색(近道遠色)과 호색위도(好色違道)는

반비례의 관계인 것이다. 근도(近道)는 점수(漸修)다.점수는 돈오(頓

悟)에 이르러야 하듯 근도(近道)는 각도(覺道)에 이르러야 한다.정자

는 난자에 수정이 되어야지 수정을 이루지 못하면 가까이 온것이

무의미 하다.

예수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아무도 나를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라고 하였다.

이 말은 예수가 각도(覺道)한 것을 보여 주는 말이다.이 번역을 다르

게 옮기면  "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얼나가 아니고서는 아무

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이다.원색(遠色)은 단색(斷色)이 되어야 한

다. 내게서 짐승의 본성을 뽑아 버려야 한다. 근도(近道)는 『대학』(大

學)에 나오고 원색(遠色)은 『중용』(中庸)에 나온다. "군자는 참소를

버리고 색욕을 멀리한다" (去讒遠色 -『중용』 20장)라고 하였다.

 

참을 찾아 힘쓰기, 먹기를 잊음은 진분수(관계) 發憤忘食整分數

   구도를 위한 분발을 분모로 하고 식욕을 분자로 할 때 분발함이 세

어질수록 식욕이 줄어진다는 뜻이다. 정분수는 분자보다 분모가 큰

진분수를 말한다. 발분망식(發憤忘食)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에서 따온 것이다. 초나라 현윤 심제량이 자로에게 스승인 공자에 대

한 인품을 물었다. 자로는 대답을 못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공자가 말

하기를 "너는 어찌 말하지 못했는가. 그의 사람됨은 학문을 좋아하기

에 먹는 것을 잊고 학문하기를 즐겨하여 근심을 잊어 늙어 가는 줄을

모른다"(논어 술이편)라고 하였다. 여기에 앞의 원색(遠色)과 뒤의

망식(忘食)이 이어져 있다. 식색(食色)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특별히

진(瞋)이 강해 남과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대개는 식색(食

色)인 탐치(貪痴)가 문제다. 그런데 식(食)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혀

(舌)의 길이가 12cm이고 색(色)의 상징인 남근의 길이가 12cm라고 한

다. 12cm의 두 요물 때문에 삶의 성패가 판가름 난다. 이 두 요물을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은 잘못되었다 .삶의 법칙이 잘

못되었으니 못되었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삶의 법칙을 식색(食色)

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짐승살이로 못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

은 그것이 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있다. 못된 것을 바로 잡자면 밥도

처자(妻子)도 잊어야 한다. 식색으로만 사는 것은 짐승살이다. 못된

세상을 바로 살게 하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이란 외적인 제도를 고치

자는 것이 아니다. 내적인 얼생명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예수는 '육

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요한 6:63)

고 하였다. 식색이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사는 것이다. 얼의 운동

이 말씀이다. 이 땅 위에서 식색의 몸생명으로만 사는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모른다. 식색의 몸이 주인 노릇을 하면 하느님의 말씀은 알 수

없다.얼이 풍부해지면 식색은 자연히 끊게 된다.얼의 나가 참나로

영원한 생명이다. 죽는 것은 짐승인 몸뿐이요 얼은 영원히 산다. 얼은

영원한 생명으로 몸의 생사(生死)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신이

깨어서 얼생명으로 살아야 한다."(다석어록)

"부자됨, 어질게 됨은 어긋나는 법      爲富爲仁葛藤式

공자(孔子)는 인(仁)을 중시하였는데 제자들이 인(仁)에 대해 물으

면 여러가지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공자(孔子)의 인(仁)을 우리는 분

명하게 알 수 있다. 안연(顔淵)에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함이 인(仁)

이라고 하였고 자공에게는 박시제중(博施濟衆)함이 인(仁)이라고 하

였다. 극기복례는 짐승인 제나(自我)를 죽이고 얼나로 하느님 아버지

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박시제중은 하느님 아들이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진리를 베푸는 것이다. 류영

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는 이 세상 사람에게 '주는 것'을 가르친

사람이다. 이 세상은 주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줄 수가 있어야 한

다. 떳떳치 못하게 무엇을 바라고 산다는 것은 차라리 이 세상에 안

나온 것만 못하다. 우주의 아버지(하느님)는 무엇을 나누어 주라는 것

이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주는 재미다.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기

왕에 주려면 예수같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아무 것

도 없지만 이제는 주려고 산다. 내가 세상에 바라지 않는다."(다석어

록) 이것이 '극기복례 박시제중'으로 어짐(仁)을 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그 반대다. 제나(自我)의 탐욕으로 맘껏 부(富)를

쌓는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돈을 모으면 자유가 있는

줄 아나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영업이나 경영이 자기 몸씀이만

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서로의 평등을 좀먹는다. 경영을 하게 되면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평생 동안 모으려고만 하게 될 것

이니 자유 평등이 있을 리 없다. 돈에 매여서 사는 몸이 무슨 자유이

겠는가. 매인 생활은 우상생활이므로 매여서는 안 된다. 요즘 말하는

정상배(政商輩)의 생리다. 나도 한번 모아 보자. 그래서 떵떵거리고

잘 살아 보자. 재벌도 되고 큰 자리에도 앉아 보자는 것이다. 이따위

우상숭배는 사라져야 한다. 사람은 메이는 데가 없어야 한다. 위인불

부(爲人不富)라는 말이다. 사람이 되어야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는 말이다. 부귀는 힘과 빛 때문에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에

게는 정신의 힘과 얼의 빛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다석어록)

  예수는 말하기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

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태오 19:23-24)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예수를 찾아와 제 형더러 저에게 아버지의 유산을

나누어주라고 일러주십시오 라고 부탁하자 예수가 말하기를 "어떤 탐

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루가 12:15)라고 하였다.

 

여색을 좋아함, 속알 좋아함은 맞지 않는 셈  好色好德矛盾籌

호색(好色)과 호덕(好德)의 관계를 비교하여 준 이는 공자(孔子)다.

공자가 말하기를 "그만두어야겠다. 내 아직 속알 좋아하기를 여색을

좋아하는 것 같이 하는 이를 보지 못하였다"(已矣乎 吾未見好德如好

色者也-논어 위령공편)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공자가 찾아다닌 제후

왕들이 하나같이 미색(美色)은 좋아하면서 덕사(德師)인 공자를 좋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생 진리의 실현

에 힘쓴 추남(醜男) 소크라테스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하였

다. 마하트마 간디는 참으로 호덕 (好德)하는 인자(仁者)이다.

   짐승인 제나(自我)의 사람은 여자를 보면 교접을 하여 제 자식을

낳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짐승들은 오로지 자기 새끼를 번식시키는

것이 생존의 목적이다. 하느님의 아들인 얼나(靈我)의 사람은 모든 사

람의 마음속에서 잠자고 있는 하느님 아들을 깨우려고 한다. 마하트

마 간디는 이를 하느님의 생식(生殖)이라고 말하였다. 자신이 짐승인

지 하느님의 아들인지를 알려면 자신의 마음이 여색에 더 끌리는지

덕사(德師)에 더 끌리는 지를 시험해 보면 알일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남녀가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서로

정력을 낭비하여 상대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상에 죄악치고 남녀문제가 없는 것은 없다.

일체의 범죄는 남녀관계에서 비롯된다. 예수는 독신으로 살았으며 여

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일이 없다. 정신 든 사람이 어떻게 여자에게

함부로 음욕을 품을 수 있겠는가. 음욕이란 실성한 사람들이 할 짓이

다.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은 음란에 젖을 까닭이 없다. 속살을 가리

는 것이 없으면 사람은 금수만도 못한 인충류가 되고 만다. 금수는 암

수가 만나 새끼를 낳으면 끝낸다. 그런데 사람은 주인 있는 여자이건

아니건 색광(色狂)에 미치면 못할 짓이 없다. 사람은 살맛으로 살아서

는 안 된다." (『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