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깨달은 이(크리스찬) 基督者

 

  정중한 기도는 성령을 숨쉼이요                        祈禱陪敦元氣息

  찬송의 반주는 튼튼한 맥박의 울림                     讚美伴奏健脈搏

  옳고 극진한 먹거리 감사는 날로 바로 먹기             嘗義極致日正食

  하늘 제사를 참 잘 밝힘은 밤에 맡기고 잠              誠克明夜歸託

                                                               (1956.12.8)

 

 陪敦(배돈) .정중히 받들음  陪 : 모실 배. 敦 도타울 돈. 嘗 :가

  을 제사 상, 맛볼 상.  :하늘에 올리는 제사 체.  

  克明(극명) :잘 밝힘. 克 능할 극. 託 : 맡길 탁. 健 굳셀 건

  (極致) :더할 수 없이

 

                                                                       

    종교에서의 생명은 진리(성령)다. 종교에 진리가 살아 있으면 의식

  (儀式)을 초월하지만 진리가 떠나면 의식(儀式) 종교가 되어버린다.

  의식 종교는 진리보다 조직이 우선한다.

    예수는 진리를 말씀하시는 선생이었지 의식(儀式)을 주재하는 사제

  (司祭)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뒤의 기독교는 의식을 주관하는 사제의

  종교로 되어버린 점이 많다. 오늘날의 여러 교회들은 요란한 예배의

  식으로 최면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류영모는 사찰이나 성당에 촛

  불 켜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예수와 석가가 다같이 진리

  를 설교하였지 예배의식을 주관한 일이 없다. 그러므로 제사종교가

  되어버린 기성 종교집회를 좋아할 리 없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

  다.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집회에는 안 가는데, 예수 믿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기도에 대해서나 성경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 나는

   그럴 자격도 없으니 안 한다. 소위 교회 본위의 교회주의 기독교 교인

  은 이 사람을 대단히 싫어하는 것으로 안다. 이 사람이 생겨먹기로 제

  생각대로 하자는 것이지 억지로 어떻게 만들어서 말할 수는 없다. 나

  는 적어도 구약과 신약은 성경으로서 오래 지나도 버릴 수 없는 정신

 이 담겨 있다고 본다 .신약의 말씀도 구약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다

 른 종교의 경전도 다 구약성경과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은 조금도 틀

 린 말이 아니다. 지극히 높은 데 계신 완전한 아버지께로 가자는 것이

 예수의 인생관이라고 생각된다. 나도 이러한 인생관을 갖고 싶다. 이

 런 점에서 예수와 나와 관계가 있는 것이지 이밖에는 아무 관계가 없

 다. 이걸 신앙이라 할지 어떨지, 예수 믿는다고 할지 어떨지 나는 모

 른다. 예수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린 것을 믿으면 영

 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다석어록』)이것이 류영모와

 예수와의 관계다.

 그러나 예수가 깨달은 얼나, 곧 하느님이 보낸 성령

 으로서는 예수와 류영모가 다르지 않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 보았다. 보내신 그리스도란 영원한 생명이다. 우리에

 게 산소가 공급되듯 성령이 공급되는 것이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줄곧 오는 영원한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그리스도)이 있는 것은 틀림

없다. 예수 석가에게 나타났던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도 나타났으니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한 생명(얼나)이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없

다"라고 하였다.

   기독자란 크리스천(christian)이란 말이다. 여기에서 크리스천이나

기독자는 교회 신자란 뜻이 아니라 예수가 가르쳐 준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거듭난 사람을 뜻한다. 이런 뜻에서 기독자란 불자(佛子)란 뜻

과 다르지 않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불성(佛

性)이 자기에게 있음을 믿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기독자의 얼나나 불

성의 얼나나 한가지로 영원한 생명이다.류영모는 "영원한 생명에는

개인이란 없기 때문에 이름이 소용없다"라고 하였다.

 

 "정중한 기도는 성령을 숨쉼이요" (祈禱陪敦元氣息)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인 성령을 정중히 숨쉬는 것이 기도라는 말이

  다.元 (원)자는 사람이 하늘을 이고 있는 형상으로 하느님을 나타내

  는 글자다. '氣' (기)는 공중에 날아다니는 김을 나타내는 글자다.

  '息'(식)은 코(自)와 맘(心)이 합친 글자로 얼숨을 쉬는 맘의 코다.

 원기식(元氣息)은 하느님의 얼을 숨쉰다는 말로 성령을 숨쉬는 것이

 기도라는 뜻이다. 성령을 숨쉬되 쉬는 척만 할 것이 아니라 배돈(陪

 敦),곧 정중히 숨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었다. "나더러 크리스천이 어떤 것이냐고 물으

면 기도하는 이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겠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

이냐 하면 배돈(陪敦)하게 한다. 배돈에는 정중과 조심의·뜻이 포함되

어 있다. 기도는 조심조심하여  정중히 간절간절하여 두툼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정신적인 성령의 호흡이다. 성령의 호흡인 원

기식(元氣息)을 조심하여 깊이 두텁게 숨쉬는 것이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정신적인 숨쉼이다.

 성령이 우리 맘의 얼로 참나인 영원한 생명이다. 하느님의 성령을 숨쉬지 않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할딱할딱 숨을 쉬어야

사는 이몸은 참 생명이 아니다.  성령을 숨쉬는 얼생명이 참나다. 영원한 생명은  

숨쉬지 않아도 끊기지 않는 얼숨이 있을 거다. 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제

  나(自我)는 쓸데없다. 숨 안 쉬면 끊어지는 이 몸 목숨은 가짜 생명이

  다. 영원한 생명인 석가의 법신(法身) 예수의 하느님 아들은 같은 말

  이다." (다석어록 )

   류영모는 예배 의식을 갖지 않았다. 기도나 찬송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류영모는 류영모 대로  기도와 찬송이 있었다. 예수처

 럼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고 찬송을 드렸다. 류

 영모는 이르기를 "이 사람은 여태껏 여러분과 같이 기도는 하지 않으

려고 한다. 찬미 또한 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한 것이 꽉 차서 하느님

의 생각과 일치되어 절로 나오는 감동이 찬미가 되어야 하고 그 말이

기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참 생각이 여물어져 하느님과 일치되는 생

각을 하게끔 되어야 찬미와 기도가 의미있는 것이지 그 밖에는 의미가 없다.

 한다 하여도 거짓이 된다. 기도와 찬미를 우리네가 인사치레하

는 것같이 하고 있으나 그런 것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여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찬송의 반주는 튼튼한 맥박의 을림 " (讚美伴奏健脈搏)

    태아가 어머니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리듬으로 삼아 소리 없는 감

 사와 찬양을 어머니께 바치듯 우주에 울리는 하느님의 심장이 뛰는

 고동소리에 영원한 생명의 을동을 느끼며 그 반주에 맞춰 우리의 얼

 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우리 몸의 맥박도 따라서 차고 넘

 치는 기쁨으로 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더러 어떤 이가

  '예수를 믿으십니까' 또 '선생님은 기도도 안 하시고 찬미도 안 하시

 지요?'라고 묻는다. 찬미는 몰라서 못 하고 기도는 참선에 가까운 묵

 상의 기도를 한다. 나는 찬미할 줄 모르나 찬미는 표한다. 찬미는 훌

륭한 것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다. 맥박이 뚝딱뚝딱 건강하게 뛰는

소리가 참 찬미다. 다른 것은 부러워하지 않는다."(다석어록) 우리에

게 할 일이 있다면 하느님 아버지께 올리는 기도와 찬미다. 하느님 아

버지께 기도와 찬미를 올리는 마음에는 기쁨이 넘친다. 류영모는 말

하기를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은 기쁜 것이고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것이다.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좇아 하느님께로 올라간다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수가 없다.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다.

허무한 것 같아도 목에 숨을 쉬듯이 한 발자국씩 올라가면 하느님에

게까지 다다를 수 있다. 몸으로 사는 삶은 무상하지만 얼로 사는 삶은

기쁨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옳고 극진한 먹거리 감사는 날로 바로 먹기 " (嘗義極致日正食)

   류영모는 이 구절을 이렇게 풀이하였다. "상(嘗)도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일본 사람이 신상제(神嘗祭)라고 해서 햇곡을 올린다. 우리가

추수감사제라고 해서 햇곡을 올리는 것이 이것이다. 한 해 동안 하느

님의 은덕으로 된 곡식을 이 죄가 많은 사람이 먹는데 탈나지 말라고

미리 하느님께 올리고 나서 먹는 것이다. 제(祭)에 제물을 올리는 것

은 어디까지나 자기 몸을 바치는 대신으로 지낸다는 것이 그렇게 되

었다. 제물을 바치는 그러한 것은 하지 않아도 좋다. 오로지 마음으로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사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 사람은 제(祭)는 기도

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을 추원(追遠)하는 것이 기도다. 우리가 예수의

지내온 일생을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하는데 마지막 몸까지 희생하였다. 우리는 날

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이 생각을 함으로써 우리가 욕

심으로 먹고 마시는 것은 버려야 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예수

의 희생으로 그의 살이요 피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알고 먹는 것이 성

찬이다. 날마다 먹는 음식을 성찬으로 먹어야지 식욕으로 먹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상의극치일정식(嘗義極致日正食)이다. "

 

"하늘 제사를 참 잘 밝힘은 밤에 맡기고 잠" (誠克明夜歸託)

   체제(祭)란 옛 중국의 천자(天子), 곧 황제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인데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일이었다. 그런데 체제(

祭)에 대해서 공자(孔子)가 한 말은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 누가

공자에게 (체)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였다. 공자는 모르는 게 없다 할 만큼 박식하여 무엇

을 물어도 막히는 일이 없었다. 다만 진치는 법을 물었을 때 언짢게

생각하여 대답을 하지 않았고, 농사에 대해 묻자 농부만 못하다고 하

였다. 더구나 제사에 관한 일이라면 공자에게는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 모른다고 하였으니 (체)의 뜻을 심상치 않게 본 것이 틀림

없다. 공자는 말을 잇기를 "세상에 (체)를 말해 줄 수 있는 이라면

그이에게는 나라 다스리기가 이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손바닥을 가리켰다."(논어 팔일편) 공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것

을 군자의 사명으로 알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으

로 알았다. 그런데 (체)의 뜻을 알면 나라 다스리는 일쯤은 손을 펴

놓고 들여다보는 것처럼 쉽다고 한 것이다. 이것으로 공자가 천명(天

命)을 가장 두려워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공자를 대신해 류영모가 (체)의 뜻을 말하였다. "옛날에 백성들은

자기 조상들에게만 제사를 지냈다. 천자(天子)인 대제사장이 온 천하

를 대표해서 조상(祖上) 이상의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체제(祭)

를 올렸다. 이것이 곧 하느님에게 들어가는 길이다. 이 체제(祭)의

뜻을 알면 천하를 다스리는데 막힐 것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저마

다 하느님 앞에 나와서 (체)를 바쳐야 한다. 이 사람의 절대와 상대

의 만남인 가온찍기는 체제(祭)를 말한다."

   류영모가 체()를 극명(克明)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기도 올리는

체제(祭)의 뜻을 자세히 밝힌다는 뜻이다. 하느님께 기도를 바르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체)의 뜻을 모를 리 없다. (체)의 뜻을 바르

게 안다면 밤에는 하느님께로 돌아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잠

든다. 죽는 것도 잠든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