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삼독을 버린 뒤에 (니르바나의) 길을 닦는다

                           除三毒而後修行

 하루에 한 번씩 식욕을 시험 받고                        一日一試貪

일생 동안 몇 번 (아내와) 함께 해                       一代幾度痴

눈동자에 성냄을 맑게 씻어버려야                        眸子滌除瞋

사람이 바른말을 말할 때                                人生正語時

                                                      (1957.8.25)

 

除 버릴 제 修 : 닦을 수. 行 : 길 행. 試 시험할 시

 眸子 (모자) :눈동자. 眸 눈동자 모. 滌除(척제) :씻어 버리다. 滌: 씻을

척. 瞋 : 성낼 진 時 : 기약할 시

 

   삼독(三毒)이란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이 지닌 짐승의 성질을

 말한다. 20세기에 와서 가장 영향을 끼친 사상가가 마르크스와 프로

 이트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이 지닌 탐 진 치의 수성(獸性)을

 재발견한 데에 기초하여 사상을 전개한 점이다. 마르크스는 탐과 진

에 기초하였고, 프로이트는 치에 근거하였다. 사람이 지닌 세 가지 독

 한 짐승 성질이 삼독이다. 첫째가 탐(貪)이다. 탐이란 먹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강도 짓을 하는 데까지 이른다. 둘째는 진(瞋)이다. 진이란

미워하는 데서 살인하는 데까지 이른다. 셋째는 치(痴)이다. 치란 음

담패설에서 강간에까지 이른다. 동물학자들이 동물의 본성을

feeding(貪) , fighting(瞋) , sex(痴)라고 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짐승들을 얕본다 하여도 삼독을 지닌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우리의 몸은 삼독에서 나온 짐승이기

  때문에 탐 ·진 ·치에 빠져 있다. 우리는 탐 진 치라는 짐승 성질을

 버리고 사람 노릇 하자는 것이다. 도덕이란 탐 진 치를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몸으로는 분명 짐승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음이

 얼 사람으로 솟나는 우리의 길이다"라고 하였다.

   삼독(三毒)은 짐승들에게는 삼덕(三德)이다. 탐 ·진 ·치가 아니면

 어떠한 동물도 생존할 수도 번식할 수도 없다. 사람도 오늘날까지 몇

 백만 년을 버텨 온 것은 삼독의 법칙을 따랐기 때문이다. 삼독을 버리

 자고 한 류영모도 이것을 인정하였다. "탐·진 ·치를 삼독이라 한다.

 사람이 삼악(三惡)을 저지르면 개운치 않다. 그런데 탐 진 치, 이것

은 인생살이의 살림 밑천이다. 그걸로 우리가 이 세상에 나왔고 먹고

자랐으며 또 진취적이 된다. 이게 모순인데 그대로 두어야 한다."(류영

모, 『다석일지』)

   사람이 유인원(類人猿)으로 침팬지 옆에 서야 한다. 그러나 바로 서

는 직립 유인원은 사람뿐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달리 곧이 곧장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늘에서 온 탓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은 하느님

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언제나 하늘로 머리를 두고 하늘을 사모하며

곧이 곧장 일어서서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다석어록)

   사람이 직립(直立)한 지 2백만 년도 더 지난 지금으로부터 2천5백

년 전에 석가· 노자·공자·예수가 나와서 하나같이 탐·진 ·치의 수

성(獸性)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짐승의 한 무리에 지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삼독

을 깨끗이 버리면 짐승인 몸 사람으로서는 자살하는 것과 다름이 없

다. 짐승인 몸으로서는 죽어서 하느님 아들인 얼로 하느님 사랑을 이

루라는 것이다. 공자(孔子)는 이것을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하였

다. 예수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예수가 "앙갚음하지 말아

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 (마태오 5 :39-41)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하

 면 살신성인인 것이다. 짐승인 제나(自我)로 죽는 살신성인에 이르지

 않고는 예수의 말대로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삼독을 버리기 위해 제나(自我)가 죽어야 한

 다. 제나는 제나가 거짓 나인 줄 스스로 알면 저절로 죽는다. 거짓 돈

 은 거짓 돈인 것이 폭로되면 값어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거짓 나가

 죽으면 참나인 하느님이 오신다. 내 마음속에 오신 하느님이 얼나(靈

我)다. 제삼독이후수행(除三毒而後修行)은 마하트마 간디가 말한 "제

나가 죽을 때 얼나가 깬다"(When the ego dies, the soul awakes. -

M.K.간디. 『날마다의 명상』)와 같은 뜻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어릴 때 노릇은 짐승의 버릇이라고 한

다. 사람이 어릴 때 노는 일은 모두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지 못한다.

이것을 분간하면 어리다고 하지 않는다. 짐승은 먹는 것, 싸우는 것,

새끼 치는 것밖에 모른다. 이승에서 배운 먹고 싸우고 싸는 못된 짐승

버릇을 끊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하느님의 말씀을 읽게 하고 알게 해

주면 스스로 자연히 끊게된다. 자연의 프로그램에는 다 방정식이 있

다. 순서가 바꿔져서 모두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사람들이 짐승 노룻

버리도록, 하느님 생각 이루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20세 전의 이 사람

일을 생각하면 참 짐승노릇 하였다는 것을 느낀다." (다석어록)

   삼독을 버리고 수행을 잘하여 니르바나(Nirvana)의 대도(大道)를

 이룬이가 석가 부처다. 석가가 가르친 여섯 파라밀다가 바

로 '제삼독이후수행' (除三毒而後修行)을 말한 것이다. 앞의 보시(布

施), 지계(持戒), 인욕(忍辱)은 삼독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보시는

탐(貪)을 버리는 것이요, 지계는 진(瞋)를 버리는 것이요, 인욕은 치

(痴)를 버리는 것이다. 뒤의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는 수

 행하여 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이다. 니르바나(하느님)를 그리는 것이

정진이요,니르바나를 품는 것이 선정이요, 니르바나를 세상에 증언하

는 것이 반야이다.

 

"하루에 한 번씩 식욕을 시험 받고" ( 一日一試貪)

   이것은 류영모 자신이 짐승 성질과 싸운 것을 말한 것이다. 류영모

 는 15세에 하느님에 대한 초발심을 일으켜 서울 중앙 YMCA와 서울

연동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이때는 남이 가르쳐 주는 대로 받아들인

기독교 교리에 맹종하는 신앙이었다. 22세부터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

느님을 찾겠다는 자립의 신앙이었다. 52세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최고

 의 깨달음을 얻은 구경(究竟)의 신앙이었다.

   52세부터 하루 한 끼씩만 먹었다. 그것은 하루에 한 번씩 식탐을 시

험 받았다는 말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으니 얼마나 배고팠겠는가. 식

 욕을 억제하느라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다. 식욕에 끌려가면 과식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으니 한 번씩은 탐한다. 이 시

 험을 날마다 한 번씩은 당한다. 한 끼 먹기 전에는 하루에 두 끼씩 먹

었다. 하루에 한 끼 먹은 지가 올해로(1960년) 한 20년 된다. 새해 2

 월 18일이 꼭 20년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일중(日中)하는 것을 호기심

 으로 사람들이 내게 물어 본다."(다석어록)

 

"일생 동안 몇번 아내와 함께 해" (一代幾度痴)

   류영모는 52세에 금욕 생활과 일일일식을 함께 시작하여 식색(食色)

을 함께 끊은 것이다. 색과 달리 식은 완전히 끊으면 죽기 때문에 하

느님이 맡기신 사명을 할 만큼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류영모는 하루

에 한 끼만 먹는 것은 굶는 것이라 안 먹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평생

에 몇 번 어리석은 짓을 하였다는 것은 52세 이전에 부부 사이에 성생

 활이 있었던 것을 말한 것으로 그 결과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

    "남녀 관계의 그것은 몇 번 당했다는 것을 본인하고 하느님만 아는

 사실이니까 발표할 수 없다. 평생에 몇 번 당해서 자식을 낳았다. 나

 는 51세까지 범방(犯房)을 했는데 그 뒤로는 아주 끊었다. 아기 낳고

 하던 일이 꼭 전생(前生)에 하던 일같이 생각된다. 정욕이 없어서 그

 런 게 아니다. 사람 노릇 하려고 끊었다."(다석어록)

   짐승들의 생존 목적은 종족 보존에 있다. 종족 보존을 위해서는 무

슨 일을 해도 좋다. 류영모는 짐승인 종족이 단절되는 것이 하느님 아

들인 얼나의 이상이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혼인하지 않았고

석가는 출가에 앞서 낳은 외아들 라훌라도 출가시켜 석가의 혈손(血

孫)은 끊어졌다. 이것이 그리스도나 붓다(Buddha)가 보여 주는 사상

의 진수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영원한 생명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버리는 것뿐이다. 몸생명을 얻기 위해 얼생명을 버리는

것이 생식(生値)하는 것이다. 얼생명을 얻기 위해 몸생명을 버리는 것

이 천명(天命)이다. 몸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는 것이 믿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식욕, 색욕을 미워하고 버려야 한다 .우주, 세상을 미워하고

버려야 한다." (다석어록)

   이 음란한 세상이 류영모의 이러한 말을 들을 까닭이 없다. 예수 ·

석가의 말을 귀넘어듣고 톨스토이 ·간디의 말을 우습게 듣는 이 세상

이 아니던가. 그런데 문화일보에 연재되고 출판된 다석사상 전집 7권

을 읽은 한 독자(元善基)가 1998년에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외동딸(원성원)에게 "너는 될 수 있으면 시집가지 말고 깨끗하게

살라"는 유언을 하였다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새가 장차 죽으려 할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 그 말이 착하다"(烏之

將死其鳴也哀 人之將死其言也善-『논어』 태백편)라고 하였다. 여느

아버지 같았으면 너를 시집보내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

 을 것이다. 그 아버지가 딸에게 멍에를 씌운 것으로 보이지만 그 딸이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는다면 시집을 가든 안 가든 하느님을 사랑

하며 정결하게 살 것으로 믿는다.

 

"눈동자에 성냄을 맑게 씻어버려야" (眸子滌除瞋)

  삼독(三毒)인 탐 진치에서 진(瞋)을 끝으로 돌렸다. 남을 미워하

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식 색을 참기보다는 나은

편이다. 성을 안 내고 사는 이들은 주위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류영

모는 눈동자에서 노여움을 씻어버리라고 하였다. 성을 내면 눈에 노

여움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에 살의(殺意)를 품은 이는 눈에 살기

(殺氣)가 돈다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르기를 "사람이 지닌 것에서

눈동자보다 착한 것은 없다. 눈동자는 그 나쁜 것을 감추지 못한다.

  속마음이 바르면 눈동자도 빛나고 속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 (『맹자』이루 상편)라고 하였다.눈동자에서 노여움이 사라지면

미운생각이 아주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씻어내는 것은 눈동자가

 아니라 속마음인 것이다.

 "대자대비의 세계는 밉다 곱다고 하는 애증(愛憎)의 세계를 넘어서

야 한다. 그리고 남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가질 때에만 나와 남이 하

나가 될 수 있다." (다석어록)

 

"사랑이 바른말을 말할 때" (人生正語時)

   인류역사에 바른말을 한 사람은 옛사람으로 예수·석가요, 노자·장

자요, 공자·맹자가 있었다 .현대 사람으로는 톨스토이와 마하트마 간

디 ·류영모가 바른말을 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탐·진 치의

제나(自我)를 부정하고 하느님이 주시는 얼나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들의 제나가 한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얼이 한 말이라 바른말이다.

그러므로 바른말을 하려면 먼저 수성(獸性)을 지닌 짐승인 제나를 이

겨야 하고 죽여야 한다. 그래서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제나)

를 이기지 못하면 영원한 생명은 없다 .남을 이기는 것은 나와 남을 죽

이는 일이다. 나를 이기는 것이 승리요, 생명이다. 참을 찾아 올라가는

길이 나를 이기는 승리의 길이다. 남을 짓이기려는 사람은 개인이나 나

라나 다 망한다. 일제(日帝)도 망했고 조선도 망했다." (다석어록)

   눈동자에 진성(瞋性)이 이글거리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참말처럼 능

숙하게 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남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

은 거짓말을 잘하게 되어 있다. 인자하고 정직한 사람이 누구를 위해

거짓말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