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하느님)상 보기 觀相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谷神不死)

 

 빈 탕의 모습 장엄한데 만물은 꼴을 뵈고              空相莊嚴物現象

 빛깔 모양 좋다 나쁘다간 나도 몰래 흘려              色相好惡我隱惑

 눈으로 보니 흐리고 어둬 낮도깨비 나와               小見渾盲鬼出晝

 얼로 보니 분명 하느님 다니는 골                     大觀分明神運谷

                                                              (1901.11.4)

 

 相:상볼상 象:형상상 隱. 숨길 은. 渾:흐릴 혼.

 

  류영모가 이 한시를 쓰게 된 데는 숨은 얘기가 있다. 류영모는 안사

람들의 일손을 덜어주자며 국민복을 지어 입은 적이 있다. 그때 염락

준을 비롯한 몇몇 제자들도 따라 지어 입었다. 국민복이란 넥타이를

안 매는 양복을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이 입는 레닌복을 연상하면 된

다. 그리고는 일생 동안 한복을 입었다. 삭발한 머리에 무명으로 지은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천으로 된 손가방을 들고 다녔다. 손가방

에는 YMCA 연경반에서 강의할 교재가 들어 있었다. 이러한 류영모의

차림을 보고 어떤 이가 '사주 관상을 보는가' 라고 물었다. 허름하게

차린 슈바이처를 보고 '고물 장수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었다.

   류영모는 "이왕 관상쟁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하느님 아버지의 관상

을 보았다"라고 말하면서 이 한시를 교재로 강의를 하였다. 또 류영모

는 말하기를 "이상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역』을 많이 배워오고

또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아는 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그래서 『주

역』을 아주 미신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점치는 것을 미워한다. 보통사람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알고싶어 하는 사람일수록 영(靈)한 사람을 찾는다. 그래서 귀신 잡힌

사람을 무당이라 하여 무당을 찾는다. 이래서 사교(邪敎)도 생긴다.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도 이런 데에 흥미를 갖는 이가 아주 많다. 이들

은 덜된 사람으로서 영(靈)에 통한 사람이 아니라 마(魔)에 씌인 사람

이다. 우리의 진리정신을 키울 생각으로 신통(神通)을 찾으면 그것은

진리를 찾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욕심으로 얼을 찾으

면 그것은 사악(邪惡)에 떨어지고 만다. 신통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문제다. 마음이 깨끗하면 성령이 되고 마음이 더러우면 악마

가 된다" 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고생하다 죽게 되어

있다. 창세기에는 "아담에서부터 이미 사람은 이마에 땀홀리며 고생한

뒤에 흙으로 돌아간다"(창세기 .1:17-19)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평안하게 부모의 품안에서 자라 따뜻한 이부자

리에서 평생을 지내고 모두가 환영하고 모든 일이 즐거운 것만이 인

생으로 알면 틀린 것이다. 나의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니 살리거나 죽

이거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뜻대로 하시라고 맡기는 게 아들의 마음이

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살려주시는 동안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한 시

간 동안을 살게 해주면 그 시간 동안에 하느님 아버지 당신을 찾으라

고 주신 것이다. 하느님이 나의 나인 참나(眞我)라 찾지 않을 수 없

다. 우리를 살리는 동안에 하느님께 다다라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니 내 관상을 남에게 보아 달랄 필요가 없고 남의 관상을 내가

 보아줄 필요도 없다.사람은 누구나 고난 속에서만 얼나를 깨닫게 된다.

예수처럼 얼나를 깨달아 하느님을 위해서 고생하고 죽을 줄 아는

지혜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석가처럼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고 고생

을 즐기며 참을 드러내는 청정과 반야가 있어야 한다.

 

  "빈 탕의 모습 장엄한데 만물은 꼴을 뵈고" (空相莊嚴物現象)

    하느님은 실체인 무(無)와 양태(樣態)인 유(有)로 되어 있다. 하느

 님은 무(無)와 유(有) 바꾸어 말하면 공(空)과 색(色)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유(有)는 자꾸만 바뀐다. 무(無)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체인 하느님으로는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류

 영모는 이르기를 "대우주 전체는 언제나 자기가 아니면서 자기다. 자

 기가 아니라는 것은 계속 변해 간다는 말이다. 계속 변하여 자기가 없

 어지지만 대우주는 여전히 대우주라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느님은 변하지 않는 무(無)와 변하는 유

 (有)의 양면을 가졌기에 전체로는 변하면서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

 면서 변한다. 맷돌 위짝은 돌아가지만 밑짝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

 나 전체적으로는 맷돌이 돌아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하느님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하느님 밖에 없

다. 하느님 밖에서 하느님을 본다면 하느님은 공상(空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느님은 분명히 색(色)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인

우리가 색(色)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말할 때는 불변의 공상(空相)을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색계(色界)를 거짓이라고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색계의 만물은 없다가 있어지고 있다가 없어지는 상대적 존재

이기 때문이다. 공(空)이 주(主)이고 색(色)은 종(從)이므로 종(從)인

사람은 색계를 대표하여 색(色)을 부인하고 주(主)인 공(空)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깨닫고 실천한 이가 예수요 석가인 것이다. 류영모의 생

각도 예수나 석가의 생각과 일치함은 놀랍지만 당연하다. 진리(하느

님)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공상(空相)이야말로 참으로 장엄하

다. 이 우주의 만물은 공상(空相)을 나타낸 것이다. 우주의 만물이 전

부 동원해서 겨우 이 공상(空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붓끝 같은 물체만 보고 허공은 못 보다니 제가 좀팽이 같은 것이라서

물체밖에 못 본다."

   류영모가 하느님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공상(空相)의 관상을 보니

곡신불사(谷神不死)였다. 곡신(谷神)이란 노자(老子)가 쓴 하느님의

별칭이다. 곡(谷)자는 하늘(天)을 그린 상형문자다. 아래 입구(口)는

둥그런 하늘을 그린 것이고 위에 여덟 팔자(八)자 겹친 것은 하늘에

서 빗줄기가 떨어지는 것을 그린 것이다. 곡(谷)이야말로 우주를 그린

것이다. 곡신(谷神)은 천신(天神)이다. '하느님은 죽지 않는다' (谷神

不死- 『노자』 6장)가 하느님의 관상을 본 점괘다. '곡신불생불사' (谷神

不生不死)인 것이다. 비롯이 있고 마침이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

창세기 첫머리의 맨 처음이란 상대세계의 맨 처음일 뿐 하느님 자신

에게는 처음도 마침도 없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언제부터 어디서 어

떻게 생겨 무슨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하였

다. 유일한 존재이신 하느님은 불생불사이기 때문이다. 상대존재인 개

체가 나고 죽는 것은 난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개체는 있다

고 할 수 없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노자(老子)는 하느님의 관상을 보고 그 신비함에 황홀(恍惚)을 체

험하였다. 장자(莊子)는 하느님의 상을 보고 그 권위에 좌망(坐忘)을

체험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의 상을 보고 거룩한 광영(光榮)을 체험하

였다. 석가는 하느님(니르바나)의 상을 보고 기쁨의 법열(法悅)을 체험

하였다. 류영모는 말하기를 "색상(色相)이 없는 하느님 아버지의 공상

(空相)은 햇빛보다 밝은 영광스런 모습이다. 진리(말씀)란 하느님 아

버지께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빛깔 모양 좋다 나쁘다간 나도 홀려 " (色相好惡我隱惑)

  공상(空相)인 하느님의 모습을 뵙고자 나온 인생인데 엉뚱하게 색

상(色相)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건 엄청난 미혹(迷惑)이 아

닐 수 없다. 서울역으로 손님을 맞이하러 왔다가 휘황찬란한 네온사

인의 빛깔에 홀려 손님맞이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 "세상을 사랑하

면 몸으로 멸망한다. 진리를 따르면 얼로 살아난다"라고 류영모는 말

 하였다. 세상이 색상(色相)이요 진리는 하느님이다. 참 사람은 몸 살

림의 의 식 주는 간소하게 하고 맘 살림은 진선미로 풍성하게

살았다. 이것을 마하트마 간디는 진리파지를 위한 단순생활(simple

life)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은 색신(色身)에 붙잡혀 색상(色相)에 홀리고 색계(色

界)에 갇혀 짐승 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류영모는 "세상에 영웅이

라는 자들이 권력 금력을 잡으면 고작 호의호식(好衣好食)에 미녀

(美女)를 많이 거느리는 것이 다인 줄로 생각한다. 악마의 나라를 세

워 놓고 멸망해간다"(『다석어록』)라고 하였다. 중국 삼국을 통일한 진

(晉)나라 무왕(武王)이 처음 임금이 되어서는 청렴한 성군(聖君)이

되겠다고 호언하더니 차차 색상(色相)에 빠져들어 1만 명의 미녀를

거느리는 색광(色狂)이 되었다. 사람들은 멸망을 자초하는 그러한 영

웅을 부러워하여 그 흉내라도 내 보겠다고 눈이 시뻘겋다.

 

"눈으로 보니 흐리고 어둬 낮도깨비 나와" (小見渾盲鬼出晝)

   몸으로는 사람도 짐승이다. 짐승인 제나(自我)로는 자신과 새끼밖에

모른다. 짐승이 사는 목적은 오로지 새끼 치는 생식(生殖)에 있기 때

문이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이는 몸이 죽는 것을 두려워할 것도

 싫어할 것도 없다. 전체인 얼나(하느님)로는 죽음이 없다. 류영모는 말

하기를 "죽음은 없다. 그런데 죽음이 있는 줄 알고 무서워한다. 죽음

을 무서워하는 육체적 생각을 내던져야 한다."라고 하였다 .죽음을 무

 서워하는 이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도깨비, 허깨비가 보인다.

 그래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일수록 미신, 잡신을 믿는다. 몇십 년 전

 만 하여도 집집마다 잡신이 우글거렸다. 부엌에는 부엌신, 아궁이에는

 아궁이신, 뒷간에는 뒷간신, 우물에는 용왕신, 방안에 방구석신 등이

 수두룩하였다. 그 신들에게 몸의 안녕을 빌어야 했다. 전체(절대) 신관

 이 확립되지 않은 옛사람들에게는 전세계에 공통적으로 애니머티즘

(animatism), 애니미즘(animism) , 토테미즘(totemism) , 반인반동물신

 (半人半動物神), 인태신(人態神)으로 신관이 변천되어 왔다. 이게 다

 대낮에 도깨비 나오는 얘기다. 영원한 생명인 얼나를 깨달은 이는 참

 나인 하느님만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하느님밖에는 어떤 존재도 없

 으므로 잡귀,잡신이 존재할수 없다.

 

"얼로 보니 분명 하느님 다니는 골" (大觀分明神運谷)

   몸의 눈으로 보는 것이 소견(小見)이고 맘의 얼로 생각하는 것이

대관(大觀)이다. 소견으로는 창공이 우주로만 보이지만 대관하면 우

주가 하느님으로 보인다. 칸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규명하려다가 못 하였다. 우주가 그대로 하느님인 것을 몰랐

다 .필립보가 예수에게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하였다. 예수가 대답

하기를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9)라고 하였

다. 나는 전체인 하느님의 한 부분인 개체다. 부분이 있는 것이 전체

가 있는 증거인데 무슨 증거가 따로 필요하단 말인가.

   하느님인 우주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170억 년 전 우주란의 대폭발(Big Bang)로 벌어진 팽창하고 있는 유

한우주(有限宇宙)와 유한우주를 감싸고 있는 무한우주(無限宇宙)가

있다 .이 무한우주가 하느님의 실체다 .무한우주 속에 유한우주가 생

멸하고 있다. 무한우주 속에서 별의 불꽃놀이하는 것이 유한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