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너무도 고마워 쓰는 글 多謝詞

 

   게으름을 떨치고 글 익히는 기쁨에 살고   罷倦習悅處

   때로 벗이 와 즐거움을 더한다     有朋加樂時

   바라기는 하느님 아들 선비가 됨인데  願爲君子儒                                         

   언짢아하지 않는 자리 기약하기 어려워      難期不慍地

                                            (1959 .9.19)

 

   謝:감사할사 詞 글사 罷:내칠파 處 살처 潛 : 게으를

   권 慍 :성낼 온. 期 : 기약할 기. 地 : 곳 지.

 

  22살의 류영모는 아우의 죽음으로 날벼락을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

다. 이 세상에서의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사람이 비누 거품과 같은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류영모는1O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일을 이렇

게 말하였다. "내가 22살 때 20살의 동생이 죽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서는 완성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일 하나 이루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귀찮은 일은 없애자고

자꾸 노력하는데 그 일 마치면 또 거기서 새 일감이 나온다. 편리하게

승용차를 가지면 또 귀찮은 여러 가지 일이 따라온다. 나는 이 세상을

다 살아 그런지는 몰라도 이 세상에서 뭐가 된다는 것이 우습다. 이

세상에서 되는 게 무엇이 있는가. 장사가 잘 된다는 등 이따위 것이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그게 되는 건가. 이 세상이 달라진 게 있다면

사람 수효가 많아진 것, 그리고 세상이 좁아진 것뿐이다. 어리석은 것

들은 역시 어리석은 그대로 있고 달라지는 게 없다. 이 세계는 말자는

 거다. 최초의 의지가 조금 하다가 말자고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상대적 존재가 있는 상대세계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이

 세계는 소극적으로 생긴 거지 자꾸 번성해 나가자고 있는 게 아니다.

 마침내는 말자고 생긴 세상이다. 어떤 결과를 보자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나 류영모는 마침내 헛일밖에 안 되는 몸 살림을 하면서도 하

 느님 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엄청난 은혜로 감사하였다. "나는

위에서 은혜가 쏟아지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 여기서 이렇게 하는 이

상 더 은혜를 바라지 않는다.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것도 위(하느님)

로부터 오는 게 없으면 안 된다. 이걸 생각하면 무한한 감사를 드린

다. 이렇게 우리가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하루

품을 내는데는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집안식구의 수고가 있다. 오늘

이때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까닭은 우리들보다 더 괴로움을 당하면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애쓴 앞서 간 사람들의 은혜 때문이다."

   류영모가 감사하는 일이 따로 있다. 하느님의 얼(씨)을 받아 하느님

의 아들을 기르는 일이다. "살림이 구차하여 얼의 싹이 트는지도 모르

는 가운데에도 싹을 틔우려는 데 마음을 쓰며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싶

다. 나는 언제나 마음이 평안하다. 옆 사람은 알 수 없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 하느님의 씨가 싹이 트는 척만 해도 좋은데 싹이 터서 자라난

사람은 얼마나 좋겠는가. 이러한 사람만으로 온 세상이 가득하게 된

다면 이 세상이 오늘날처럼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다석어록)

 

게으름을 떨치고 글 익히는 기쁨에 살고   罷倦習悅處

   공자는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

지 않는다."(學而不厭 人不倦-논어 슬이편)고 하였다. 류영모는

불권(不倦)을 파권(罷倦)이라 하였다. 공자는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

쁘지 않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논어 학이편)라고 하였다.이를

줄여서 습열(習悅)이라 하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루하루

를 지성껏 살면 무상한 인생이 비상한 생명이 된다. 하루

하루를 덧없이 내버리면 인생은 허무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정성을

다하여 쉬면서 쉬지 않는 숨처럼 언제나 깨어 있는 사람은 쉬지 않으

면서 쉬는 숨이며 늘 괴로우면서 언제나 기쁘다. 늘 나를 죽임으로써

내가 사는 것이 일하는 것이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데서 삶의 보람

을 느낀다.그러나 그 일이 하느님이 시키는 대로 하며 자기 몫을 다

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삶, 언제 죽어도 좋

다고 하는 삶, 죽어서 사는 삶,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유영모가 익히는(習) 일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하였다. "날개 우(羽)

아래에 스스로 자(自)를 한 글자가 익힐 습(習)이다. 새 새끼가 어미

새를 본받아서 자꾸 나르는 것을 배운다. 병아리는 아마 이것을 참고

배우지 못하여 날지 못 하는 것 같다. 날개가 있어도 날기를 배워서

쓰지 않으면 날 수가 없다. 닭이란 놈은 못난 놈이다. 우리들도 익히

는 것이 사는 것이 되니까 자꾸 익혀야 한다. 새 새끼처럼 자꾸 익혀

서 위로 날아 올라가도록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예수, 석가인들 빈둥빈둥 놀면서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날마다 목

숨을 걸고 힘쓰고 애쓰며 기도 명상에 힘쓴 결과로 하느님을 참나로

 깨닫는 그리스도가 되고 붓다가 된 것이다.오늘날 우리에게

참 사람으로 다가온 류영모도 하루에 저녁 한 끼니씩만 먹는 주림을

참았고, 하루 5시간씩 자는 졸음을 이기면서 혼자 배우고 홀로 기도

한 가운데 이루어진 인격인 것이다.

 

때로 벗이 와 즐거움을 더한다     有朋加樂時

  공자가 말한 "벗이 있어 먼데서 바야흐로 찾아온다면 또한 즐

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논어 학이편)를 줄여서 유붕가

락시(有朋加樂時 )가 되었다. 류영모의 어릴 때의 벗은 우경(友鏡) 이

윤영 일해 이세정 등이다. 2O대의 벗이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崔南善) 등이다. 그리고는

제자로서 배우러 찾아온 이들이 함석헌, 김교신, 김

흥호 류달영 서영훈 이정호, 류승

국, 이성범, 염낙준, 김정호(金正鎬), 서완

근(徐完根), 박영인 등이다. 그들은 스승 류영모를 찾아와서

북한산의 빼어난 경치에 마음이 비워지고 류영모의 놀라운 말씀으로

마음이 가득차서 돌아갔다.

   증자는 말하기를 "참 사람은 글로써 벗을 만난다"(君子以友

會友 -논어 안연편)고 하였으나 류영모는 "벗은 얼로 사귀어야 한다"

고 말하였다. "하느님을 위해서 마음을 바치고 친구를 위해서 몸을 버

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큰 사람(大人)이다. 위(하느님)로 향하는 사람

은 친구도 자기보다 얕은 사람과 사귈 수 없다. 정신이 자기보다 높아

 자기의 정신을 높여 줄수 있는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은 얼로 사귀는 우도(友道), 우애(友愛)라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 때 너와 나의 벽을 뚫어 통할 수 있다."

 

바라기는 하느님 아들 선비가 됨인데  願爲君子儒  

   공자(孔子)가 제자 자하(子夏)에게 이르기를 "너는 (하느님 아들인)

얼나의 선비가 되어라. (짐승인) 제나의 선비가 되지 말라"(汝爲君子

儒 無爲小人儒-논어 옹야편)고 하였다. 선비라고 다 선비가 아니

다. 얼나로 솟난 이가 참 선비다. 공자(孔子)는 얼나로 솟난 얼나의

군자선비였다. 그래서 공자는 "하느님이 나에게 속나(얼나)를 낳으셨

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공자가 얼나로

거듭난 체험을 말한 것이다. 예수가 찾아온 유대 관원 니고데모에게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얼)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육(몸)에서 나온 것은 육이요 영(얼)에서 나온 것은 영(얼)이

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요한 3:3-6)

고 하였다. 예수가 이 말을 하기 5백 년 앞서 이미 공자는 자신이 하

느님이 낳아주시는 얼나로 새로 나는 체험을 말하였다. 예수가 '몸에

서 나온 것은 몸이요' 라고 한 것은 몸 사람인 어버이가 낳은 몸나는

나서 죽는 멸망의 생명이란 말이다. '얼에서 나온 것은 얼이다'라고

한 것은 얼이신 하느님이 낳은 얼나는 영원한 생명이란 말이다.

   그런데 공자 뒤로 공자가 바라던 군자유는 드물고 소인유

만 쏟아져 나왔다. 소인유들이 중국을 망치고 조선을 망쳤다.

유교가 부흥하려면 공자의 군자유 정신을 살리는데 있을 것이다.

   류영모는 군자를 '그이'라고 하였다. 그이란 뜻은 그(하느님)

 를 그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군자를 그이라고 하고 싶다. 군

자란 한자로는 임금의 아들이란 뜻인데 하느님 아들로 볼 수

있다. 공자(孔子)의 자(子)도 아들이다. 누구의 아들이겠는가. 하느님

의 아들일 것이다.나더러 '무엇을 하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그이

(君子)가 되고 싶다고 할 수 있다. "기왕에 생명을 타고난 이상은 나를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든지 바로 살겠다고 하던 그'라고 하

는 소리를 나는 듣고 싶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의 그이가 있는데

두어 사람이라도 이 사람에게 '그이는 참 지금 생각해도 좋은 사람이

야. 나쁜 감정은 없다'면서 그이(君子)라고 불러준다면 나는 여부없이

받겠다." (다석어록)

 

언짢아하지 않는 자리 기약하기 어려워      難期不慍地

 여기의 불온不 慍은 공자가 말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언짢아하지 않는다면 또한 참 사람이 아니겠는가"(人不知不

 慍不亦君子乎-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불온이다. 성내지 않는

다. 언짢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자가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어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라 하였으니 나도 그런 지경에 이르기를 기약하기

어려울까라는 뜻이다.

   예수는 베드로가 알아주고, 석가는 가섭이 알아준 것으로 되어 있

다. 그런데 류영모는 말하기를 "예수 석가를 다 몰랐다. 누구를 존경

하고 좇는 것은 다 제 욕심 채우려 드니까 모르게 되는 거다. 예수

 석가는 바른 말 하였는데 사람들이 못 알아 들었다"라고 하였다.공자는

스스로 말하였다.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 탓을 않으며 아래(세

상) 것을 배워 위(하느님)에까지 다다랐는데 나를 알아주기는 하느님

뿐이다."(不怨天 不 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天乎-논어 헌문편)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자는 말하기를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몰라줄까 걱정하라.' 또 '내가 능(能)하지

못한 것을 걱정할 것이지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일생을 살다가 한 번도 친구가 찾아오지 않는 일이 있다.

심히 외로워 남이 나를 몰라주는구나 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이 나를 몰라주어도 노여워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생전에

동지 하나 얻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하는 데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그

것 또한 군자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나 공자가 걸어온 길이 바로 이

좁은 길이었다. 세상에서는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하느님께서만 나를

알아주면 그만인 것이다."(다석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