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먹기만을 꾀하면 먹거리도 모자란다                 謨食未足食

         - 참을 찾으면 먹거리는 저절로 넉넉하다        (謨道食自給)

 

  맘에 (삼독) 비워 평안한 깨끗이 빈 맘                  虛心燕處淨空心

  맘에 (삼독) 있어 때없이 욕심이 맘 더럽혀              有心無時欲點心

  이익을 꾀하다 뒤에 뉘우쳐 지는 이로움 꾀해            謨利後悔謨敗利

  하늘 씨알은 하느님이 씨알 먹이심 먼저 알아            天民先知天食民

                                                        (1957.2.25)

 

謨:꾀할 모. 燕處(연처) 평안한 하늘나라 燕:제비 연. 淨: 깨끗

할정 點:더러울점.  敗:질패 自:저절로자 給:넉넉할급.

 

   공자(孔子) 가로되 "참사람은 참 찾기를 꾀하지 밥 먹기를 꾀하지

않는다"(君子謨道 不謨食-논어 위령공편)라고 하였다.이 시의 제목

을 따온 원문이다. 공자의 말을 고쳐서 류영모는 "먹기만을 꾀하면 먹

거리도 모자란다. 참을 찾으면 먹거리는 저절로 넉넉하다"(謨食未足食

謨道食自給)고 한 것이다. 사람의 말은 한 쪽을 드러내면 다른 쪽

이 숨겨지는데 서로가 보완해 주어 뜻이 분명해진다. 이 말은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오 6:33)라고 한 예

수의 말과 같은 뜻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급선무가 밥에 있으면 안 된

다. 우리 식구가 입고 먹어야지, 자식 입학도 시켜야지 하고 집안일을

먼저 생각하는 이는 나라와 겨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참으로 나

라사랑이란 지금 당대만 아니라 3대, 4대까지 구차하게 지낼 각오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욕심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농사를 짓는데 심

은 사람과 거두는 사람이 함께 참여한다. 심었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고 거두었으니 내 것이라 할 수 없다. 거저 먹고 지내겠다는 생각도

잘못이고 편안히 먹겠다는 것도 착각이다. 사람들은 무엇이나 소용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 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자기의 의식주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은 아니다. 무한한 시간

공간에서 모든 것이 다 합해 이뤄져 대어준 것을 우리는 받아서 산다.

우리는 여기에 참여해 조금 일할 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다 먹고 쓰

려고 해서는 안 된다."(다석어록)

   예수 자신의 말대로 예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

다. 그런데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생선으로 3천 명,5천 명의 무리

를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이것이 참을 찾으면 먹거리는 저절로

넉넉해진다(謨道食自給)를 보여주는 얘기다. 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은 제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적이 일어난다. 사

랑하는 가족끼리는 밥이 모자랄 때 오히려 밥이 남는다. 참을 찾는 사

람들은 일하지 않고는 먹으려 하지 않는다. 톨스토이와 류영모가 사람

은 반드시 농사를 해야 한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놀고 먹으

면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된다. 그래서 참 사람은 백장

스님이나 바울로처럼 일하지 않고는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찾는 사람들이 많으면 저절로 먹거리가 넉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짐승의 수성(獸性)으로만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

다.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들에게는 반드시 힘으로 군림하는

임금이 있다. 우리 사람들도 탐 진 치의 짐승으로 사는 이가 대부

분이기 때문에 원숭이나 침팬지처럼 임금(대통령)이 있다. 모든 사람

이 예수 석가처럼 짐승인 제나(自我)를 버리고 얼나로 솟나 하느님

아들로 산다면 세상의 임금(대통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얼나로

솟난 하느님 아들들보다 세상 나랏일을 맡아보는 이들이 잘났다고 으

스대는 동안은 우리가 짐승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자본론이라는 책을 썼다. 『자본론』

은 한마디로 모식(謨食)의 글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똑똑하다는 이들

이 이 모식(謨食)의 글을 성경으로 받들며 배물(拜物)신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여러 나라에서는 이들이 정권을 잡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이른바 20세기(1917년)에 나타난 공산국가다. 그들은 한동안 이 지구

위를 어지럽게 하였다. 그런데 일세기도 지나지 못한 오늘에 와서 모

식(謨食)의 나라들이 더 못살게 된 것이 역사적으로 판가름났다. 더구

나 한국에서는 공산, 자유 두 사상의 시험 결과가 분명해졌다. 한국은

작은 나라인데다 단일민족이다. 한반도 한가운데를 잘라 북한에는 공

산국가를 남한에는 자유민주국가를 세웠다. 5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 시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북한은 세계로부터 빌어먹는 거지 나라

가 되었고 남한은 세계 10위 권을 넘보는 무역국이 되었다. 모식을

하려는 공산사상은 몹쓸 사상인 것이 판명되었다.

류영모가 이 한시를 쓴 것이 1957년이다. 그 무렵 류달영은 월간지

「사상계」에서 한국은 자유사상과 공산사상을 실험하는 두 시

험관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류영모는 그 실험 결과를 보기도 전에 그

결과를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북한은 모식미족식(謨食未足食)이고

남한은 모도식자급(謨道食自給)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남

한 사람들 가운데도 모도(謨道)하는 사람보다 모식(謨食)하는 사람이

더 많아 IMF 라는 경제위기를 스스로 불러들였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경제인은 경제인대로,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도덕 수준의 미달로 경제위

기를 불러 온 것이 확인되었다. 모도(謨道)정신이 모자란 것이다. 이 겨

레에 모도정신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경제위기는 얼마든지 다시 온다.

 

맘에 (삼독) 비워 평안한 깨끗이 빈 맘         虛心燕處淨空心

 한번 죽은 마음이 빈 맘이다. 빈 마음에 하느님 나라, 니르바나 나라를

가득 채우면 더 모자람이 없다. 하느님의 나라는 참의 고디(貞)를 가

진 사람들의 나라다. 시간, 공간, 인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있는 나라

가 하늘나라이다"라고 하였다.

   제나가 죽어 삼독(三毒)이 사라진 마음이 평안한 연처이다.

허심은 『노자』(老子) 3장에 나오는 "그 마음을 비우라(虛其

心)"에서 따왔고, 연처는 「노자』 26장의 "평안한 곳에서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燕處超越)에서 따온 말이다. 연처란 산제비 집이

다. 산제비는 외부의 침입이 없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집을 짓는다.

그러니 평안하지 않을 수 없다. 빈 맘에 하느님의 얼이 임재(臨在)하

면 연처처럼 평안한 곳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침입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산제비의 연처를 사람들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 제비집을

들어서 요리를 해 먹는다. 이 땅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연처'도 연

처가 못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연처'는 하늘나라뿐인 것이다.

   장자는 이르기를 "오직 빈 맘에 하느님의 얼이 모여든다. 빈 맘이란

맘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唯道集墟 虛者心齊也-장자 재물론)라고

하였다. 류영모의 허심연처정공심(虛心燕處淨空心)과 같은 뜻이다. 사람

들이 하느님을 참나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제나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

이다.제나를 참나로 착각하고 있다.                                                                            

제나의 안전과 부강을 위해 힘있는 세력밑에 들어가듯이 하느님조차

제나의 안전과 부강을 위해 이용하려

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하느님을 바로 알지 못한다.                          

맘에 (삼독) 있어 때없이 욕심이 맘 더럽혀       有心無時欲點心

  어떤 사람이 예수 앞에 나와 자기의 형이 아버지 유산을 다 차지했

 으니 형님에게 말해 자기에게도 좀 나눠주도록 해 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예수는 어이가 없어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재산

분배자로 세웠단 말이냐.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유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

는 못한다"(루가 12:14-15)라고 말하였다. 예수는 무심(無心)으로 마

음이 깨끗한데 그 사람은 탐욕(貪慾)이 마음을 더럽혔다. 가리웃 유다

가 예수를 팔아 넘기고자 대제사장의 하수인들을 이끌고 예수를 찾아

왔다. 그때 예수는 그것을 알고도 "자, 이 사람아 어서 할 일이나 하

라"고 하자 베드로가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때 예

수가 말하기를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

하는 법이다"(마태오 26:52)라고 하였다. 예수의 마음은 무심(無心)으

로 마음이 깨끗한데 베드로는 진에로 마음을 더럽혔다. 바리사

여인들이 간음하다가 들킨 여인을 데리고 예수를 찾아왔다. 모세의

율법대로 하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야 하는데 선생은 어떻게 하겠

느냐고 물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하자 바리사이인

들은 슬슬 달아나고 간음한 여인만 남게 되었다. "나도 너의 죄를 묻

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요한 8:11)라고 하였다. 예수의 마음은 무심인데 그 여인은 치

 정으로 마음을 더럽혔다. 공자는 의롭지 않은 재물은 뜬

구름으로 여겨 탐욕을 이기고, 나를 죽여서라도 어짐을 이루려 하여

진에를 이기고, 여색을 좋아하기보다 속알(德)을 더 좋아하여 치정을

이긴 무심의 사람이었다.

이익을 꾀하다 뒤에 뉘우쳐 지는 이로움 꾀해      謨利後悔謨敗利

   공자가 이르기를 "참된 사람은 옮음에 밝고 덜된 사람은 이익에 밝

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논어 이인편)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이

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사물을 처리하는데 마땅히 참을 것은

참으면서 어질고 옳게 하여야 한다. 이는 우리가 상대적 존재로 여기

서 한동안 지내는 것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는 것이 어진

것이 된다. 마땅히 어질고 옮게 하는 이것만이 대동인이다.

먹을 것이 있고 남는데도 자꾸 더 모으겠다고 하는 한편 마음이 바로

서면 나눠주기도 한다.그러니 나쁘게 가려는 마음을 참고 참아 어질고

옳게 해 나가야 사람으로서 어지간히 아버지께 가까운 자리에 갈

수 있다. 옳게 위로 올라가야 한다."

   짐승으로 살다가도 하루라도 빨리 하느님 아들로 돌아서야 한다. 노

자도 "돌이키는이는  얼(참)이 움직인 것이다."(反者道之動 노

자 40장)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여기에 패리(敗利)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썼다. 승리

라는 말은 있어도 패리(敗利)라는 말을 쓴 사람은 없다. 류영모

의 패리(敗利)란 무슨 뜻인가. 예수의 말에서 패리를 알 수 있다. 예

수는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

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

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

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마태오 5:40-42)라고 하였다. 이것이 지

고서 이기는 패리의 정신이다. 예수가 일부러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

로 한 것도 바로 패리의 정신을 보인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利)를 남기려 하고 밑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음흉한 제사장이 되고 포악한 폭군

이 된다. 그러한 그들이야말로 밑지는 장사를 한 사람이다. 보기에는

분명히 실패로 밑진 예수나 간디는 그 진리의 무저항 정신으로 인류

역사에 큰 이(利)를 남겼다. 천배 만배의 이를 남겼다. 우리도 그 같

이 남길 것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다석어록)

 

하늘 씨알은 하느님이 씨알 먹이심 먼저 알아      天民先知天食民

   장자가 가로되 "하느님이 기르는 것은 하느님께서 말씀을 먹

임이다.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먹는다면 어찌 사람의 맘(욕

심)을 쓰겠는가"(天也者 天食也 旣受食於天 尤惡用人 -장자 덕충

부)라고 하였다. 예수는 얼나로는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몸나

로는 하느님이 주시는 일용할 먹거리로 산다고 말하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의 몸도 하느님이 먹여 주시고 길

러 주시기 때문에 있는 것뿐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삶을 살도록 하느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우리

도 밥 먹고 그저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인생뿐 아니라 일체가

하느님에게 바쳐지기 위한 제물(祭物)이다. 사람은 몸의 제물이 아니

다. 얼(靈)의 제물이다. 사람이 제물로 되는 것은 말씀이지 목숨이 아

니다."(다석어록)

   짐승은 종족을 보존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한 것이다. 사람도 몸나로

는 짐승이라 자식을 낳아 길러 대를 잇게 한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만

은 아니다. 사람은 몸나에 얼나로 솟나 하느님 아들이 되어야 한다.

몸은 멸망하나 얼은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