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거짓님에 굽히지 말자 不拜偶像(五)

 

  아침에 시킨 걸 저녁에 고치는 게                朝令暮改法治方

  법으로 다스리는 방편                       

  대낮에 도깨비 나오는 정치의 내막               晝出 魍魎政事情

  잔재주를 끊고 이로움 버려야 효성 자애 돌아오고 絶巧棄利復孝慈

  밑동을 안고 참을 품어야 하느님께 잘 뚫린다     抱朴含眞元亨利  

                                                      (1957.1.12)

朝令暮改(조령모개) :아침에 명령하고 저녁에 고침. 魍魎(망량):사람

  잘 속이는 도깨비. 魍:산도깨비 망. 魎:산도깨비 량 巧 :거짓 교

  棄 버릴 기. 復 :돌아을 복 抱 :안을 포 朴: 밑동 박 利 좋을 리

 

아침에 시킨 걸 저녁에 고치는 게 법으로 다스리는 방편   (朝令暮改法治方)         

공자(孔子)는 안회가 일찍 죽자 "아, 하느님이 나를 죽이는구

나. 하느님이 나를 죽이는구나"(天喪予天喪予 -논어 선친편)라고

하면서 탄식하였다. 공자가 맹자를 만났다면 "이런, 하느님이 나를 살

렸도다. 나를 살렸도다"라고 하면서 기뻐하였을 것이다. 맹자는 공자

에 대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있고서부터 이제까지 공자 같은 분이 없

었다"(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 맹자 공손추편)라고 하였다. 맹자

는 공자를 정신적인 아버지로 섬겼다. 진리의 사상은 1백 년의 시간

을 뛰어넘는다 .장자는 진리를 터득한 성자(聖者) 사이에는 1만

년의 세월도 아침저녁과 같다고 하였다. 맹자는 결코 자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이렇게 말하였다. "성인이 다시 나와도 반드시 내 말을 좇을

것이다."(聖人復起 必從吾言矣- 맹자 공손추편) 이 말은 헛되이 큰소

리치는 것이 아니다. 맹자는 공자가 체험한 얼생명을 자신도 체험하

였다. 그러니 뒤에 오는 성인도 맹자가 체험한 얼생명을 체험하게 된

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류영모도 말하기를 "예수 석가에게 나타났

던 영원한 생명이 나에게도 나타났으니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

한 생명이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없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참 사람들은 개체는 다르지만 병원한 생명인 얼나로 꿰뚫려

있다. 류영모는 이것을 한 얼줄이라고 말하였다. "한 얼의 줄이 있다.

성경의 경자도 줄 경(經)을 쓴다. 인도에도 '스트라'라는 말이 있는데

경(經)이란 뜻으로 줄을 말한다. 이 얼(靈)의 줄, 참(誠)의 줄. 영생의

줄 말씀의 줄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다석어록)   아마 공자가 말한

하나로 꿰뚫림(一以貫之)도 이것을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얼줄의

대원칙을 내버리고 사람들이 세운 원칙이 세상 나라의 법이다. 이른

바 법치주의라는 것이다. 원칙이라는 것은 한결같아야 하는데 사람의

이해(利害)에 따라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되고 말았다. 교육부장관이

바뀔 때마다 입시 제도가 바뀌었다. 따라서 수험생들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것은 인생 근본에 입각한 올바른 교육관을 세우지 못했

기 때문이다. 총선거가 다가오면 반드시 선거법을 고친다. 그러나 아

직도 부정선거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옛날보다는 선거가

바르게 치러질 수 있게 된 것은 선거법을 잘 고쳐서라기보다는 그만

큼 민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맹자는 나라 다스리는 유형을 세 가지로 말하였다. 성지(聖之), 신

지(身之), 가지(假之)가 그것이다. (맹자 진심 상편) 이것을 류영모는

설명하기를 "요순이 진리에서 순리로 다스리는 것을 성지

하는 도치(道治)라 한다. 탕무가 사회적인 인의(仁義)로

정성을 다해 몸소 실천해 다스리는 것을 신지(身之)의 덕치(德治)라

한다. 관 환(管桓)이 억지 수단을 써서 힘으로 다스리는 것을 가지

하는 법치라 한다.이들은 모두 어진 신하를 얻든지 그렇

지 않으면 자신이 바짝 정신을 차려 무슨 일이든지 빈틈없이 정치를

해왔다. 그런데 요새는 왜 그렇게 거짓말이 많고,꾸민 말이 많고, 선

전이 많은가"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도치, 덕치는 바랄 수 없지만 법치라도

바로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잘못은 사람에게 있는데 잘못이

법에 있는 양 법만 만들고 고치니 법이 너무 많아 법 전문가라도

다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입법만 하면 나라가 잘 되는

줄 아는 법 우상숭배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모른 채

육법전서를 성경처럼 받드는 법 우상숭배자는 되지 말아야 한다.

                                                                                      

대낮에 도깨비 나오는 정치의 내막          晝出魍魎政事情

   류영모가 이 글을 쓰던 1957년은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있던 자유당

정권 때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가 아니면 나라가 안 된다고 생각

하여 종신 대통령을 꾀하였다. 그것을 반대하는 야당과, 학생과 국민

을 억압하기 위해 온갖 일이 저질러졌다. 그야말로 대낮에 낮도깨비

가 횡행하던 암흑의 시기였다. 류영모의 제자 함석헌은 월간지 「사상

계」를 통해 자유당 정권에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용기로 비판하기 시

작했다. 스승 류영모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왔다. "대통령을 죽는

날까지 하겠다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것으로 시원해 질 수는 없다.

하느님과 얼이 통해야 시원하다. 내가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것을

보면 내 생각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나오기는 나에게서 나

오는데 오기는 하늘에서 온다. 나오는 것은 생각이고 오는 것은 생명

이다."

  40년이 지난 오늘에는 많이 나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야

의 대변인 성명을 들으면 낮도깨비에 홀린 듯 얼떨떨하다. 한 가지 사

실을 두고 정반대 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상대세계이기는 하지만 너무 지나쳐 철면피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치

란 언제까지나 도깨비놀음으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크라우제

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다"라고 했으니 기막힐 노

릇이다. 아, 못난 삼독의 짐승들이여 삼독의 수성에서

놓여날 날이 그 언제인가? 그 날이 어서 오기를 빌고 또 빌어 보자.

  류영모는 정치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정치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몇천 년을 두고 바로

잡겠다는 것이 오늘날까지 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실제로 바로잡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바로잡겠다고 한 것은 모두 헛

소리였다. 정치의 이상은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

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

라' (마태오 5:47 ~48)가 아니 겠는가. " (다석어록)

 

잔재주를 끊고 이로움 버려야 효성 자애 돌아오고 絶巧棄復孝慈

   이 말은 노자에서 끌어다가 쓴 것이다. 노자의 "절인기의

민복효자 절교기리 도적무유"(絶仁棄義 民復孝慈 絶巧棄利 盜賊無

有- 노자 19장)에서 '절인기의(絶仁棄義)'를 '절교기리'(絶巧棄利)

로 바꾸어 썼다. 노나라의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에게 정치

를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다스림이란 것은 바름이다"(政者正

也- 「논어」 안연편)라고 하였다. 잔재주를 끊고 이로움 좇기를 버리·

는것이 바로 바름이다.바름이란 사람이 지닌 짐승의 성질을 버리는

것이다. 예수 석가처럼 탐진치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

  님이 주시는 얼나를 깨닫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류영모는 이르기를 "하느님의 성령이란 우리를 바르게 살게 하는

 힘이다. 하느님의 성령인 얼나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 지도자 중에는 몇 사람이나 얼나로 거

듭났는지 모르겠다. 얼나로 거듭난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얼나로 거

 듭나서 하느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몸의 욕망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욕심만 가졌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직도

이렇다"라고 하였다.

   공자와 맹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바르면 백성들도 바르게 살

 게 된다고 하였다. 공자는 말하기를 "참으로 그 몸을 바르게 한다면

다스림에 있어서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 몸을 바르게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사람들을 어떻게 바르게 하겠는가"(荀正其身矣 於從政乎何有

 不能正其身 如正人何-논어 자로편)라고 하였다. 또 맹자는 "큰 사

람(지도자)이 있으니 제 몸을 바르게 하고서 사람들을 바르게 하는 사

람이다"(有大人者 正已而物正者也-맹자 진심 상편)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비자나 마키아벨리는 잔재주를 부리고 실리를 챙

겨 정권을 강화하라고 한다. 사자 같은 폭력과 여우 같은 교활함으로

권모술수를 부리라는 것이다. 한비자를 좋아한 진시황이 어찌 되었으

며, 마키아벨리를 좋아한 히틀러가 어찌 되었는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

하다가 모두가 비참하게 끝났다. 지도자들이 바르면 백성들도 감화되

어 자녀들은 효성스럽게 되고 어버이들은 자애롭게 된다. 맹자 가로되

"저 참 사람이 지나가는 곳이면 감화가 되고, 머무는 곳이면 신통하여

위아래가 하늘땅과 더불어 함께 어울린다"(맹자 진심 상편)고 하였다.

 

밑동을 안고 참을 품어야 하느님께 잘 뚫린다 抱朴含眞元亨利

   예수가 말하기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

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 14.10~11))라고 하였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포박(抱朴)이다. 내가 하느님 아버지를 안으면 아버지는 크

신지라 내가 하느님 아버지 속에 안긴다.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는 것

이 함진(含眞)이다. 참을 품는 것이다. 포박함진이 바로 마하트마 간

디가 말한 사탸그라하, 곧 진리파지이다. 하느

님께 안기고 하느님을 품어 진리파지한 이는 외로움을 모른다. 예수

처럼 외롭게 살다간 이가 없지만 예수는 전혀 외로움을 몰랐다. 예수

는 진리파지한 사람이라 외로울 까닭이 없다. 하느님을 품어야 하고 하

느님께 안겨야 할것을 백개의 조직에 들고 천사람의 여인을 안아도

만족할 수 없다.

   원형리(元亨利)는 하느님과 얼로 잘 통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류영

모는 얼로 숨쉰다고 하였다. 사람은 얼숨을 쉬지 못하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인 乾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통해서 쉬지 않고 원기를 받아 마시는 것이다. 줄곧 원기를 받

아 원기왕성한 정신이 건전한 정신이다. 하느님의 원기를 받아서 사

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포박은 『노자』 19장에 나오는 견소포박(見素抱朴)에서 따온

것이다. 빔(空)을 보고 하느님(얼)을 품는다는 뜻이다. 박(朴.樸)은 밑

둥으로 하느님을 뜻한다. 『노자』28장에 복귀어무극(復歸於無極). 복

귀어박(歸歸於樸)이 나온다. 다시 하느님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박(朴,·

樸)과 무극(無極)은 모두 하느님 (天道)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

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주역 건괘에 나온다. 소학(小學)에 붙

인 주희의 제사(題辭)에 원형이정천도지상(元亨利貞 天道之常)이 있

어 더욱 세상에 알려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