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람의 몸은 언짢다 民身不仁

 

   (잘난 이의) 콧대가 우뚝 솟아 창문인 눈을 덮어        鼻突擊眼窓

   (참 사람의)맑은 눈동자엔 몰래 눈물이 고여            明眸釀暗  

   (하느님이) 바라고 기다리긴 진 ·선 · 미인데         企待眞善美

   (사람들은) 찌꺼기 탐 진 치만 만들어내                副産貪瞋痴

                                                        (1957.1.6)

 

   民 ' 사람 민    突 : 우뚝할 돌 擊 눈에 마주칠 격. 釀 술빛을 양

     : 눈물 이. 副 버금 부. 暗 몰래 암.

 

  사람의 몸이 언짢다(民身不仁)는 말은 사람의 몸은 탐 진 치(貪

瞋痴)의 수성(獸性)을 지닌 짐승이란 뜻이다.짐승이 짐승의 성질인

탐 진 치로 사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짐승의

성질인 탐 진 치로만 살면 언짢게 생각된다. 그것은 나라고 하지만

홑 나가 아닌 것임을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는 짐승인

제나(自我)와 하느님 아들인 얼나(靈我)가 함께 있다.그 얼나는 제나

의 수성(獸性)을 언짢게(不仁) 본다. 그러므로 어진 이(仁者)는 탐

진 치의 짐승 성질을 온전히 버린다 .짐승 성질을 버린 이는 비록 짐

승인 몸을 갖긴 했으나 이미 짐승이 아니다. 짐승 성질이 온전히 죽은

이는 하느님 아들이다. 부처니 성자(聖者)니 하는 것도 하느님 아들이

란 뜻이다. 하느님 아들인 얼나는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

을 보낸 것이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하느님이 보내시는

성령을 받아 얼나로 하느님 아들이 되라고 말하였다. 그래야 얼나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예수가 한 말 가운데 "하느님이 보

 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요한 6:29)에서

'보내신 이'란 하느님의 성령인 얼나를 두고 한 말이다. 2천 년 전에

온 예수의 몸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의 다음 말로도 알

수 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여 너희에게 보낸 협조자(보혜사) 곧 아

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  이 진리의 성령이 곧 우리의 영원한 생명인 얼나

(하느님 아들)다.오늘에 이사람이 예수가 하느님 아들이라는 실상을

증거하는 것도 예수가 말한 진리의 성령(보혜사)에 의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류영모는 말하였다. 불경이니 성경이니 하는 것은 맘을 죽이는 거

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니 제나(自我)가 한 번 죽어야 맘이 텅 빈

다. 한 번 죽은 맘이 빈탕(太空)의 맘이다. 빈 맘에 하느님 나라 니

르바나 나라(얼나)를 가득 채우면 더 부족이 없다. 사람은 분명 짐승

인데 짐승의 생각을 하지 않음이 얼 사람으로 솟나는 우리의 길이다.

하느님이 보내시는 성령이 우리의 얼나다."(다석어록)   그런데 이 세

상에 머리를 하늘로 두고 바로 서서 걷는 사람이 60억에 이르지만 얼

나를 깨달아 탐 ·진 ·치의 수성(獸性)을 온전히 버리고 사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것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석가는 짐승으로 사는 사

람은 저 땅의 흙처럼 많은데 하느님 아들(法身)로 사는 사람은 손톱

위에 얹혀지는 흙처럼 적다고 하였다. 그 비례가 오늘에도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 세상에는 탐 진 치의 수성(獸性)을 맘껏 부리면서 사는 사람

들이 오히려 더 으스대면서 살고 있다. 예수는 말하기를 "너희는 사람

들 앞에서 옳은 체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보를 다 아

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것이 하느님께는 가증스럽게 보이

는 것이다"(루가 I6:15)라고 하였다

 

(잘난이의) 콧대가 우뚝 솟아 창문인 눈을 덮어    鼻突擊眼窓

   탐 진 치의 수성(獸性)이 절정에 이른 세상의 임금들은 한마디로

콧대가 높은 사람들이다. 천하무상(天下無上)이요 안하무인(眼下無

人)이다. 제 위에 하느님도 없고 눈 아래 사람도 없다. 클레오파트라

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

말은 영웅들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바

꿔야 할 것이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높아진다지만

사람은 삼독(三毒)을 저지를 때마다 코가 높아진다. 그러므로 콧대 높

은 사람일수록 삼독의 카르마(業)를 많이 저지른 이다. 코가 높아져서

마음의 창문인 눈을 가려버린다. 그래서 눈에 뵈는 것 없이 행동한다.

나중에는 미쳐서 스스로 하느님인 척하기까지에 이르기도 했다. 멀리

로마 황제와 가까이 일본 천황이 신(神) 노릇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에레미야는 이 세상에서 삼독을 저지르는 이들이 오히려 더

형통한 것을 하느님께 따졌다.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

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입니까?"(에레미야

12:1) 또 이사야는 직접 그들을 나무랐다. "(너희는 어찌하여)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이사야 3:15) 삼독의 화

신이 된 지배자들은 사람들이 힘써 얻은 재물을 부당한 세금과 강요

된 뇌물로 빼앗아갔다. 사람들이 고이 기른 아들은 데려가 병사를 만

 들어 싸움터로 보내어 죽거나 병신이 되었고, 딸들은 끌어가 시녀로

부리거나 음란의 노리개로 삼았다.

 

(참 사람의)맑은 눈동자엔 몰래 눈물이 고여   明眸釀暗  

  맹자(孟子)는 "사람을 살피는데 눈동자보다 나은 것이 없다"(存乎人

者 莫良於眸子·맹자 이루 상편)고 하였고 예수는 "눈은 몸의 등불

이다"(마태오 6:22)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눈은 몸의 창문이라고 하였

다.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 탐욕을 뿜어내는 눈빛, 분노가 타오르는

눈빛, 음욕이 이글거리는 눈빛이 다 드러난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느

님의 성령(얼)이 머물면 눈동자가 밝게 빛난다. 예수의 눈이, 석가의

눈이 그러한 눈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멸망의 넓은 길로 희

희낙락하며 나아가는 것을 보고 몰래 눈물을 흘렸다. 예수께서 예루

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

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루가 19:41-42)

 

(하느님이) 바라고 기다리긴 진 ·선 · 미인데 企待眞善美

   류영모는 진선미에 대하여 말하기를 "미(美)는 선(善)이 있어야 미

(美)다. 선(善)은 진(眞)이 있어야 선(善)이다. 이 세상에서의 미는 만

지면 없어진다. 선은 자랑하면 없어진다. 이 세상엔 진선미가 없다.

진선미란 영원해야 하는데 있다가도 없고 또 없다가도 있는 것은 참

진선미가 아니다. 절대에서는 이 세상에서처럼 진 ·선 ·미가 따로따

로 있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진이면서 선이면서 미다"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하느님만이 오직 참된 진 ·선 미라고 하였다. 예수도 같

은 생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어떤 사람이 예수께 와서 "선하신 선

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라고 묻자 예수

가 대답하기를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

이시다"(마르코 10:17-18)라고 하였다. 여기의 선(善)은 진 선 미를

내포한 것이다. 참 진선미는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

는 하느님만이 진 ·선 ·미하신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느님이 진 ·

선 ·미 하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성령(얼나)도 또한

진선미 하다.그러므로 마하트마 간디는 이르기를 성령(얼나)의 아름다움을

본다면 밖의 아름다움은 하찮은 것으로 무색해진다"

(If you see inner beauty,the outer will pale into insignificance.

-M.K간디날마다의 명상』)라고 하였다.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선미를 바라

고 기다린다는 말은 곧 우리가 진 ·선 ·미한 하느님의 성령을 받아

얼나로 거듭나라는 말이다. 짐승들의 사명은 종족을 이어가는 것이고

사람의 사명은 진리(얼나)를 깨달아 가는 것이라 엄연히 다르다. 그런

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사람들은) 찌꺼기 탐 진 치만 만들어내     副産貪瞋痴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진 선 미의 얼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부산물인 수성(獸性)의 탐 ·진 ·치만 저지르고

있다. 류영모는 말하였다 "사람이 귀한 것은 얼생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이 얼이 영원한 생명인 참나다. 우리가 꼭 해야 할 것은 하느

님이 주신 성령인 얼로써 몸의 욕망인 탐 ·진 ·치의 수성(獸性)을 덮

어 버리는 것이다."(『다석어록』) 이 사회에는 탐 ·진 치의 유황불이

엄청난 세력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나라의 원수(元首)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나 서울 시청 주사 자리에 있던 사람이나 몇백억 원을 챙기고

는 감옥에 드나들고 있다. 이것이 탐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국

회의사당의 폭력에서 학교의 폭력에 이르기까지 폭력의 힘이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것이 진에(瞋)의 일면을 보여준다. 가정 주부의

매춘에서 여중생의 음행에 이르기까지 음란의 비린내가 진동한다. 이

것은 치정(痴情)의 일면을 보여준다. 문명의 이기를 쓴다고 문화인이

아니다. 탐 ·진 ·치에 허덕이면 야만스런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