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자 모두 나아가 돌아갈 줄을 알자 夫亦將知復

 

겉꾸밈의 사귐은 이미 싫증나고 징글맞아               皮肉相從厭旣

얼 생각은 오래 막히고 갈라져 떠나                    心魂積阻支

깊고 깊은 크고 크신 하느님 알뜰살뜰 사랑             肫肫淵淵浩浩天

몬과 빔은 절대의 두 모습으로 같아                    色色空空如如理

                                                                 (1957.6.23)

 

復 돌아갈 복. 亦 : 모두 역. 將: 나아갈 장. 皮肉(피육) :살과 껍

질, 피상. 相從(상종) :서로 의좋게 보냄.  :먹기 싫어할 어. 支

:흘어질 지. 心魂 :마음과 정신. 積阻(적조)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서 소식이 막힘. 肫肫(순순):정성스러운 모양 :정성

스러울 순 淵: 깊을연 浩:넓고클호. 理: 바를리

 

겉꾸밈의 사귐은 이미 싫증나고 징글맞아 皮肉相從厭旣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나서 인간(人間)이라고 한다. 그러니 사람

은 만남에서 이루어진다. 만나면 아는 체를 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

다 하여 사람의 일이라는 뜻으로 인사(人事)라고 한다. 그런데 이 인사

가 참으로 문제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를 만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무슨 인사 말씀이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시비가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말이 많으면 또한 시비가 생긴다. 이 사람은 원

래 인사하기를 쑥스럽게 생각한다. 나의 성미로 말할 것 같으면 다른

것은 다 원만히 하는 편이나 이 인사 하나를 도무지 못한다. 요즘은 손

잡는 인사가 버릇이 되었는데 이게 걱정이다. 제 주먹을 제가 쥐어야

한다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거나 제 주먹을 쥐고 인사를 해야 한다.

남의 손을 잡아 흔들면 제법 가까운 것 같고 친절한 것 같으나 이게

거짓이다. 불교식의 합장 경례나 유교식의 큰절도 마음이 없으면 능청

스러운 거짓이 된다. 제 주먹을 꼭 쥐는 사람들이 모여야 일이 된다."

사람의 만남은 소중한 것이다. 한 시대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의 기연(奇緣)이 따

로 있는 것 아니다. 우리의 일상 만남이 모두가 맹귀우목의 인연인 것

이다. 그 소중한 만남을 싸움이나 하고 속이기나 하고 미워하기나 하

면서 끝낼 수는 없다. 끝내야 할 것은 겉치레 인사만 하는 피상교(皮

相交)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이 사귀는데 얼마만큼 깊이

사귀는 것이냐 하면 대개 겉으로만 서로 관계가 있는 피상교(皮相交)

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가만히 생각하면 참으로 서러운 일의 하나

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속 맘이다. 그러나 내가 남의 속에 들어가

서 보지 못하면 피상교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가까이 지내는 부부지

간 부자지간도 피상교다. 서로가 좋으면 서로 보는 얼굴 모습이 좋다

고 대단히 칭찬한다. 피상을 보고 아름다움이 있느니 없느니 말하거

나 아니면 옷 입는 것을 보고 사람의 무게를 달려고 한다. 이것이 다

피상교다." (다석어록)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몸은 참나가 아니다. 참나를 실은 수

레라고나 할까. 참나가 입은 옷이라고나 할까. 참나인 얼나가 맘속에

있다. 몸나는 거짓 나이므로 얼나를  참나라고 한다. 몸나가 겉나라 얼

나를 속나(속알)라고 한다. 얼의 나는 보이지 않지만 얼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얼나는 예수의 얼나, 하느님의 얼나와 한 생명

이다. 눈은 눈 자체를 보지 못하지만 다른 것을 보므로 눈이 있는 것

을 알 수 있듯이 얼나는 얼을 볼 수 없지만 거룩한 생각이 솟아나오

니까 얼나가 있는줄 안다.참된 생각을 하는 것이 얼나가 있다는 증거다.

얼나가 없다는 것은 자기 무시요 자기 모독이다. 얼나가 있으므

로 하느님이 계시는 것이다. 서로의 속알(얼나)을 내놓는 것같이 좋은

일이 없다.동지(同志) 지기(知己)라는 게 서로 속알을 내놓는 것이

다. 우리는 남의 속알인 얼은 못 보고 그저 가긴가."(다석어록)

  

  " 얼 생각은 오래 막히고 갈라져 떠나 "  心魂積阻支且離

   이 세상은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치정(痴情)으로 이른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한경쟁 시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

에 입각한 대동정신(大同精神)이란 지리멸렬(支離滅裂)이 되었다. 류

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동(大同)이라는 말 또는 대동주의(大同主

義), 대동정의(大同正義)라는 말을 쓴다. 대동이라는 말은 하나(一)라

는 뜻이다. '당연히 하나다'라는 말로서 하나는 옳고 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편이라 옳으니 위해 주고 자기편이 아니면 그르니 미워해

없애야겠다고 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자

기 주장만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니까 멸망시켜야 한다는 소견을 가지고

는 대동을 찾을 수 없다. 대동이란 온통 하나가 되는 지혜다. 누구나

예외라는 것 없이 하나가 되자는 것이다. 어떻게 대동이 될 수 있느냐

고 할지 모르겠으나 마침내는 하늘로 되고 하나가 된다. 모두가 하나인

하늘로 들어가야 한다 .너 나가 있는 상대세계에는 잠깐 지내다가 마침

내 이것을 벗어버리고 절대자(하느님) 앞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마침내

는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믿는다. 하느님이 정의이므로 최후의 승리를

한다는 것은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다석어록)

우리의 정신이 나이로 막히고, 지역으로 막히고, 종족으로 막히고,

이념으로 막히고, 경제로 막히고, 종교로 막혀서는 다 함께 멸망하게

된다. 이 막힘을 뚫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얼뿐이다. 나도 하느님

의 얼을 참나로 받아들이고 너도 하느님의 얼을 참나로 받아들이면

개체의 살(육신) 담벽과 관념의 맘(의식) 담벽이 저절로 허물어지고 하

나임을 느낄 수 있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 얼(성령)과

얼러야 어른이다. 정신과 정신이 단단히 얼려야 정말 어른이다. 성령

이 충만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얼을 빠뜨리라고 얼생명

을 넣어 준 게 아니다."(다석어록)

   류영모는 사람과 사람이 피육(皮肉)을 뚫고 만날 수 있는 얼나(靈

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이 몸으로는 만나나 맘으로는

만나지 못하는 고독한 인생이다. 그러나 선생도 깊이 생각하고 학생

도 깊이 생각해서 서로 아무 말도 없지만 서로 마음속에 깊이 통한

곳에서 얼(靈)이라는 한점의 나에서 만난다.이 가온찍기의 참된 점만이

영원한 생명이다. 또 우(友)라는 것은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그림 글자다. 지금은 모두가 친구인양 악수를 함부로 하고 있다. 친구

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은 나의 형제가 될 수 있다. 우애(友愛)처럼 믿음성 있는 것은 없

다. 우애의 지경을 가야 하느님을 믿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예수는

제자들을 친구라 하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사랑

은 없다(요한 15:13)고 하였다. 믿음으로 우애할 수 있는 벗을 이 세상

에서 만나기 어렵다. 우애는 살과 털이 만나는 피상교가 아니라 얼나

에서 나오는 정신과 말씀으로 하나 되는 것을 말한다. 끝으로 부부 사

이에 서로가 껍데기 몸만 맡기고 서로가 좋다고들 하지만 사람의 속

알이 문제다. 도무지 껍데기 몸만 맡기면 낭패다 .부부가 함께 하여

20년, 30년, 40년 지내도 자꾸 얼 생각이 새로 나와서 서로서로 보이

면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삶이 될 것이다. 깊은 얼 생각을 샘물처럼 주

고받는 부부생활은 한없고 끝없는 그 무엇을 서로가 나눌 수 있을 것

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인 얼나에서 한 생명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가지면 늘 새로운 아내 늘 새로운 남편을 볼 수 있

을 것이다." (『다석어록』)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과 바로 사귀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과 얼생명

으로 이어져야 한다. 얼생명으로 하느님과 이어지면 하느님 아들로 돌

아온다. 자 모두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줄을 알자(夫亦將知復 ).

예수와 석가가 똑같이 말한 탕자의 비유는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 것이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탕자인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맨 처음 나온 데로 복원(復元)하는 것이다.

마침내는 집을 버리고 몸조차 버리고 나가야 한다. 지나가는 한 순간밖

에 안 되는 이 세상을 버리고 간다면 섭섭하다고 하는데 그러한 바보들

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이 세상을 평생 지나가는데 마침내 참나를 찾

아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끝맺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살면서

사랑의 본원(本元)에 들면 결코 해로운 것이 될 수 없다." (다석어록)

 

깊고 깊은 크고 크신 하느님 알뜰살뜰 사랑    肫肫淵淵浩浩天

   "알뜰살뜰 그 사랑, 깊고 깊은 그 깊음, 넓고 넓은 하느님이시여"(

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는『중용』32장에 나오는 글이다. 알뜰

살뜰 그 사랑(其仁)을 줄인 것이 순순(肫肫)이다. 류영모는 이 우주가

생겨나고 만물이 생겨난 것도 모두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땅의 어버이도 미워하는 마음으로 자식을 낳는 사람은

없다. 마음에 없는 혼인으로 낳은 자식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런데 하물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야 오

죽하겠는가.

   예수는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

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

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마태오

7:9-11)라고 말하였다. 류영모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를

"어제는 공자(孔子)가 온 세상을 구원할 사랑을 인(仁)이라 하였는데,

오늘 나는 온 우주의 임자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仁)이라고 해 본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다만 화산(火山)이

터져서 용암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어머니가 되면 젖이 나오고 사랑이

터져 나오는 것이지 젖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터져 나온 것이 하늘과 땅 곧 우주다. 말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 밑에 깔려서 이 우주가 생겨났다"고 하였다.

   하느님은 깊고 깊어 알 수 없기에 신비하고, 넓고 넓어 알 수 없기

에 영원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나로는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

으로서 사람 노릇을 하려는 사람은 마땅히 하느님을 알아야 한다. 온

전한 사람이라면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전체인 하느님 아버

지를 알아야 부분인 사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다석어록)

 

 몬과 빔은 절대의 두 모습으로 같아  色色空空如如理

   이 세상에서는 물질(몬)은 물질(色)이요 허공(빔)은 허공(空)이다.

전혀 다르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리에서는 물질과 허공은 다같이 하

느님의 구성요소라 다르지 않다. 물론 허공이 본(本)이요 물질이 말

(末)이다. 허공에 별똥별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듯이 물질이 나

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물질은 참으로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

서 허공이 본체고 물질은 변태다. 모든 물체는 있다고 하면 우상(偶

像)이 되지만 허공은 우상이 되지 않는다. 허공은 본디 없이 있기 때

문이다.그러므로 물질은 업신여겨 무시(無視)해야 바로 보는 정견(正

見)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