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필 선생을 회고하며

조회 수 3782 추천 수 0 2004.05.05 08:03:29
김병규 *.242.233.161

예수처럼 살다가신 스승 이현필 선생을 회고하며...  

동광원  김금남 *언님(76세)의 증언

* 언님 :  동광원에서 가톨릭 수녀처럼 사는 여성 수도자를 일컫는 말로  다석 유영모 선생이 붙여준 이름이며 "어진님"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 최근에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현필 선생은 "한국의 성프란체스코"로 불리며, 한국 개신교가 낳은 참으로 보기 드문 수도자였다. 이 글은 그의 제자로 아직 생존해 있
는 동광원의 김금남 원장에게 들은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채록하여 정리한 것이다. <1998년 12월 28일>




평신도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이 광주에도 있다는 이야기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어서 별 생각없이 지내왔다. 그러다가 최근 민중교회 목사님들이 동광원에서
영성훈련 프로그램을 하고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부쩍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 집에 다녀오는 길에 한 친구와 함께 그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 곳은 동광원이라고 하지 않고 귀일원(歸一園)으로 불리고 있었다. 소개 글을 읽어보니 이곳은 오갈데 없는 정신질환자들이 자기 집으로 알고 봉사자들과 함께 사는 기
독교 평신도 공동체로써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룻밤씩 재워 보내자"는 아름다운 뜻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동강원에 소속된 가족의 장례차 이곳에 들른 동강원 원장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분은 동네 이웃집 할머니 같은 수수한 모습에 이현필 선생을 가까이서 모시던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다음은 원장님으로 부터 우리가 들은 이현필 선생과 동광원이 설립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간략한 회고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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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분을 만나게 된 것은 대동아 전쟁이 터졌을 때였습니다. 나는 그 때 17-8살되던 처녀였는데 기독교 장로회에 소속된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어요. 워낙 신앙이 좋았
었던 때인지라 목사님의 설교에 만족이 되지 않았어요. 믿으면 믿을수록 신앙의 더 깊은 세계가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깨닫고 싶었지요. 이러한 갈급한 신앙을 가지고서
이현필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현제 52년째 동광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기가 찬 처녀였던 당시에 집안에서나 주위에서는 시집가라고 늘 보챘지만 저는 확실한 인생
관을 먼저 터득한 다음 결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틈만나면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집만 나서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면서 주님을 찾았어요. 당시는 제가 직장생활을 하던 때인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속고속이
는 세상이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는"세상이 왜 이리 고통스러운가?"하는 문제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 제목은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길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주의 길을 보여주십시오" 이런 거였지요. 한번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밤새 기도하는데 새벽에 저의 이름을 부르는 귀가 울리듯이 우
렁찬 음성을 들었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그냥 밖에 뛰쳐 나와버렸지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그게 하나님이 어린 사무엘을 부르듯이 저를 부르는 음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시 그 음성을 듣기까지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3시나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어요. 그게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저는 믿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네요. 그 말씀은 로마서 12장 1절 말씀
곧 "네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를 따르는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의 제물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
게 되었지요.


그런데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친구를 만나지 못했어요. 당시에 제가 남원에 살았는데 한번에는 어머니가 "광주에서 오신 분이 있는데 선지자더라"고 소개하면서 한번 만나
보라고 권하셨어요. 그 분은 젊은 사람들은 잘 만나지 않으시고 노인들을 주로 만난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가 전해주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치 엘리사벳이 마
리아가 방문했을 때 복중에 아기가 뛰어논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 선생님을 내가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용솟음쳤어요.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그 분을 만나니 마치
영혼이 서로 통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 분에게 귀한 말씀을 듣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교회나가면 핍박이 오고 또 집에서도 결혼을 안하고 평생 혼자 살겠
다고 하니 난리였지요. 저와 같이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발붙일 곳이 없었어요.


본래부터 선생님이 어떤 동광원 같은 공동체를 하려고 하셨던게 아니라, 우리가 발붙일 곳이 없이 선생님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선생님은 다
른 분들이 볼 때는 나환자처럼 보였습니다. 옷이나 음식이라도 생기면 모두 나환자들에게 갖다줘버리고 당신은 마치 병든 사람처럼 낡은 옷을 입고 그렇게 사셨어요. 그런
데 이 어른 옆에 있으면 육체가 배고픈줄을 몰라요. 하시는 말씀마다 설교였고 예수님의 말씀 같았어요.


선생님은 육식도 안하셨는데 우리들에게 금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제자들도 따라서 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고통이 오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받으셨어요. 당
신이 폣병이 걸렸을 때조차 폣벼을 사랑하실 정도였지요. 폣병으로 오히려 하나님께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는 거였어요. 이렇게 모든 걸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기고 거부
하지 않으셨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의 그런 생활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제가 선생님과 비슷한 체험을 하고나서는 선생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등산 산속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수종들고 있을 때 한번에는 불을 지피다가 눈이 아파오더니 퉁퉁부어 오르면서 어두어져 안보이게 된 적이 있어요. 갑작스럽게 그런 일을 당하고나서 인간의 생각으로는
눈이 회복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는데 저도 선생님처럼 감사하게 그 병을 받고 약을 쓰지 않았어요.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너무 아파서 밖에 뛰쳐나가 눈위에 앉아있기도
하였어요.


한번은 깊은 회개를 하게되었어요. 지금까지의 나의 잘못들이 속속들이 생각이 나서 철저한 회개를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회개한 다음, 요한복음 8장 소경이 눈뜬 사건이
떠오르면서 "나 속죄함을 얻은후"라는 찬송이 내 입에서 터져나왔어요. 그러면서 기적처럼 통증이 멎었고 그때부터 꼬박 하루를 잤어요. 그뒤에 눈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
지요.


선생님은 당시에 폐병 3기였고 후두결핵이 걸려서 말씀도 잘 못하였어요.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제자들이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라 먼데서 어렵게 얼음을 구해다가 왕겨로
싸서 선생님 있는 곳까지 가져다가 물을 떠넣어드리기도 했어요. 선생님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 철저히 예법을 지키셨어요. 밤시간에는 여자는 개인적으로 절대로 가까이
안하셨어요. 평소에 이야기 할 때도 둘 이상 만나셨지요. 우리들이 젊었을 당시였으니까 더욱 조심하셨던 것같아요. 당신이 곧 숨이 꺼지려고 할때에도 시험에든 제자를 더
걱정하셨어요. 그래서 필기를 하셔서 그 젊은 제자의 이름을 적고 제자들의 영혼이 평한한지 어쩐지 오히려 그것을 더욱 염려하셨지요.


그리고 이런 말씀도 들려주셨어요. "어젯밤 예수님이 만찬에 초대하셨고 큰 은혜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는 주위의 사람들을 부르시더니 "빛! 빛! 보이지? 이 복음을
누가 전할까?"라고 말씀하시며 한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 고열과 후두염과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지만, 나중에 선생님은 "예수
님이 아파주셨지 내가 아팠던게 아니다"고 말씀하셨어요.


평소에 선생님은 성경공부를 지도해 주시고 산기도를 자주 하셨어요. 제자들은 새벽이되면 어김없이 냉수마찰을 하는 생활을 하였어요. 간혹 우리는 선생님이 밤새껏 산속
에서 기도하시고나서 동쪽 햇살이 비추면 머리에는 서리가 가득하고 수염에는 고드름까지 생겨서 산을 내려오시는 모습도 보았어요. 영을 위해서만 사신분이었어요. 고행
주의가 아니라 은혜로 그분은 황홀경을 사셨어요. 처음에는 고행주의, 금욕주의, 산중파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지요.


그때 선생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한 70여명 가량됩니다. 8.15 해방이 되면서 우리는 고아원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당시
에 시국이 워낙 어려운 때라 전쟁 고아들이 많아서 시작하게 되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선생님의 유업을 받드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불구자나 정신질환자들까지 돌보게 되었
어요. 지금 동광원은 함평, 화순, 서울, 남원, 광주등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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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광원 주소 / 사람들>

서 울: 고양군 벽제면 T. 031) 62-9314

남원: 남원군 대산면 운교리 483번지 T. 063) 626-7217,  625-9754(김금남 원장)


*찾아가려면 남원에서 시내버스 121번 대산 왈기리에서 내려서 동광원 2시간마다.

대산 운교리 가는 것을 타도 가능 걸어서 20분 121번, 122번.


오북환 장로(95세) : 이현필 선생 제자, 성경 연구가, 남원 분원에 거주.

김 준 선생 : 전북 장수군 번안면 지지리 무등산 자락에 사심, 새마을 연수원장 27년 역임

김순임 언님 : 광주 귀일원 간호 조무사

김준호 선생 : 00대학 총장 역임, 새마을 운동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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