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6 09:27

닭을 키우며

조회 수 36134 추천 수 0 댓글 3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내가 닭을 키우게 된 내력은 이렇다.

삼 년 전에 목수들의 도움을 얻어 집을 지었다,집 한 채 지으면 십 년 늙는다는 애기가 있을 정도니 이런저런 사연이 어찌 없겠습니까만 다 그만 두고,닭과 관련된 시작은 화장실에서 비롯되었다,나와 같이 사는 철없는 웬수들(이 표현의 원조는 예수다.집안 식구가 네 원수다.)이 유일하게 내건 조건이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라는 것이었다,그래서 수세식 화장실을 만들었고 거의 일 년여를 불편하게(?)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했다.이듬해 창고를 짓게 되었고 한 구석에 화장실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다가 예전에 변산공동체에서 같이 살던 사람이 사는 합천에서 제주 똥돼지같이 키우는 똥닭을 보게 되었고 닭을 키우리라 결정하였다.지난해 텃밭 귀퉁이에 우선 하우스 파이프를 설치하고 이런저런 이유(아랫집과 닭장이 너무 가까워 시끄럽고 냄새도 날 수 있고 금방 닭을 구하지도 못하겠고```)로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드디어 올해 봄에 닭장을 마무리 짓고 닭을 키우게 되었다.새벽의 닭울음은 다행히 아랫집 노인분들이 새벽기도회에 나가시기 때문에 괜찮을 성싶고 냄새는 안 나게 하면 되었다.닭은 이른 봄에 고향집 형이 농업기술센터에서 분양 받은 맛닭을 스물다섯 마리 얻어왔다.추위에 네 마리 죽고 스물 한 마리가 크게 되었다.나중에 닭이 어느 정도 크게 된 다음에야 충격적이게도(?) 수탉이 무려 열두 마리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동생에 대한 사랑이 굵은 놈들을 고르게했고 결국 성적불균형(적당한 암수 비율은 12:1 정도다)을 초래했다.불필요한 수탉들은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하나둘 명을 다하고 있다.

닭을 키우게 되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닭의 먹을거리다.공장형 사료를 먹이지 않고 닭을 키우기 위해서는 싸래기의 확보가 필수인데 실제로 싸래기를 구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나 같은 경우에는 고향집 옆에 오래된 정미소가 있고 형과 사이가 좋은 이웃사촌이 아주 넉넉하게 싸래기를 대주고 있어 쉽게 돌려받을 수 있었다.싸래기를 구하지 못 한다면 밀이나 보리같이 비싼 곡물을 사서 주지 않는 이상 끔찍한 사료를 주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싸래기 외의 보조사료로 쓰기 위하여 깻묵과 우리밀,굴껍질,고추씨를 사서 쟁여 두었다.그런데 가장 큰 골칫거리는 풀을 먹이는 문제다.닭은 잡식성이지만 풀을 많이 먹는다.곡물이야 모이통에서 적당히 먹지만 풀은 먹어도 너무 먹는다.풀이 있는 밭에 울타리를 쳐서 풀어 놓으면 단 며칠이 못 가서 사막처럼 맨땅이 된다.풀을 뜯어다가 먹이지 않고 풀어서 기른다면 삼백여 평 되는 우리밭으로도 모자랄 것이다.땅이라야 미국놈 개자리만도 못한 우리나라의 더더군다나 논밭 좁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터를 잡고 사는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풀도 밖에서 열심히 실어 나르는 수 밖에 없다.볼라벤이 낡은 비닐을 홀랑 벗겨내어 수확을 포기한 토마토 하우스에서 열 박스는 넘게 토마토를 따다가 익는 순서대로 바닥에 던져 주고 있다.말만 우리벌인 수정용 벌통(벌통 이름이 우리벌이다.외국종이데 눈 가리고 아웅한다)이 있는 걸로 봐서는 서울 사람들이 먹던 무농약 토마토로 보였다.표고버섯이 나올 때는 잘라낸 밑둥을 마치 닭가슴살 찢듯이 쪽쪽 찢어 주곤하였다.따뜻한 날 해바라기를 하며 쭈그리고 앉아 닭을 살펴보면서 버섯 밑둥을 찢어 주노라면 가축을 기른다는 것은 동물들을 이해하며 사귀는 것이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도 되새기게 되고 아무튼 행복감에 젖어들곤 했다.풀이 있을 때엔 부지런만 떨면 되지만 참으로 걱정되는 겨울이 슬슬 다가왔다.궁리 끝에 신비원에서 우리밀을 구해 심고 속이 덜 차서 김장하고 남은 배추를 갈무리해 두었고 무를 남겨 두었다.동네 이장님 밭에서 찌끄러기 배추를 한 경운기 얻어와서 보온덮개를 덮어 두고 매일 덜어내 주고 있다.십이월까지야 그런대로 버틸 수 있을 거 같지만 그 다음달부터가 걱정이다.하지만 窮卽通(궁하면 통한다)이라 했다.생미역을 구해 줄 수도 있고 반소사처럼 채소를 구할 수도 있고 시래기도 불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해우소에서 나오는 똥은 계절을 따지지 않는다.

요즘엔 아홉마리의 닭들이 하루에 여섯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기특하고 고마울 따름이다.늘 싸우는 게 일인 숫놈들은 차례대로 희생되어 능이백숙으로 제 본분을 다한다.그 동안 먹던 야마기시에서 나온 달걀도 살 필요가 없고 외부에서 들여 오던 유전자조작 콩껍데기와 쌀겨를 섞어 만든 유기질비료이제빠이빠이다.

   
  • ?
    박영찬 2012.11.26 15:24

    재미있는 글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자주 이곳에서 뵙기를 바랍니다...지난주에는 여의치 않아 시간을 못내었내요.

  • ?
    홀가분 2012.11.29 21:30

    닭을 키운다기에 닭의 五德  1.수닭의 머리벼슬  文   2. 발톱 武   3 싸움    勇  4. 먹이   仁  5. 때  信

    오덕을 갖추웠다면, 거기에 더해서   영靈얼 을 갖춤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 ?
    하루 2012.11.26 19:49

    에공~ 제대로 닭의 노예가 된네요. ㅎㅎ

    길벗농원처럼 터가 좀 넓었으면 저리 고생 안해도 될 것 같것만..

    고마, 긴 겨울 밤 심심헝께 한마리씩 입에 넣고 마시지..ㅎㅎㅎ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24 시조1-원용강 관리자 2014.05.02 4348
423 다석 선생님 묘소참배 관리자 2014.04.25 4619
422 허순중 언님께 file 관리자 2014.03.23 5263
421 존경하는 스승님께 - 허순중 4 file 관리자 2014.03.23 59767
420 다석탄신 124주년 기념 강연 내용 file 관리자 2014.03.18 8040
419 길의 노래 2 한마음 2013.11.17 5118
418 감사드립니다. 하루 2013.11.15 4709
417 씨알사상 북콘서트-국민일보 file 관리자 2013.10.08 5984
416 팔순일에 만남 홀가분 2013.07.20 21168
415 박영호 선생님과 길벗 민원식 하루 2013.05.05 8199
414 ●다석탄신 123주년 기념 강연 내용(2013.3.12) 3 file 관리자 2013.03.17 76560
413 이규자 개인전 안내 file 관리자 2013.03.10 22832
412 헐, 표고목 대박! 1 박우행 2013.02.26 12064
411 설선화(雪先花)보다는 삼여(三餘)가 6 박우행 2013.01.21 41941
410 싸리비를 만든 척하다 1 박우행 2013.01.18 8146
409 보살 십지 = 보살 계위 홀가분 2012.12.25 49538
408 갈라디아서6 16~26 육체(몸둥이)의 일과 성령(얼)의 열매 1 홀가분 2012.12.23 42110
407 다석 제자 김흥호 전 이대교수 별세 file 관리자 2012.12.06 43964
» 닭을 키우며 3 박우행 2012.11.26 36134
405 반편들의 세상 1 하루 2012.11.23 21094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29 Next
/ 2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