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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지 2014.여름.제25호 기고문

 

 

참삶에 이르는 길  - 理智에서 믿음으로 -

                                                                민항식(세무사)


  다석님에 관한 글은 박영호 선생님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의 좋은 글이 넘쳐나는데 무명의 필자가 무엇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지만, 박영호 선생님 강의를 수년간 들어온 사람으로서 원고청탁을 마다할 수 없기에 다석님의 참삶에 관한 소감을 몇 자 적어봅니다.

 

  다석님 스스로 거창하게 무슨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거나 유불선(儒彿仙) 기독교를 하나로 묶은 세계평화철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라 생각 됩니다. 그것은 다 후학들의 견해일 뿐이며, 다석님이 평생 고뇌하시며 추구하신 것은 지금 여기 우리네 코앞에 놓여있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삶을 어떻게 참되게 살 것인가 하는 참삶의 모색이 아니었나 합니다. 다석님은 참삶, 거짓 삶에 대해   “이미 믿는 이라면서도 사람의 영화를 하나님의 영화보다 더 좋아하므로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는 마귀의 자식이 되니....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를 예수께서 하심같이 하여야 참삶을 구하는 길이다.”라고 하십니다. (『부르신지 3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감』성서조선 1942년 2월호, 이하 인용문 동일) 하나님의 영화보다 자신의 영화를 위하여 사는 이는 거짓 삶을 사는 것이요, 자신의 영화보다 하나님의 영화를 구하는 이가 참삶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품속에 들어가는 지름길은 주저 없이, 지금, 즉시, 냉큼, 하나님의 영화를 위한 참삶을 사는 길뿐입니다. 여기서 물질만능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삶이 과연 하나님의 영화를 위한 참삶인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불야성을 이룬 도시의 고층빌딩, 끊길 줄 모르는 자동차의 행렬, 백화점을 가득 채운 수많은 상품들... 이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화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다석님은 산 날 수 18,888일 되는 날(1941.11.28일)을 파사(破私)의 날로 기리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나를 깨뜨려버린다는 뜻의 파사(破私)는 참삶에 들기 위한 준비단계입니다. “나”라 하는 에고(ego)가 남아있는 한 하나님 품속에 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에고의 마지막 뿌리는 이지(理智)와 독립심(獨立心)입니다. 만 51세가 되어서야 다석님은 고백합니다. “「(그 동안) 남이 붙들어 주도록 약한가. 저 사람도 보잘 것 없군」하는 물론(物論)이 있을까를 퍽 싫어하였습니다. 내 독립한 체면만은 죽도록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고백은 이어집니다.  “작년 2월17일부터는(이 날부터 1일1식을 시작하심-필자 주) 새 과제를 주셔서 1년 내 공부하게 하시고 8월5일에는 한번 채를 치셔서 일깨어 진가도 합니다. 아버지께 나아가야할 줄은 더욱 강박(强拍)되었사오며 감은(感恩)과 감격(感激)도 몇 번이었사오며, 마침내 자기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되었사오나 주의 앞에 무조건항복(無條件降服)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지성(知性)과 이지(理智)가 빛나며 독립심(獨立心)이 강했던 다석님 이신지라 하나님 앞에 무조건 항복하여 믿음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계십니다. 마침내 자기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음이 아닌 이지(理智)의 알음알이로 “나”라 하는 독립심을 유지하면서 하나님 품속에 들어가려 하였음을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며, 이제 그것이 벽에 부딪쳐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다가설 수 없음을 고백하고 계신 게 아닌가 합니다. 다석님 자신이 이지(理智)와 독립한 체면(體面)으로 무장한 에고를 깨뜨려버리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고백이며, 개아(個我)가 전체 속에 해체 되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결코 하나님 품속에 들 수 없음을 다석님 자신이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사일(破私日)로부터 37일이 되는 1942년 1월 4일에 다석님은 하나님 아버지 품에 들어갔음을 천명(闡明)하며 그날을 얼나로 거듭난 당신의 중생일(重生日)로 공표합니다. 얼나로 거듭나고 하신 첫마디는 요한복음 1장4절 “ 생명이 말씀에 있으니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 입니다. 다석님은 이 말씀을 중생일의 간증으로 기억하십니다.  그러면서 이지(理智)의 알음알이로는 하나님 품에 들어갈 수 없음을 직설하십니다. “당시 율법의 이론(理論)으로만 주님을 판단하려고 종일 지저귀던 매량(魅魎, 도깨비)같은 무리들은 날이 저물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간 것이 요한복음 7장53절, 7은 이학적수(理學的數)。이지(理智)로 53년래 살려하던 제가 집에서만 지난 것과 같기도 합니다. 모든 타성(惰性)과 미련(未練)을 빚어내서 살길보다 죽을 길을 통(通)하게 되기 쉬운 데가 집이다.” 나아가 참삶에 드는 길은 이지(理智)의 알음알이가 아니라 영성(靈性)의 믿음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바지께 가는 데 예수 길 되시니 참말 삶에 나아감은 믿음으로 얻네” 또 성령 성신이 인도하지 아니하면 참삶의 길에 올바로 들어설 수 없음도 역설하십니다. “기도 중에 전허공계(全虛空界)가 마무중(魔霧中, 五里霧中인 마귀의 세상-필자 새김)인 것을 알고, 저 마무를 헤치는 데는 성신(聖神) 없이는 불가능인 것을 믿었습니다.” 마침내 다석님은 이지(理智)에서 믿음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제나에서 얼나로 거듭나 하나님 품속에 드신 것입니다.


  얼나로 거듭나 하나님 품에 드신 다석님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참삶을 사셨는지는 매일매일 산 날수를 세시면서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하나님이 보내신 생각을 한글 한문시조로 새겨놓으시는 일과로 평생을 보내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다석님은 “생각이 나오기는 나에게서 나오는데 오기는 하늘에서 옵니다.”라고 하시며(박영호,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下) 126쪽), 본인의 생각조차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주신 생각이라 하시니 더 이상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다석님은 성경의 주기도문을 순수한 우리말로 옮긴 글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멕이를 주옵시며 우리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멕이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며 자신을 송두리째 하나님 아버지께 먹이로 바치고 계십니다.(다석일지 제4권 608쪽) 또 하루 한 끼 드시는 밥마저 “맙”이라 하시며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밥 먹는 것은 예배다.”라고 하십니다.(다석일지 제4권 469쪽)  나아가 “얼김 숨 삶”을 노래하면서 숨 쉬는 일조차 얼김(聖靈)과 교통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십니다.(다석일지 제1권 431쪽) 이처럼 매일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믿음에 들어간 이의 노래』에서는 “님이 나를 차지(占領)하사, 님이 나를 맡으(保管)셨네. 님이 나를 갖이(所有)셨네.” 라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주어(主語)는 없어지는 “나”(無我)가 아니라 “차지하시고” “맡으시고” “가지시는” “님”이십니다. 이것이 단순한 무아(無我)사상과 다른 점입니다. 맹목적인 무아(無我)를 노래한다기보다는 차라리 유신(唯神)을 찬양한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주어고 술어고 오직 하나님만을 노래하고 계십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전히 파사(破私)하여 에고를 누그러뜨리고 행주좌와(行住坐臥) 하나님의 영화(榮華)만을 위한 참삶을 사신 모습은 마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에 숨지신 예수님을 연상케 합니다.


  이제 다석님을 사랑하시는 길벗님들은 다석님을 알음알이로 이해하기 위한 난해한 언어들의 천착(穿鑿)에서 잠시 손을 놓으시고, 다석님의 체험을 본받아 파사일진(破私一進)!! 이지(理智)보다 믿음, 지성보다 영성, 학문보다 성신, 말보다는 기도의 길을 모색하여 하루 속히 하나님 품속에 들어 참삶에 이르시기 바랍니다. 다석일지를 훤히 꿰뚫고 다석님에 관한 글을 통독하기만 하면 얼나로 거듭나 하나님 품속에 안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다석일지나 다석님에 관한 글들은 하나님의 품안으로 들어가는 지도에 불과합니다. 산에 대한 지도를 손바닥처럼 익혔다고 해서 산에 오른 것은 아닙니다.  지도를 손에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몸소 산길을 오를 때에만 정상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석님도 만52세가 되어서야 하나님 품속에 드셨거늘, 하물며 우리들 필부에 있어서라!! 길벗님들의 몸성히 맘놓이 뜻태우를 기원하며 정진을 성원합니다.


                                                               20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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