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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지 2014.여름.제25호 기고문

 

 

「다석일지」를 읽으며                            

                                                                                                               박우행(농업)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는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회남왕 유안이 편집한 도가 계열의 책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내용은 이렇답니다. "북방 국경 변방에 점을 잘 치는 늙은이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늙은이가 아끼던 말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복이 될 줄 어찌 알겠소" 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하더란다. 몇 달 후 도망쳤던 그 말이 뜻밖에 좋은 호마(胡馬)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으니, 사람들이 횡재했다며 축하하자 늙은이는 또 "이것이 어떻게 화가 되지 않으란 법이 있겠소" 하며 기뻐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더란다. 그런데 하루는 말타기를 좋아하던 아들이 그 호마를 타고 들판으로 돌아다니다가 떨어져서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이웃들이 아들의 다리 다친 것을 안타까워하자 늙은이는 "그것이 복이 될 줄 누가 알겠소"하며 또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해가 갈 수록 오랑캐들은 빈번히 국경을 침략했고, 마을 장정들은 일제히 나가 적과 싸웠으나 번번히 패하여 국경 근처 마을의 장정 중 열에 아홉이 전사했다. 그러나 늙은이의 아들은 다리를 다쳐 징집을 피했고 그래서 무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고사에서 복과 화가 돌고 도는 것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 인생살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라고 의미를 새깁니다. 그런데 나는 이 고사를 기록한 기자(記者)가 좀 못마땅합니다. 결론을 밝게 드러내지 못한 것입니다. 말과 아들(식(食)과 색(色)의 상징이라고 봐도 됩니다)의 변화에 더 관심을 기울여 주인공인 변방 늙은이의 식색을 벗어난 마음에 주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식색에서 자유롭지 않으면 변방 늙은이처럼 태연할 수 없습니다. 식색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가진 늙은이라면 분명히 들려줄 말씀이 있었을 텐데 ,고사의 기자는 그저 사건을 기록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아마 변방이라서 그랬으리라 봅니다.


 성경 복음서의 기자들은 그래도 훨씬 낫습니다. 예수의 생애와 사건, 말씀을 뒤섞었지만 그나마 함께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서에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그 중에서도 병을 고친 치유이야기는 복음기자의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놀라운 치유 이야기가 사실 있었다면 그대로 기록하면 되겠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병을 고친 이후입니다. 치유된 사람들이 진정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는지,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병을 고쳤다고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병을 고친 사람들은 그저 습관화된 삶을 늘렸을 뿐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모르겠으나 그 이후에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었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어 편안해진 나자로는 무엇하러 소생시켰답니까?  마태복음 (8장 21~22절)에서 예수는 아비의 장사를 치르고 따르겠다는 제자에게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복음기자를 변방의 늙은이가 대신하였다면 참으로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식색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기록하였다면 지금의 복음서와는 꽤 다른 모습의 성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도마복음]이나 톨스토이의 [통일복음서]를 닮았으리라 봅니다. 그리고 성경 해석의 문제도 있습니다. 구약은 제쳐두고 신약의 사복음서를 뺀 나머지는 바울의 경험이나 해석이 대부분입니다. 사실상 신약은 바울의 가치관을 드러낸 것입니다. 누구든지 복음서를 읽고 그 나름대로 풀어 이해하면 되는 것일 뿐, 바울의 의견은 참고하면 그만입니다. 이것저것 다 인정하고 따라 여럿이서 뭉치면 권위에 복종하고 조직 자체의 속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자기를 잃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저런 횡설수설 속에서 자기의 탐욕과 분노와 음욕을 채워줄 구절을 골라 이리저리 짜맞추어 사람들을 부추기면, 차라리 성경은 없으니만 못한 지경에 갑니다. 맹자는 [진심장구 하]에서 "[서(書)]라는 책을 있는 그대로 다 믿는다면 오히려 [서]가 없느니만 못하다. 나는 무성편에서 죽간 두세 쪽만을 취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서]는 역사책 [서경]을 말하는 것이지만 다른 글에도 넓혀 적용해도 괜찮을 듯합니다.


 다석은 많은 강의와 기록을 남긴 분입니다. 식색의 풍부함과 끝없는 이어짐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더 들어볼 것도 없는 말이겠으나, 참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는 말씀입니다. 허무맹랑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이 겨레가 모르는 말과 글이 아닙니다. 물론 다석의 한시와 한자로 쓰인 어려운 한자어에 대해 반감이나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한자도 엄연히 우리겨레 말글살이의 큰 부분입니다. 또 한글을 축약시켜 쓴 시조를 보면 차라리 한시가 더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원형에 가까운 우리말입니다. 다석의 말씀이 어려운 것은 사실  표현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 자체가 생각하기 어려운 분야이고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 부족해 아주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김흥호의 풀이인 [다석일지 공부]를 보아도 어렵고 속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그 풀이에 의존해 읽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처지입니다. 하지만 자꾸만 읽고 생각하면 풀지 못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모르겠으면 모르는 대로 "무름-부름- 푸름"의 과정을 거치면 되리라 봅니다.


  다석을 한마디로 딱 잘라 어떤 사람이다 하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큰 인물들은 인격과 생각과 행동의 폭이 넓어 단순한 언어 한두 마디로 옭아매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말과 글로 철학한 큰 사상가, 막대기 철학자, 동서회통의 종교사상가, 기독교를 토착화한 진정한 크리스챤, 등등 많습니다. 심지어 다석이 몸에 대해 더 많은 말씀을 하였다고 증언(?)하는 분도 있습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이렇게 봅니다. 있과 없(有와 無)에 대한 상식을 깨뜨리고 없음이 진정한  있음이라 밝힌 사람, 그래서 없(無)을 진정으로 계시다고 알(믿)고 친하게 아빠라고 부른 사람이다. 다석의 말씀 중에서 관련된 말씀을 옮겨봅니다. "빈탕한데(허공)는 석가와 장자가 처음으로 분명하게 얘기했다. 그런데 근기 낮은 사람들이 빈탕한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이단시하여 배척했다. 쓸데있는 것만 찾는 사람들에게는 빈탕한데는 쓸데없다고 하겠지만 빈탕한데를 모르면 모두가 거짓이다. 빈탕한데가 쓸데있고 없고는 하느님 나라에까지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1956)  "하느님은 없는 하나 오직 하나 (無一唯一)이다. 그래서 없이 계시는 빈탕한데의 하느님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나(無一)만이 전체인 오직 하나(唯一)이다. 이러한 영원 절대의 님을 찾는 것이 얼나인 하느님 아들이다."(1957)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빈탕한데(虛空)가 하느님의 겉모습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속생명은 얼(성령)이시다."(1957)  "하느님이 없다면 어떠한가. 하느님은 없이 계시는 분이다. 몬(물질)으로는 없고 얼(성령)과 빔(허공)으로 계시기 때문에 없이 계신다. 그러나 모든 물질을 내고 거두신다. 하느님은 없이 계시므로 언제나 시원하다. 하느님은 물질을 지녔으나 물질이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물질을 이룬 얼이요 모든 물질을 담은 빔이다. 모든 물질을 거둘 빔이다."(1957) 다석은 자기 사상을 결론하여 빈탕한데 맞혀 놀겠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아빠라고 부릅니다. 아, 나도 솔직하게 없음(빔, 빈탕한데, 허공,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인류의 멸망을 걱정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것을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라 합니다 이것이 다 무너지고 있습니다. 땅은 표토의 유실과 중금속 오염, 산성화, 농지의 부족 등으로 심각하고, 물은 담수의 부족과 오염,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인한 대류의 변화 등으로 문제이고, 불은 에너지라고 생각하여 화석 연료의 부족과 오염, 원자력의 피해로 나타나며, 바람은 공기이니 사람들은 갈 수로 오염으로 숨쉬기조차 어려워지고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로 날씨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으니 인류의 미래는 암담합니다.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큰 바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간디는 서양문명을 악마의 문명으로 규정했습니다. 이 지구가 자급자족하기엔 충분하지만 필요를 충족하기엔 두세 개가 필요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벌써 간디가 간 지도 꽤 지났는데 인구는 폭발했고 욕심은 격증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겠습니까?  다석은 자기의 알짬(정액)부터 아끼라고 권합니다. 정답은 석가의 말씀이 멋집니다."지혜 있는 이는 내가 지금 출가해 목숨이 8일7야가 된다 해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으로 교화하며 중생을 유익하게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느니라. 다시 7일7야도 많다 하여 설사 엿새, 닷새, 나흘, 사흘, 이틀, 하루, 한 시간 내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이라 해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해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 되게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잘 닦는다 하느니라."[대반열반경]


 나는38선 이북 접경지대에 살면서 농사를 조금 짓고 있습니다. 다석의 땀흘리며 농사 짓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 좋았지만 이미 말씀을 알기 바로 전부터 나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변혁 운동을 하다가 생태환경 문제로 인해 유기농을 하자고 주장하는 농가(農家,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하나로 자기의 노동으로 자급자족 생활할 것을 주장하였다. 석가에게도 왜 농사 짓지 않고 빌어 먹냐고 비난하는 브라만이 있었고 맹자에게도 왜 손수 농사 짓지 않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사에 보면 늘 농가가 있습니다.)로 전향했습니다. 밥이 하늘이라고 짐짓 거룩한 척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겉모습은 그대로이나 농가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다석도 농사를 짓는다 하였지만 제대로 된 여름아비로 살지는 못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대신 썩지 않을 마음의 양식 농사를 누구보다도 잘 지었습니다. 나는 다석이 함석헌의 평화운동에 대한 의견을 물은 박영호에게 보낸 답장을 읽고 농가적 입장을 버렸습니다. 다석은 답장에서 누가복음 19장 42절 말씀(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개역한글판],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공동본역])을 한글, 일본어, 한문 등 다섯 가지나 옮겨 맞대어 놓고 꼭꼭 씹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답합니다.운동으로 잘 살게도 평안하게도 되는 것이면 벌써 옛날에 됐을 것!"사람마다 날마다 잘 싸움으로 마침내는 모두 다 잘 죽음으로 말미암는 길 가운데서 무슨 운동을 한답니까?  주제넘은 운동! 부질없는 생명! 다 쉬고 말아라. 생(生)은 분(分)이오 사(死)는 합(合)이라. 동(動)은 난(亂)이오 정(精)은 화(和)니라."


  나이가 들어가니 시간이 아주 더디게 갑니다. 지천명(知天命)도 안된 나이이나 변방 늙은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석일지]를 떠듬떠듬 읽으며....

                                                                            20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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