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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영 모 (1890-1981) 와 화이트헤드 (1861-1947)

 

다석 유영모의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의 사교회통(四敎會通) 사상과 화이트헤드의 넥서스(결합) 개념에 관련해서

 

이 원고의 목적은 한국의 토착 기독평신도이고 종교 철학자인 다석 유영모(1,890-1,981)와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의 상호 연관성 및 사교회통(四 敎會通)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이와 관련된 화이트헤드의 넥서스(결합) 개념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의 호는 다석 입니다.

 

전통적인 인격신을 거부했기 때문에 화이트헤드의 철학 혹은 그의 우주론은 많은 다른 이름으로 유기체의 철학, 과정 철학, 이극 유신론, 내재 신론으로 일컬어집니다, 심지어 현대 궤변적인 무신론자라고도 합니다. 그의 유기체 철학은 유기 우주에 대한 그의 이해와 모든 사물의 사회적 개념에 대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가장 작은 것부터 가장 큰 것까지, 원자, 전자로부터 전 우주까지 심지어 신까지 서로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의 우주론에서 실행되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과정, 생성, 현실적 존재, 합생, 파악, 새로움, 이극 유신론이나 내재 신론에 대한 그의 생각과 관련되어 있는 "넥서스(결합)" 이론 입니다.

 

화이트헤드에게 넥서스(결합)"공존(共存)", "연결" 또는 "상호 관련성을 의미합니다. 과정과 실재에서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 간의 공존(共存)의 어떤 특정 사실을 넥서스(결합)" 라고 정의합니다. 또한 그는 "현실 세계는 넥서스(결합)이다"라고 말했습니다(PR, p.28). “모든 넥서스는 구성요소의 넥서스이다: 따라서 넥서스 어딘가에서 실현을 포함한다." 이것이 용어 넥서스의 첫 사용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는 모든 작은 넥서스의 가장 큰 넥서스라고 할 수 있으며, 즉 모든 존재의 현실적 존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 넥서스 이론은 불교의 "연기설(緣起 說)" 이론에 비교 될 수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일도 단독으로는 일어나지 않으며 존재 할 수 없으며 모든 일은 모두 원인과 결과에 관계하여 일어나거나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계속하고 있고 따라서 아무것도 지속적 물질 또는 자기 성질을 가질 수 없습니다(無自性). 이것이 무 또는 공(Sunyata/空思想)의 불교 개념의 기초 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공 또는 무가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적 사물의 모체 또는 근거라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물의 본질(Suchness 眞如)을 가리킵니다.

 

인도의 2세기 대승 불교 철학자 Ashgagosha(한국어, 마명/馬鳴)는 그의 책 "대승에서 깨닫는 믿음에서" 진여(또는 공), "정말로 있는 것으로(나타나는 않는) 즉 실재 그자체로 정의합니다." 따라서 불교의 진여 혹은 공은 임마뉴엘 칸트의 "Ding an sich"(물자체)와 비교되어질 수 있습니다. 칸트는 "Ding an sich"(물자체)는 이성에 의하여 알 수 없다고 언급했으나 불교는 공이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야", 초월적 지혜와 깨달음(깨침)에 의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루어짐의 종교"에서 화이트헤드는 인간 본성을 정화하는 주요 요소로 즉, "인간의 내면을 깨끗이 하는 믿음의 힘"으로 종교를 정의 합니다; 따라서 정당성 또는 정화는 모든 종교의 기초이고 그의 말에 따르면, 세계의 모든 종교는 직접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원시시대부터 합리주의 단계로 세계의식의 점진적 성장과 함께 성장되었고 그에 따르면 역사에는 종교의 네 단계; (1) 의식, (2) 감정, (3) 믿음, (4) 합리화가 있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합리화되고 진보한 종교로서 주요한 두 종교, 불교와 기독교를 지적했습니다. 그는 오늘조차 문명의 중요한 두 종교는 기독교와 불교이지만 또한 우리가 이 두 종교의 상황을 판단할 경우, 둘 다 하락과 쇠퇴에 있다고 말합니다. 쇠퇴와 세계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잃게는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으로서 기독교와 불교의 쇠퇴는, 각각의 종교가 지나치게 다른 것으로부터 자신을 숨겼다는 사실에 부분적으로 기인한다. 학문하는 자기자족 학자와 무지한 광신자의 확신은 자신의 사상의 형태로 각 종교를 가두기 위해 결합했다. 서로 더 깊은 의미를 찾는 대신 그들은 자기만족과 결실을 맺지 않은 채 남아있다.<이루어짐의 종교, p.146>

 

화이트헤드는 이런 두 진보된 종교의 쇠퇴와 하락의 주요 이유는 그들이 자기만족에 머물러 다른 종교에 문을 닫고 다른 종교로부터 더 많이 배우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힘과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화와 상호 학습을 제안했습니다.

 

이제, 다석 유영모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화이트헤드 뒤 29년 후, 1890년 서울에서 태어나 화이트헤드 사후 341981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5세부터, 한문 통감, 맹자, 그리고 다른 기본적인 중국 고전을 읽고, 유교적 배경에서 성장했고 그의 초기 기반인 전통적인 유교는 그의 삶과 함께 했으며 그의 사상과 종교적 개념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근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유교 사상은 한국의 다른 종교의 본질을 이해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렇지만, 1905 , 15살의 나이에, 그와 그의 동생은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서울 YMCA의 어떤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처음 기독교를 접하고 애국적인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에 의해 감화되고 마침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는 원래 기독교를 받아들이기로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서울 지역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차 열광적이고 보수적인 기독평신도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유는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한성 외국어 학교에 입학했고 많은 서양책이 일본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고 아마도 거기에서 영어는 물론 다른 외국어도 배웠을 것입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특별히 한문에 재능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서울에서 삼 천재, 오 천재 중의 하나라고 일컬어졌습니다.

 

그는 과학과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에 그의 전 고등학교 교장은 그를 과학 교사로 추천해서 1910년 가을, 유는 한국 북부의 오산 고등학교에 과학 교사로 초청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는 그곳에서 물리, 화학, 수학, 심지어 천문학을 가르쳤습니다. 천문학은 그의 삶 동안 개인적인 취미였으며 80의 나이까지, 위층의 베란다에 망원경을 설정하고 밤에 별의 관찰을 즐기며 자신의 광대한 과학적 우주론을 개발했습니다.

 

처음, 오산 고등학교에서 그는 열정적이고 보수적인 기독교인이었고, 그래서 그는 학교 교장인 이승훈에게 영향을 주어 기독교로 개종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다른 선생님에 의해 불교와 도교 경전에 대해 눈을 뜰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이것은 그의 이전의 종교 유교를 포함하여 동양 종교, 불교와 도교에 눈을 열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동생이 19살의 나이에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을 맞이했고 그것은 그에게 전통적 인격신에 대한 신앙을 다시 생각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슬픔과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불교를 더 깊이 있게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순간은 그가 1912년에 도쿄에서 교수가 되고 세속적인 명성을 얻기 위한 자신의 꿈을 이룰 과학(물리학) 공부를 포기한 것이며 그는 서울로 돌아와서, 오히려 조용한 은둔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석은 레오 톨스토이의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마하트마 간디의 종교적 통찰력,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의 마음에 영향을 받았고 매료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과정 사상이 다른 과정 사상가, 테야르 드 샤르댕을 통해 한국 지식인의 일부에 이미 소개되었기 때문에 유영모도 간접적으로나마 화이트헤드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1928 년에서 1963 년까지, 그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서울 YMCA에서 종교 강의를 이끌도록 초대되었고 그것은 35년 계속되었습니다. 강의의 이름은 연경반(硏經班), 경전공부반 이었고, 기독교의 성경뿐만 아니라, 불교, 유교, 도교 경전도 다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간 연구 모임이었고, 그 곳에서 대부분 요한복음을 중요하게 매우 자주 공부 하였습니다. 참가자들은 교단과 종교를 넘어 대학 교수, 석학, 종교 지도자들과 일부 승려도 있었으며 35년 강의 동안 참가자의 수는 수천 이상이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그의 진심어린 제자들과 추종자가 되었고 그들에 의해 그의 일기와 강의의 내용은 수집, 해석되고 출판되었습니다.

 

그 경전 연구 모임을 통해 그는 궁극적인 하나, 전체와 종교 간 일치 즉 사교회통(기독교,불교,유교,도교)의 생각, 독특한 신관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가톨릭 사제와 신학자 중의 한분인, 정양모는 그의 다원주의 정신이 이미 1920년에 등장하기 때문에 서양 다원주의 신학자들보다 거의 70년 앞선 종교 다원주의 선구라고 할 수 있음을 언급했습니다.

 

유의 삶의 다음 단계는 그의 나이 511941년 자신의 결단에 의해 금욕적인 생활에 자신을 맡기고, 일일일식, "해혼" 결혼의 해지를 선언하여 그의 아내와 성적 관계를 끊고 나무 널에서 자고 이집트의 3 세기 기독교 수도자처럼 매일 아침 3시에 일어나 찬물로 샤워를 하고 오래 동안 깊은 명상에 잠겼다고 전합니다. 이집트에는 기독교 금욕주의 승려가 하루에 한 끼를 먹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집은 작은 수도원의 일종이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 하나인, 박영호는 다석의 집을 방문한 후, 그가 그렇게 정중하고 겸손했지만, 그의 눈은 예리하게 밝아 있었기 때문에 공자 또는 다른 거룩한 사람같은 성현 또는 성인을 만난 느낌이었다는 인상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석은 성경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이 동양 종교 경전에 대한 공부를 계속했으며 그는 지식에 배고픈 거지였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내가 궁색하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빵을 구걸한다. 나는 성경뿐만 아니라 유교와 불교 경전도 먹는다."고 말했습니다. 1959, 그는 노자의 도덕경, 그리고 대승불교 경전,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했고 잇따르는 해에 구약시편의 일부, 논어(論語) 같은 수많은 유교 텍스트, 역경(易經), 서경(書經),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1977 , 그는 톨스토이와 같이 길 바깥에서 죽기위해 두 번 집을 떠났으나 거의 죽은 채로 다른 사람에 의해 집으로 돌아왔고 198123, 그는 하나님, 그가 바라고 그리워한 절대하나, 온통인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다석은 공식적인 책을 출판하지 않았으나 그는 시적인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그는 수천의 종교시를 지었으며 그 대부분은 한문으로 쓰여 졌고 자신의 일기에 남겼습니다. 그의 제자, 박영호와 김흥호는 풀이하여 현대 한국어로 옮겼고, 2008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철학자 대회의 국제회의에서, 그와 그의 제자 함석헌은 한국 현대 철학자의 대표로서 소개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주 간단히 4교 회통(유교, 도교, 불교와 기독교)에 관한 유영모의 사상의 요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해에 의해 이 네 종교의 상호 관련성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아바 하나님, 절대 하나, 태허, 허공, 니르바나, 전체, 영 등, 그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은 "없이 계시는 하나님" 또는 "허공이신 하나님" 입니다.

 

첫째, 유영모는 네 가지 종교의 일치 또는 조화를 위한 공통점을 발견했고 그것은 이 네 종교의 궁극적 실재에 대한 그의 이해입니다, 그에 따르면, 각 종교의 본질, 혹은 각각의 근본적인 가르침의 정수(精髓)는 종교 표현의 용어나 해석 방법이 다양하고 상이한 경우에도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이해가 있음을 보여준다.

 

유교에서는 그들의 궁극적인 실재를 하늘 또는 상제(上帝/최고신) 또는 태극(太極), 무극(無極), 궁일(窮一)로 부릅니다. 유영모는 유교는 전형적인 일신교의 하나라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유교에서 신의 이해는 변화 또는 발전된 경향이 있어 왔습니다. 심지어 공자 스스로 상제(上帝,최고통치자) 대신 신을 하늘로 부르는 것을 선호 합니다. 신유학자에 의해 궁극적인 실재는 태허(太極), 무극(無極) 또는 리()라고 이해되고 일컬어지었습니다. 신유교는 어떤 의미에서 공자, 맹자, 도교, 불교의 특정 측면의 통섭에 의하여 철학뿐만 아니라 종교로서 기능을 가진 종교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 나선 것 같이 보입니다.

 

도교, 그들은 궁극적인 실재를 도()라고 한다. 도덕경 (道德 經)에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 합니다 : " 이름 할 수 있거나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 노자에 따르면, 도는, 본질적으로 이름 없다, 즉 단지 신비주의자가 일반적으로 궁극적인 실재로서 하나님의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형언 할 수없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이 형언 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으며 그래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사상인 '신성'에 대응합니다. 그러므로 도는 모든 일에 신비스럽게 내재적임에도 불구하고 무한히 초월적입니다. 유영모는 도교의 도를 허공의 의미에서 이해했고, 도교의 관점에서 불교 용어 무 혹은 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단지 '허공' 또는 '(/)으로 인식합니다.

 

불교에서, 그들의 궁극적인 실재는 공 또는 무로 부릅니다. 어떤 의미에서, 불교는 공(Sunyata)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으나 공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진정 쉽지 않습니다. T.R.V. Murti, 뛰어난 대승 불교 학자에 따르면, 불교의 공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또는 궁극적인 실재일 뿐입니다. 2세기 인도의 철학자이며 대승 불교의 중관학파(中觀學派) 설립자인 나가르주나(한국어,龍樹)에 따르면, 공은 존재 또는 비존재도 아니고, 존재와 비존재인 것도 아니며, 동시에 존재와 비존재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그에게 공(Sunyata)은 사람에 의해 상상되는 모든 본성 또는 속성을 벗어납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즉, 궁극적인 실재를 의미합니다. 유영모는 이점을 즉 궁극적인 실재를 의미하는 공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최근 한 철학박사 학위 및 한 신학박사 학위 논문이 유영모의 철학과, 신학 사상에 대하여 쓰여 졌습니다. : 하나는 2002 년 영국 버밍엄 대학에서 한국 성공회 사제 윤정현 박사에 의해 "없이 계시는 하나님: 류영모 사상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관점"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박명우 박사, 한국 개신교 목사가, 2001 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한국의 종교 다원주의 맥락에서 지역 기독교 신학의 건립: 류영모 (1890-1981) 신학의 비판적 분석 "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저의 견해로는, 화이트헤드가 그의 우주론에서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종교적 사상을 통섭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그 종교들의 종교적, 철학적인 사상은 화이트헤드의 이극신론, 특별히 그의 창조성으로의 신과 신의 원초적 자연(Nature)에 대한 생각에 포함 가능할 것 같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신의 원초적 자연은 "잠재력의 절대 가치에 대한 제한 없는 개념적 깨달음"이라고 설명했고 그것은 또한 무한한 잠재력의 절대 가치를 상징하기 때문에 따라서, 무 또는 공의 불교 개념에 아주 가까워 보입니다. 동시에, 유교의 태극의 본질 속성, 또한 도교의 도()는 창조성 혹은 모든 존재의 근거를 상징합니다.

 

화이트헤드의 넥서스 이론과 유영모의 회통의 개념을 적용해보면, 우리는 네 종교는 물론 지구상의 모든 종교 상호간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단독으로 존재 할 수 없고 모든 종교는 상호 영향을 주는 도상에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종교는 완벽하게 독립적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종교의 문을 열도록 하고 화이트헤드가 제안한 것 같이 더 성숙하기 위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대화가 상호 이해와 상호 변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선교의 가장 좋은 방법은, 개종이 아니라 대화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 간의 대화가 가장 어려운 임무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 모두에게 견뎌야하는 힘든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 평화 그리고 세계적 화합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이 점에서, 화이트헤드와 유영모 양자는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의 대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종교나 교단의 좁은 마음을 가진 독단론자가 되지 않고 세계적인 마음을 가진, (바꾸어 말하면, 영적으로 깨달은) 관대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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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찬 2014.12.31 13:21
    영문도 있으니 유기종 교수님의 번역이 아니어서 번역에 미숙한 점이 있다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외의 많은 조언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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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항식 2015.01.08 11:50
    영문 번역 넘!! 감사합니다. 길벗님의 영어 실력이 이정도일 줄 미쳐 몰랐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실력발휘 하여주시기 기대합니다. 민항식 꾸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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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찬 2015.01.08 17:12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석어록 영문 번역방도 내용을 보시고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김병규 선생님이 열람가능하도록 해드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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