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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공부가 참 사는 길

(공자와 다석의 사생관(死生觀) 비교)

                                                                                                                             박 영호

 

  세상 사람들은 거의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멀리하려한다. 죽음은 그림자처럼 나를 쫓아 따라 다니고 있다. 그래서 멀리하고자 한다고 멀리하여지는 죽음이 아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말하였다.“질병자체보다도 질병의 두려움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MK 간디날마다의 명상)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한번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윤회란 잘못된 생각이다. 이 두 번 없는 삶을 뉘우침이 없도록 참되게 살아야 한다. 인류역사가 생기고서 인생을 가장 참되게 값지게 산 이는 예수 석가 공자 같은 성자일 것이다. 사람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참되게 값지게 사는 삶이야말로 행복한 삶일 것이다. 마지막 숨지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석가 붓다의 미소는 바로 죽음의 미소이다. 석가 붓다처럼 행복하게 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지구위에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것은 4백만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금수의 역사이지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야스퍼스가 말한 인류 문화의 기축시대(Axial area)는 겨우 25백년 밖에 안 된다. 바로 석가 노자 공자 장자 맨 뒤에 예수가 나왔다. 우리는 그들을 깨달은 성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을 가까이하는 근사지심(近死之心)을 가지고 살았다. 석가 붓다의 근사지심을 본다.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내가 지금 출가하여 목숨이 일곱 날 일곱 밤이 된다하여도 나는 그 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중생을 바로 살게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말하여 슬기로운 이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닦는다고 한다. 다시 일곱 날 일곱 밤이 많다하여 설사 엿새, 닷새, 나흘, 사흘, 이틀, 하루, 한 시간 내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이라 하여도 나는 그 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진리를 가르쳐 중생을 올바르게 이끌면 이것을 일러 슬기로운 이가 죽음생각을 잘 닦는다고 한다.”(대반열반경)

  

 사람이 앓게 되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앓지 않으면 죽음을 잊게 된다. 중국 명나라의 진헌장이 말하기를 사람이 되어 병 앓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일생토록 병 없음이 나의 근심이다(爲人多病 未足羞 一生無病 是吾憂)”(홍자성채근담) 라고 하였다. 건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이 근심된 일이란 말이다. 류영모는 몸이 건강한 것은 소건강이고 몸을 홀딱 벗어버리는 것이 대건강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다석은 안 난 샘치고 살고 죽은 샘치고 살자고 한다. 그러면 생사에 매인 제나(몸나)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류영모의 말이다. “ 죽인다고하면 살고자하고 살리고자하면 빨리 죽었으면 한다. 이게 혹()이 아니고 무엇인가? 사는 게 좋고 죽는 게 나쁘다는 것은 혹해서 그런 것이다. 죽음이란 좋고 언짢고가 없다. 그런데 모두가 이 시험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사는 게 좋고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겠다는 것은 두 번 혹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지레 죽으려 자살을 꾀하는 것은 어림없는 혹이라 아니할 수 없다.”(류영모다석어록) 바로 된 근사지심(近死之心)은 그대로 친천지심(親天之心)이 된다. 얼나를 깨달아 하느님의 아들 곧 성자가 되고자하면 근사지심을 잘 닦고 길러야 한다. 성자(聖者)로 기림을 받는 사람 가운데 근사지심에서 좀 떨어지는 이가 공자(孔子)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사생관(死生)을 살펴보면서 다석(多夕)의 사생관을 비겨 보았다. 거기에 세상에 덜 알려진 장자(莊子)의 사생관을 참고하고자 하였다.

  

  자로(子路)는 공자의 제자 십철(十哲)에 든다. 그런데 논어에 나타난 언행으로 보아 좀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보인다. 공자는 인자(仁者)는 정()하고 지자(知者)는 동()한다고 하였으나 자로는 행동적인데 그렇게 깊은 지()를 지닌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나라 섭공(葉公)이 자로에게 자로의 스승인 공자의 사람됨에 대하여 물었는데 자로는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자로는 공자가 성인의 인품을 지닌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제자인지라 함부로 남에게 우리 스승님은 성자입니다라고 말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밖의 말도 얼마든지 할 말이 있을 터인데 머뭇거리다가 만 것이다. 공자가 그런 일이 있은 것을 뒤에 알고는 자로에게 말하기를 너는 어찌 그 사람됨은 호학(好學)에 열성이라 먹기조차 잊고 그 즐거움으로 근심도 잊어 앞날에 늙음이 닥치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논어술이편)’ 라고 말하지 못했는가? 하였다. 자로는 그 대신 엉뚱한 질문을 잘하여 논어의 질을 높이고 폭을 넓혔다. 공자에게 사람들이 많이 물은 것은 공자가 일생을 일이관지(一以貫之) 하였다는 인()과 공자가 일생을 바친 정()이었다. 그런데 자로는 공자에게 귀신과 죽음에 대해 물었다. 물은 사람이 자로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참으로 중요한 것을 물은 것이다. 귀신을 물은데 대해서는 공자의 신관(神觀)을 밝혀야하고 죽음을 물은데 대해서는 공자의 사관(死觀)이 피력되어야한다. 그러나 공자는 수준이하의 졸답을 하는 데 그쳤다. ‘사람도 능히 섬기지 못하는 데 어찌 귀신을 섬기랴? , 삶도 알지 못하는 데 어찌 죽음을 알려느냐?’고 대답하였다. 제자 번지가 앎에 대해서 물었을 때에는 사람이 옳음()에 힘쓰게 하고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면 안다고 말할 수 있다”(논어옹야편)고 대답한 일도 있다. 성령이신 하느님만이 계시지 귀신이란 없다. 공자는 다신론을 극복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버트런드 러셀은 예수보다 소크라테스와 석가를 더 우위에 두어야한다’(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고 말하였으나 러셀이 예수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신관에 있어서는 예수도 구경각을 이룬 이라고 본다.

  

  여러 사람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 대답이 똑같지가 않다. 그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서 대답하기 때문이다. 자로에게 한 대답도 마찬가지로 자로에게 필요한 말을 해준 것이다. “공자가 앓아누웠을 때 걱정이 된 자로가 신()에게 빌기를 청하였다. 공자가 그런 게 있느냐고 묻자 자로가 대답하기를 있습니다. ()라는 제문집에 천신 기신(祇神) 비는 의식이 적혀 있습니다.’하자 공자가 말하기를 나는 이미 빌어 온지 오래라 새삼스럽게 빌게 없다고 말하였다.”(논어술이편) 공자는 자로가 기복신앙에 너무 치우치는 것이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던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람도 능히 못 섬기는데 귀신을 섬기려 하느냐고 대답하였던 것임을 헤아릴 수 있다.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려 하느냐?’고 한 대답도 자로에 대한 경계의 뜻이 깔려있다고 보여 진다. 자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을 지닌 사람이다. 공자는 자로의 그런 과격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하루는 공자가 제자 안회, 자로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스승 공자가 안회를 무척 아꼈다. 안회는 가난을 이겨내고 학문을 좋아하고 성격이 어질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안회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써주면 나아가 다스림에 힘쓰고 버리면 숨어서 조용히 마음을 닦는데 힘쓸 이는 나와 그대뿐이다. 곁에서 이 소리를 들은 자로는 샘이 나서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께서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되면 누구와 더불겠습니까? 자로는 스승이 자로 자신과 함께하리라는 대답을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스승 공자의 대답은 냉정하였다. “맨 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하고 맨 몸으로 바다를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어도 뉘우치지 않을 사람과는 함께하지 않겠다. 일을 함에는 반드시 늘 삼가하고 잘 도모하여 반드시 일에 성공할 사람이라야 한다.”(논어술이편)고 하였다. 다른데서 공자는 말하기를 자로()는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다.(不得其死然)”(논어선진편)라고 한 적이 있었다. 자로는 불의와 싸우다가 스승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공자(孔子)도 죽음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 증거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논어이인편) 그리고 어짐()을 해치면서 살기를 바라지 않으며 어짐을 이루고자 나를 죽임이 있을 뿐이다.(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논어위령공편)라는 이 말에 있다. ()와 인()이 몸나보다 귀한 것을 안 이는 죽음을 바로 아는 이다. 그래도 공자의 사관(死觀)에는 미진한데가 있다.

  

  삶()과 죽음()은 손바닥의 안과  겉이다. 손바닥 안만 보거나 손바닥의 겉만 보고서는 손바닥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바로 알려면 삶()과 죽음()을 다 알아야 바로 아는 것이다. 그러니 공자의 말삶도 모르면서 죽음을 어찌 아느냐?’는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말이다. 삶을 알자면 죽음도 알아야하고 죽음을 알려면 삶도 알아야한다. 따라서 사람을 알려면 사람은 나서 죽음으로 생사(生死)를 다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장자(장자)는 생사가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대립되는 것도 아니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죽음과 삶은 한 이음줄이다(死生一條)”(장자덕충부) “누가 능히 없음()을 머리로 하고 삶을 가지고 등마루로 하고 죽음을 꽁무니로 하겠는가?(孰能以無爲首 以生爲脊 以死爲尻 孰知死生存亡之一體者)”(장자대종사편)

  

  류영모는 살음()보다 죽음()을 더 우위에 두었다. “()은 분()이요 사()는 합()이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은 큰일이다. 우리의 삶이란 사형수의 집행유예기간이다. 사형수가 향락을 하다니 요절복통할 일이다. 이 몸 생명은 종당 죽음이 결정된 사형수들이며 이 죄수들이 밖으로 못 나가게 얽어매어 놓은 곳이 가정이요 국가이다. 처옥자쇄(妻獄子鎖)라는 말이 있다. 따스할 온자는 죄수에게 쟁반에 음식을 담아서 주는 것을 나타낸 회의문자이다. 이세상은 감옥이요 사람들은 사형수의 처지로서 서로서로가 위로해 주는 것이 따스한 온정이다. 부귀공명이란 이세상이 병들었다는 증상이다. 사형수의 처지에서 서로 잘났다고 다투다니 요놈의 인생이란 무슨 도깨비 같은 존재인지 모르겠다. 어제 저녁에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서 저쪽(하늘나라)으로 갈 수 있는데 이쪽(이세상)으로 넘어와서 오늘을 사는 것이다. 이목구멍으로 할딱할딱 숨쉬는 게 분각령(分覺嶺)으로 깸과 죽음을 가르는 마루터기다. 분수령은 이리 넘어오면 압록·두만강이고 저리 넘어가면 송화강이다. 이렇게 할딱할딱 하다가 딱 그치면 저쪽으로 넘어가 버린다. 이쪽으로 넘어오니까 이렇게 모였다. 우리에게는 숨이 분각령이다.”(류영모다석어록) 공자는 스스로 말하기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하였다. 그런데 언제 도()를 들었다는 말은 없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면 아침에 제나가 죽어야 저녁에 얼나를 깨닫는다고 해야 바른 말이다. 조사아석각도(朝死我夕覺道)란 말이다. 마하트마 간디도 제나(ego)가 죽을 때 얼나를 깨닫는다(When the ego dies, The soul awakes)”(MK 간디날마다의 명상)고 하였다.

  

  이제 공자가 직접 죽음에 다다라서 또는 주검을 두고서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공자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은 없다. 다만 돌아가기 일주일 전에 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서성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노래처럼 읊었다고 한다.

 

태산은 무너지려하고

기둥은 쓰러지려하고

철인(哲人)은 세상을 떠나려한다.

 

이 말이 실제로 공자의 말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공자가 스스로 철인이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철인이라는 말은 서경(書經)에 나오지만 공자는 쓴 일이 없다. 군자(君子)를 공자는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논어요왈편)고 말하였고 공자는 50 살에 천명을 알았다고 말한 바 있다. 공자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 그 사명을 이루면 군자가 된다고 생각하였고 군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류영모는 공자의 군자를 하느님 아들로 보았다. 공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는데 오직 하느님만이 자신을 알아준다고 말하였다. 그 하느님께로 돌아가면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이가 공자가 아닌가? 그런데 태산이 무너지려하고 기둥은 쓰러지려 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은 절망이요 패배란 뜻밖에 안 된다. 공자 자신이 이 세상에서 태산이었고 기둥이었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은 더구나 말이 안 된다. 예수는 자기 죽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하였다. 석가는 니르바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하였다. 우리나라 시인 천상병도 나 하느님께로 돌아간다(歸天)고 말하였다.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가 안회였다. ()나라 임금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묻기를 제자 가운데 누가 학문을 좋아한다고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안회라는 이가 있었는데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목숨이 짧아 죽고 지금은 없습니다. 그리고는 호학(好學)하는 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논어옹야편)라고 했다. 이 한마디로서 안회가 공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제자였던가를 헤아리고도 남는다. 이 안회가 스승인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일찍이 공자 일행이 광 사람들에게 포위되어 위험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때 몇 제자들이 따라오지 못해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안회도 있었다. 뒤에 안회가 살아서 나타나자 공자는 너무 반가워서 공자가 안회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가 죽었는 줄로 알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안회가 대응하기를 스승님께서 살아계시는데 제()가 어찌 죽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논어선진편) 그런 안회가 스승보다 먼저 죽은 것이다. 제자의 죽음에 스승이 눈시울을 붉힐 수는 있다. 스승도 감정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자는 그 도를 훨씬 지나쳤다. 공자는 통곡을 하면서 울었기 때문이다. 울면서 하는 말은 더욱 놀라게 한다. “어이 이럴 수가 하느님이 나를 죽인 것이다 하느님이 나를 죽인 것이다.(噫 天喪予 天喪予)” 제자 회에 대한 예()는 될지 모르지만 하느님에 대한 예는 되지 못하였다. 공자는 사생(死生)은 천명(天命)이다라고 말하였다. 한 가지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공자는 3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어렵게 살지 않을 수 없었다. 홀어머니조차 16 살 때 세상을 떠나 소년 가장이 되어 온갖 궂은일을 다하면서 살아와 공자는 선생 밑에서 글을 배운 적이 없다. 혼자서 글을 익히고 책을 읽었다. 가정을 이루었으나 낳은 자식을 버리고 아내는 집을 나가 혼자 살았다. 아들은 안회보다 먼저 죽었다. 세상에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써 주기를 바랐으나 10 여년의 세월을 허송하였다. 공자 자신보다도 더 어려운 환경에서 버티어 내면서 눈부신 호학정신(好學精神)을 드러낸 안회가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회는 나를 돕는 편은 아니었다. 내 말에 기뻐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는 어려운 질문을 하거나 올바른 충고를 하는 제자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중용에는 사람의 희노애락이 나지 않음을 일러 중()이라하고 나되 중()으로 절제함을 일러 화()”(중용1)라고 하였다. 군자는 이 중화의 길을 가야 한다.

   

  장자(莊子)는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저 하느님께서 나를 꼴몸에 실어 주었다. 살아서 나를 힘쓰게 하고 늙어서 나를 평안하게 하고 죽어서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게 하는 이가 내 죽음도 잘해 줄 것이다. (夫大塊載我以形 勞我以生 佚我以老 息我以死 故善吾生者 乃所以善吾死也)”(장자대종사편) 이에 사람이 죽은 뒤에 지나치게 죽음을 애통해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장자는 말하기를 하느님을 멀리하고 정()을 더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목숨인 것을 잊은 것이다. (是遁天倍情 忘其所受)”(장자양생주편) 죽음에 대한 류영모의 생각은 예수 석가와 일치한다. “나는 죽음 맛을 좀 보고 싶다. 그런데 그 죽음 맛을 보기 싫다는 게 뭔가? 이 몸은 내던지고 얼은 들려야 한다. 땅에서 온 몸은 죽어 땅에 떨어지고 우에서 온 얼은 들리어 하느님께로 올리운다. 그러나 여기 있는 동안에는 땅의 일도 충실히 해야 한다. 나는 이다음에 대학생이 될 테니 유치원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 나라에는 죽음은 없다. 하느님께서 무시무종(無始無終)인데 죽음이 있을 리가 없다. 하느님이 안고 계시는 하느님의 부속물인 상대적 존재들이 변화할 뿐이다. 상대적 존재들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고 변화하였을 뿐이다.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변화를 보고 죽음이 있는 줄 알고 무서워한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육체적 생각을 내던져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죽음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죽음이 무서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이를 놓아 주려 하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류영모다석어록)

     공자도 스스로 말하기를 네 가지를 끊었다고 말하였다. “내 생각을 없애고 내 반드시를 없애고 내 고집을 없애고 제나를 없앴다.(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논어자한편) 이 말이 공자 나이 얼마 때의 말인 것은 밝히지 아니하였으나 늙어서의 말인 것은 틀림없다. 천명(天命)을 알았다는 오십 살 넘어서의 말일 것이다. 젊어서의 공자는 가정에서 의식주에 대해서 대단히 까다로 왔다. 밥상에 간장 종지만 없어도 밥을 안 먹고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고 한다. 임어당(임어당)이 말하기를 공자의 부인이 가출을 하고 돌아오지 않은 것은 공자의 까탈스런 성격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고 하였다. 그럴듯한 추리라 하겠다.

  

  성자(聖者)의 자질은 그가 깨달은 신관(神觀)에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공자의 신관은 분명히 밝힐 수 있을 만큼의 자료를 남겨 놓지 않았다. 야스퍼스는 공자의 신관은 비인격적인 하느님이라고 말하였다.(야스퍼스소크라테스, 붓다, 공자, 예수) 야스퍼스의 이 말에는 동의 할 수 없다. 공자는 사람의 삶을 일일이 간섭하며 사람을 미워하고 싸우게 하고 벌주고 저주하는 야훼신과 같은 인격신은 안 믿었지만 차원 높은 신격의 신은 믿었다. 그러므로 하느님만이 자신(공자)을 알아준다고 하였다. 인격(신격)이 없는 하느님이 어떻게 공자를 알아줄 수 있겠는가? 제자들이 말리는데도 위령공의 남자(南子) 부인을 만나고 온 것을 자로가 언짢아하자 공자는 내게 잘못이 있다면 하느님이 나를 싫어할(天厭之)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인격(신격)의 하느님이 아니라면 싫어하고 좋아하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이 내게 속알(얼나)을 낳았다.(天生德於予)”(논어술이편) 이 말씀도 대단히 소중한 말이다. 몸뚱이는 땅의 아버지가 낳아 주었지만 내 맘의 진리정신()은 하느님께서 낳으셨다는 말이다. 예수의 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 속에 하느님의 얼이 직접 말씀하신다.”(요한 14:10 박영호 의역)를 생각해 볼 때 분명치는 않으나 놀라운 말씀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자의 말에도 류영모의 이러한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참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하느님(니르바나님)이 계시어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내게 건네주시는 얼(성령)이 참된 거룩한 생각이다. 하느님께서 건네주시는 얼이 없으면 참된 생각을 얻을 수 없다. 참된 거룩한 생각은 거룩한 생각은 하느님과 얼로 이뤄지는 연락에서 이뤄진다. 몸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잘못되고 그릇된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생각 속에 하느님의 얼이 오신다. 생각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하여 염재신재(念在神在)라 한다.”(류영모다석어록)

   공자는 예수 석가 노자와 같은 절대 본무(本無) 절대 허공(虛空)의 하느님을 생각하지는 못하였다. 다분히 다신(多神)의 신관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공자(孔子)는 스스로 자신을 술이부작 신이호고(述而不作 信而好古)라 하여 옛것을 믿고 좋아하여 풀이하지 새것을 짓지 않는다”(논어술이편)고 하였다. 그리하여 괴이한 것 힘자랑하는 것 반역을 하는 것 귀신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不語怪力亂神)”(논어술이편)고 하였다. 공자가 기존에 있던 다신(多神)관에서 차원 높은 절대 유일 신관을 터득하였다면 신()에 대한 언급을 조심하거나 어려워 할 것이 아니라 예수 석가처럼 차원 높은 신관을 거침없이 설파하였을 것이다. 신관의 차원을 높이자는 것이 인류역사가 이어지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옛처럼 하늘에는 천신(天神)이 계시고 땅에는 기신(祇神)이 계시고 사람에게는 귀신(귀신)이 있는 것을 그대로 쫒아 따른 것이다. 그리하여 선조의 귀신이 아닌데 제를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非其鬼而祭之 諂也)”(논어위정편)라는 쓸데없는 소리를 남기게 된 것이다. 하느님의 얼이 있을 뿐이지 우리 귀신  남의 귀신이란 없다.

  “어떤 이가 체제(禘祭)를 지내는 뜻풀이를 물었다. 공자는 나는 모른다. 그 뜻을 아는 이는 천하를 다스리기가 손바닥 드려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논어팔일편)라고 하였다. 그렇게 정성을 다해 지내는 천제(天祭)의 의미를 모르다니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어릴 때부터 소꿉장난도 제 지내는 놀이를 하였다는 공자 아닌가. 그리하여 명제관이 되지 않았던가. 우리가 보면 공자도 기복신앙인의 한사람에 지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바로 알았다면 예수 석가처럼 짐승 잡아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그만 두자고 하였을 것이다. 입에 선지피를 갖다 대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말을 들어보자 하느님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를 올리는 이들은 참인 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얼로 기도하는 이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느님은 얼이시니 기도하는 이가 얼로 예배 올리는 것이다.”(요한 4:23-24) 오늘날 석가의 가르침을 쫒는다는 불교도들이 불상 앞에 절을 하는 것은 석가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참선(명상)을 가르쳤을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음식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안타갑기 그지없다. 진리정신은 언제 깨닫게 될지 모르겠다. 진리정신을 바로 깨달으려면 어버이가 낳아 준 몸나(제나)는 멸망의 생명이라 반드시 죽어야하는 거짓나인 것을 알고 버리고, 제나가 없어진 빈맘에 하느님이 보내신 얼나가 들어와 참나가 된다. 참나인 하느님이 보내신 얼나는 하느님의 생명이다. 영원한 생명이다. 생사(生死)와는 관계가 없다. 몸나는 짐승성질을 지닌 짐승이지만 얼나는 하느님의 영성을 지닌 하느님 아들이다. 예수와 석가는 수성(獸性)의 제나로 죽고 하느님의 생명인 영성(靈性)의 얼나로 솟나라는 것이다. 공자도하느님께서 내게 속알(얼나)을 낳으셨다(天生德於予)”(논어술이편)는 말까지는 하였는데 더 이상의 있어야 할 말이 없다. 뒤에 중용(中庸)에 뒤를 이어 영성(靈性)의 발전을 보일 듯 하다가 쑥 들어가 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한마다 말만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안회가 공자에게 인()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나를 이기어(죽이고) 얼나(하느님)를 회복하면 얼사랑을 하게 된다(克己復禮爲仁)”(논어안연편) ()을 류영모는 이라고 옮겼다. 차별이 없는 사랑 곧 아가페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다. 곧 하느님의 자리에서 하는 사랑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 하지 않는(我不欲 勿施於人)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또 극기복례(克己復禮)하면 내 생각 속에 하느님의 말씀이 나온다. 공자는 말씀을 문()이라고 하였다. 공자(孔子)가 광() 땅에서 광 땅 사람들이 공자 일행을 비적양호로 오인되어 무력으로 공격을 받을 위기에 놓였을 때 공자는 태연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문()을 없애지 않으신다면 광사람들이 나를 어찌하랴(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논어자한편)

()의 사랑과 문()의 말씀이 하느님이 주신 얼나()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와 석가는 하느님이 주시는 얼(성령)을 충령(充靈) 시키기 위하여 수시로 기도 명상을 하였다. 그런데 공자는 이 기도 명상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다만 잠잠히 안다(默而識之)”는 말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기도 명상이 잠잠히 아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 실행하는 이가 하느님 아들이다. 그런데 공자는 예수 석가처럼 가정을 벗어나고 국가를 초월하고 우주와 하나 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삶의 목적을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두는데 이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내 일찍 종일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생각하였으나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하였다.”(논어공야장편) “세상을 떠난 뒤 내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을 것을 걱정한다.”(논어위령공편) 이는 인격적인 미숙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 재여와 부모 사후에 상입는 기간을 일 년이 합당하냐 삼 년이 합당하냐를 두고 논쟁을 하였다.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삼 년이 좋다는 공자보다 일 년이 옳다는 재여의 생각이 더 합리적이다. 류영모는 제사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하였다. “이상(理想)을 실현한 사람만이 위대한 사람이다. 제사는 결국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제사는 잠깐 절하는 것이 제사가 아니다. 평생 동안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제사다. 사람 되는 것이 제사다. 제례는 사람 되는 것의 상징일 뿐이다.” (류영모다석어록)

   

  몸의 나를 극복하여 진리정신(얼나)에 이르고 물질세계를 초월하여 얼의나라(하느님)에 이른 이의 말을 들어본다. 얼이 목마름을 풀어주는 생수요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 저 얼(하느님)은 느껴지고 믿어지나 함이 없고 꼴이 없다. 얼은 하느님께서 주어도 깨달아야지 받지는 못한다. 깨달을 수는 있어도 얼은 스스로가 밑동의 뿌리이다. 하늘 땅이 있기 앞서 이미 있었다. 얼은 하느님이시다. 하늘(우주)을 낳고 땅(물질)을 낳았다.”(장자대종사편) “하느님이 하는 바를 알아서 사람이 해야 할 것을 알면 하느님 아들에 이른 것이다. 하느님이 하는 것을 아는 이는 (정신을) 하느님이 낳았다.”(장자대종사편) “얼나의 사람은 큰 못이 불살라져도 뜨겁게 못하며 황하 강물이 얼어붙어도 차게 못한다. 번쩍하는 번개 뫼를 깨틀어 부수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들 엎어도 놀라게 못한다. 그와 같은 얼사람은 구름이나 바람을 탄 듯 해와 달을 탄 듯 우주 밖에 노닌다. 생사(生死)도 얼나를 바꾸지 못하는데 하물며 이해(利害)의 끄트머리 따위겠는가?”(장자제물론편)

  

  20세기 사람으로 얼나를 깨달은 류영모는 얼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목적이 삶에 있다면 그 참 삶은 하느님(하느님의 얼나라)에게 있지 여기 물질세계의 환상(幻像)에 있지 않다. 땅은 물질로 된 상대세계를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거의가 세상의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지만 기어코 헛일 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하느님에게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둔다. 삶의 근본인 목적이 뒤집어졌으니 매사가 바로 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가질 삶의 참 목적이 없다. 이 땅에서 참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인 참이지 온전한 참이 아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몸을 곧게 하여 하늘에 가까우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사람에겐 할 수 없는 일 해서는 안 될 일이 여간 많지 않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해야 할 일이란 머리를 하늘에 두고 다니는 일이다. 이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요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사모하여 우리의 생각(사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경의를 표할 수 있는 인격은 하느님 아버지와 영적으로 교통할 수 있는 하느님 아들의 자격을 갖추겠다는 데 있다. 피와 살로 된 사람의 몸은 짐승이다. 짐승인 우리가 여느 짐승과 다른 것은 하느님과 교통하는 얼을 가졌다는 것 밖에 없다  얼나는 제나(ego)가 죽고서 사는 삶이다. 말하자면 형이하(形而下)의 몸 생명으로는 죽고 형이상(形而上)의 얼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제나(몸나)로는 죽고 죽을 때 얼나가 드러난다.‘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얼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얼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는 하느님이 맘 속에 보낸 얼(성령)이 예수 자신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깨달은 것이다.“(류영모다석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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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년 10 월 21일 (수) 강의 하실 내용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일시는 10월 21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이고 장소는 장충동

    우리함께 빌딩 6층 강당입니다. (동대입구역 2번 출구 나와 태극당 아래로  내려오다  cafe 7 gram에서 좌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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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복 2015.10.11 17:24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잘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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