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하는 침묵과 찬성하는 침묵이 항상 존재한다.”

by 민원식 posted Dec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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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 세상을 사는 한 사람으로 글을 씁니다.
백 사람이 모두 다른 시각을 가진 세상에서 나름의 눈으로 현실을 생각해 보고싶었습니다.
새로운 시기로 접어드는 때, 아무런 의견도 없이 보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기면서....
때가 때인 만큼 조금이나마 고민합니다.
현실은 그렇지 못해도, 마음이라도 삶을 바르게 하려는 이들은 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른 선택이 절실할 땝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인용한 조악한 글이지만, 중요한 선택을 앞둔 지점에서 스스로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씁니다.
    

자신과 가족,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착취를 일삼는 24시간 영업 김밥집 등의 자영업자가 전체의 34% 인 상황에서, 눈앞의 경기 회복이라는 단견으로는 고된 노동이나 빈곤한 삶을 벗어나기 어렵다. ‘진정한 자본가’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자신들과 몇 명의 주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기 변동에 따라 늘 도산 위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큰 건설사업을 벌여, 예산을 대대적으로 풀고 경기 부양을 도모한다고 해도, 적자를 보거나 월 평균 100만원 이하의 소득밖에 못 올리는 285만 명의 영세 자영업자(전체 자영업 인구의 약 37%)들의 사정이 과연 획기적으로 나아질 수 있겠는가? 논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일 도산해 생계 기반을 잃을지도 모르면서 사는 이들로서는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쪽을 지지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나 괴상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현대적 산업자본주의는, 영국에서는 거의 150∼160년 동안, 독일에서는 약 130∼140년 동안 발전돼왔지만 일본에서는 그 연륜이 90년에 불과하고 한국에서는 아예 30년밖에 안 된다.   서민들은 온갖 불균형과 불평등을 받고 있으나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1960∼70년대 내내(1972년과 1973년만 제외하고) 연평균 지가상승률이 25∼50% 정도를 기록해 부동산 보유자들이 안정된 불로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의 통계에 의하면 부동산 보유자의 총수는 1100만 명 정도 됐다. 전 국민의 4분의 1은 건설 부문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된 토건 경제의 수혜자가 됐으며, 수혜자 반열에 끼지 못하는 상당수 노동자와 영세민들이 죽기 전에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보기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게 된 것이다. 가난뱅이들이 박정희가 설계한 사회 모델을 혐오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는 그들은 박정희 대신에 ‘능력이 없어서 남처럼 잘살지 못한’ 자기 자신을 탓하기만 했다.
5∼10년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계급 갈등들이 폭발의 지점까지 확실히 갈 것이다.
간접고용 규모가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확대되고 정규직조차 언제 비정규직으로 내몰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멀리 찾을 것 없이 우리 둘레에 그런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중산층이 급격히 줄고, 고소득자와 빈곤층은 증가일로에 있는 경제양극화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중이다.  
지금 취업하는 열 명 중에 여덟 사람이 비정규직인 기막힌 현실이다.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경우는 2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바로 경제위축으로 올 가능성이 높다. 전체근로자의 8할이 비정규직으로 소득이 적고, 소득이 적은 만큼 구매력은 줄고, 따라서 판매가 주는 것이 바로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는 경기 침체가 뒤따르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 현 집권세력이나 다음 집권세력으로 예상되는 기득권자들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고 말은 하지만,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복지를 확대한다면서 감세 정책을 말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것은 서민들이 내는 간접세만 올라간다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교통위반을 해도 부자나 빈자나 같은 금액을 내는데, 이는 형평에 맞지 않는다. 같은 과실에 대해, 지불할 부담이 하늘과 땅  차이로 나는 것은 잘 된 일이 아니다. 고급 승용차와 화물차가 같은 세금비율이 같은 기름을 쓰는 것과 같은 것도 문제다. 한번에 될 일은 아니지만, 진정한 민주적 형평이 경제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보다 훨씬 앞에서 민주화를 이룬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서민들이 기반이 되는 노동당이나 사회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번 한번의 선거로 세상이 결정되는 것 아니고, 이번엔 죽은 표가 되더라도 다음을 위한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오늘의 인물이 아니라도, 앞으로 나올 민주적인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 서민을, 사회의 기반이 되는 사람들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을 서서히 다져야 한다.

“책망하는 침묵과 찬성하는 침묵이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져, 우리 권리를 빼앗는다.

유권자의 의식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입니다. 가장 가능성 있다고 여기는 몇 사람들, 그 기득권층에게 서민, 올바른 시민의 뜻을 바로 보여줍시다.

우리에겐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뽑은 전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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