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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8일 김주황목사님 서신

샬롬!

 

다석학회 회장님!

용인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주황 목사입니다.

저는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손자입니다.

김진호 목사님은 전덕기목사님과 독립운동하셨고

배재초대교목이셨으며

1937년부터 종로구 궁정교회에서 담임으로 계셨고

유영모선생님과 자주 만나셨나 봅니다.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1927년도 초서 순한문 무화과 설교집을

어렵게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집을 보면 여러분들의 설교가 적혀 있는데

김진호 목사님이 다석의 설교를 들으면서 순한문으로 적으신

유영모 선생님의 설교가 2편이 들어 있습니다.

2011425() 오후 6시에

상동감리교회에서

출판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초청장을 보내드리겠사오니

관심과 시간 있으시면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용인에서 애산교회 김주황 목사

031)286-5569

010-4336-5570

 

********************************************

다석일지에 찾아보니 김진호 목사님에 대해서 1955.7.2 1955.12.20 1960.9.30 1960. 10. 5 총 네번 언급된 내용이 나옵니다

 

(1955.7.2. 23852)

愛山

九時 祈禱會 뒤에 滄柱兄愛山 金鎭浩 牧師作別次 尋訪하는 길

同伴하야 老先生侍談하고 집으로 回來하다.

 

(1955.12.20. 24023)

日記

日記! 自己 心帖銘記될 거지.

愛山 金鎭浩 牧師 問安야 뵙고

無責任尤를 말슴게 되다.

 

(1960.9.30. 25769)

愛山金鎭浩先生께서 어제18도라가셨다는 슲음듣고

1873. 12. 9. 火曜

其壽從欲詣無欲 기수종욕예무욕

其仁如山 自愛山 기인여산자애산

信斯福音禮靈誠 신사복음예영성

樂夫天命受順安 낙부천명수순안

癸酉 10 .20. 乙未

J.d. 2405502 나시어

1960. 9. 29 木曜

庚子8.9.庚申

J.d. 2437207 도라가시니

누리신날 날 31706

4529

1074

87

多夕生 오구세(5938) 뒤따라왔삽더니러니

欲言聲稀指擬微 욕언성희지의미

擬議言動途已斷 의의언동도이단

九十平生叶無故 구십평생협무고

終當大故問故難 종당대고문고난

 

(1960. 10. 5. 25774)

愛山素砂에 묻히신 사흔날

일즉안분 모도가셔도 계시기 기댑더니

이런말은 뭐입닛가 저런지냄 어떱니까

인제는 네켠도리켜 므를앞이 아득캄

몬혜진몬지 다시지은그릇 빛깔보인때

얼떠러진얼이 그릇쓴몸 다시혜칠

때와터 누리라더만 빗때빚터 빛밑빟

누구하나 못봤지

낯에땟갈 돋고 몬지탄 빛갈을받는 낮에

죽은허물 앞에가도 낯꼴걸고 꽃테두리

드러그 얼골속얼은 거저왔다 가긴가

****************************************************

2015725일 김주황목사님 서신

 

저의 조부 애산 김진호 목사님께서 19609월에 소천하셨죠.

마지막 때 자하문 바로 뒤 부암동에서 거주하셨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다석 유영모 선생님이 오고 가다 자주 뵈었고 나누시던 글 같습니다.

하여간 애산께서 빙어에 기록하신 것을 다 보내 보겠습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또한 저에게 애산께서 적어 놓으신 병중쇄록(미발간) 속에

다석소전(1949년 글)3페이지 정도 있는데

아마 귀한 자료가 될것 같습니다. 출판을 위해 준비중에 있습니다.

용인에서 김주황 올림.

**********************************

095. 다석(多夕) 선생 소전 (1949)

 

다석(多夕)은 유영모(柳永模) 선생(先生)의 소호(小號)이다. 선생(先生)은 유지개결(有志開缺)하여 물루(物累)에 초월(超越)하였으며 창의문외(彰義門外) 삼각산하(三角山下)에 소옥(小屋)을 구()하고 살며 그의 춘장(春丈) 산소(山所)가 우이동(牛耳洞)에 있는데 일일(一日) 일차(一次) 도보(徒步)로 내왕(來往)하였다.

() 60이 넘은 노구(老軀)로 기력왕성(氣力旺盛)하다. 지나는 길이면 매양 노물(老物)을 심문담화(審問談話)하여 사교(邪敎)를 파()하여 준다.

나는 선생(先生)의 호 다석(多夕)이란 뜻이 무엇인가고 물으니 다석요식(多夕要息)하대 영구불식(永久不息)이라 한다. ()은 쉬는 것이다. 저녁마다 쉬기를 요구하되 저녁마다 쉬여지지 않는다. ()은 또 숨 쉬는 것이니 숨은 쉬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그는 장자(莊子) 철학(哲學)을 좋아하여 남화경(南華經)을 애독(愛讀)하는데 장자(莊子)철학(哲學)은 숨 쉬는 철학이다. 고로 영구불식(永久不息)하는 다석(多夕) () ()하여 자호(自號) 하였다.

나는 언제 다석(多夕)을 알았던가. 내가 상동(尙洞) 있을 때 나의 구우(舊友) 김도희(金道熙) 씨를 통하여 다석(多夕)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다석(多夕)은 경신교(儆新校) 학생이오 김도희(金道熙) 씨는 경신(儆新)의 선생(先生)으로 있으며 다석(多夕)을 끔찍이 사랑하여 나에게까지 소개하였다.

김 선생은 높은 학식이 있으며 기일(奇一) 박사와 같이 성서번역(聖書飜譯)에 공로(功勞)가 많았고 또 나와 같이 신민회원(新民會員)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조선복(朝鮮服)이 없어 양복(洋服)을 입고 선생을 찾아 갔더니 선생은 나를 보고 복장이 애국자의 복장이 아니라고 준책(峻責)한다. 선생 용서하시오. 나는 노처(老妻)가 병()으로 조선 복을 만들 수 없어 양복을 입었으니 용서하시오 하고 재삼 사과한 적이 있었다. 선생의 높은 절의(節義)는 흠모(欽慕)치 않을 수 없다. 그때 김 선생의 소개로 다석(多夕)을 만나 나도 그의 개결유지(介潔有志)함을 퍽 사랑하였다. 그 춘장(椿丈)이 장로교 장로였고 또한 유지(有志)한 선생(先生)으로서 3.1운동 때 모험(冒險)한 일이 많았다.

그 자제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또 인격으로 사상으로 많이 감화를 주었다. 다석(多夕)은 그 춘장의 교육을 받을 뿐 아니라 김도희 선생(先生)의 고상한 인격적 감화가 많았다. 다석(多夕)은 일일 일식주의를 지킨다. 24시간 저녁 한 끼만 먹어도 건강에 조금도 손상이 없고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 몸이 가벼웁고 정신이 청쾌하다. 이것이 장자의 담연무욕에서 기인되었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먹자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먹어야 사는 세상에서 한번만 먹고 어찌 사느냐고 비평하는 사람이 있으나 하루 한 끼만 먹고 무병하게 잘사는 다석(多夕)이 있으니 살 수 있는 것을 족히 증거 할 수 있다.

나는 40년 전인가 봄을 탐하여 경북 문경군 청화산에 들어간 일이 있는데 깊은 ** * 암상(巖上)에 한 남자가 앉았다. 그는 15일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또 먹지 않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나는 믿지 않고 산하(山下) 동리 사람들에게 물으니 과연(果然)이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맘에 잊지 않고 기억이 된다. 오늘도 다석(多夕) 선생의 생활을 보고 또 청화산인을 생각하고 일식주의가 못할 일은 아니라 믿어진다. 그 동리 사람들이 다석(多夕) 선생이라 부르지 않고 일식주의선생이라 부른다. 그 부근 신영리 감리교당을 방매하였다가 ** 후에 도로 예배 보려고 하나 그 집을 맡은 방수원 씨가 집을 명도(明渡)치 않아 예배도 정지(停止)하였다. 나는 그 교회(敎會) 일을 다석(多夕)에게 부탁하고 만년(晩年)에 주의 사도(使徒)가 되어 마귀(魔鬼)와 싸워보라고 말하였다. 중앙청년회관(中央靑年會館)에 일주(一週) 한번 씩 가서 복음(福音)을 들려주는 일이 있는데 과히 바쁘지 않으면 역방(歷訪)하여 복음(福音)을 이야기하고 그렇지 않으면 노장철학(老莊哲學)을 이야기하여 **를 써서 준다. 나는 만년(晩年)에 누구로 더불어 돌아 갈가. 반듯이 다석(多夕)이라고 믿어진다.

나는 근일(近日)에 무달(無怛)을 주장하였다. 무달(無怛)은 무달화(無怛化)란 말을 시인(是認)함인데 화무달야(化無怛也)****이면 낙천천령 검소*** 함이 그 해석(解釋)이다. 사람이 떠날 때 슬퍼하고 두렵게 떠남은 심저(心底)에 아직 미진(未盡)**이 있는 까닭이니 나는 오날 다석(多夕)에게 해석(解釋)을 배우고 또 무달(無怛)을 배웠다. 생시(生時)*달이 없는 숨 떠날 때에도 *달이 *하리라. 다석(多夕)이 말하기를 이렇게 살아가면 몇 해 후에 떠나는 시간까지 알아진다고 말한다. 나는 쉬- 하고 함구(緘口)를 부탁(付託)하였다. 이것은 천기(天機)라 주께서 너희 알바 아니다 하였으니 우리의 사기는 우리의 알바 아니오. ()께서 자기(自己) 뜻대로 정()함이라. 다석(多夕)은 말하지 마시오. 우리의 숨 쉬는 동안은 사는 때라 하고 허허 웃고 흩어진 일이 있다.

 

096. 무달 (무달화야) 713

 

달은 도달이니 슬퍼하는 뜻이다. 장사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고 영웅의 기를 꺾는 것은 곧 *이라 하니 이것이 세인들의 이르는 말이다. 병이 무엇인가. 배고픈 것, 헐벗는 것, 자식 없는 것, 돈 업는 것, 모든 핍박당하는 것 등이다. 우리 겨레가 삼6년 동안 고생할 제 얼마나 눈물겨웠는가. 이 슬퍼하는 일은 자기만 위하여가 아니요. 온 나라 온 민족 크면은 세계까지 위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을 위하여 우시고 나사로 위하여 우시고 나중에는 온 인류를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셨다. 사람치고는 이 무달이란 정서가 없는 이가 없다. 무달이 어디에서 오는가. 죽음의 공포가 만드는 것이요. 또 죽음은 어디로 오는가. 죄악에서 오는 것인즉 죽음과 죄악 두 가지만 없으면 무달이란 말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죄 없는 사람 없고 죽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이에 대하여 책임지고 해결할 자 누구인고? 석가도 아니요 공자도 아니다. 불은 이 문제를 인과로 해결을 지었으나 안심을 얻지 못한다. 병이면 명의 원인이 있으니 무슨 원인이든 그 결과와 병이 난하여 고치겠다 생각지 않고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그의 고통은 말할 수 없다.

왕양명 선생이 어느 ** 승을 보고 문답하였다. 승은 출가 후 여러 해 부모를 이별하고 가보지 않고 산사에서 **하여 꿇어 앉아 여러 해를 지내였다고 선생은 그 옆에 앉아 부모님의 봉양 ** 은혜를 설명하고 승은 이렇게 여러 해 꿇어 앉아 부모님 생각이 나지 않는가. 승은 그 말을 들은 즉시로 **이 눈물을 흘리었다. 그러면 그 승은 억지로 인정과 세사를 떠나서 승이 되는 것뿐이다. 예컨대 나무를 억지로 굽혀 무슨 그릇을 만드는 것 같다. 이것은 무달이 없는 지경이 아니요 억지로 조작한 것이다. 참된 무달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서 자유론 심경이 아니면 안된다.

예전 장*가 사랑하는 처가 죽었는데 물장구를 치고 노래하였다 하니 사람의 자연화를 노래함인데 그 심경은 참 해방이라 할 수 있다. 유교에서 **종신으로 무달이라 한다. 고로 증자가 **시에 제자를 명하여 왈 **위하여 ***하라 시시전전긍긍하여 ****하여 ****이라 하니 *******라 하였으니 지체발부는 수지부모라*****야라 한 고로 증자는 죽을 때까지 조심하여 부모 주신 몸을 상하지 않고 오전 해가 지고 가는 것을 무달이라 하였다. 무달이라 함은 **가 없는 때에 되는 일인즉 **는 자기의 책임이 불선할 때 선의 길로 돌아서는 일이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넘어진 후 자기의 과거를 확실히 뉘우쳐 고치고 주를 의지할 때 비로소 무달에 들어왔다. 고로 그의 간증하는 말에 누가 나를 대적하리요 누가 나를 송사하리요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누가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렇게 위대한 간증을 하였으니 과연 그는 무달의 경역에 들어왔다. 자기가 자신으로서 이런 대용을 얻었는가. 그는 그 배후에서 권세와 힘과 정의로 도와주는 이가 있는 고로 자기를 증거 함이 아니라. 그 배후에 계신 이를 증거함이라.

 

097. 19491119일 조 경성 초전

 

지금 여년이 77이라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으리오. 나의 신체, 나의 생명, 나의 영혼, 나의 생사 전부를 다 하나님께 위임하고 적위 나의 것이란 하나도 없다. 몸조차 생명조차 내 것이라 하지 않고 나의 생활은 공수뿐이니 무엇을 염려하리오.

이렇게 생각되기는 19458월에 소련군이 청진 상륙하던 날 포화가 빗발같이 쏟아지는 고로 할 수 없이 산을 넘어가는데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을 줄 알았더니 다행이 살아났고 그 후에 병으로 죽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때 또 살아났으니 이 몸과 생명은 나의 것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이것나의 무달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나의 죽음은 주께서 맡았으니 두려울 죄까지도 주께서 맡으셨으니 내 어찌 두려워 하리요. 나의 의행을 예컨대 빙산을 지냄 같으니 빙산을 지내면 저 건너편 나라는 젖이 흐르고 꿀이 흐르는 세상을 목도하면서 갔다. 빙산 지나는 동안 괴롬이 불무하나 믿음으로 보이는 세상을 보며 나아갈 것이다. 오는 세상의 영*이 나로 하여금 용기 있게 하고 또 무달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하여 청진 보안서에 검거 되여 소위 조선형사가 권총으로 쏘려고 하는데 나는 *** 일절 공포가 없고 소군사령부로 넘어가서 소장이 역시 권총으로 쏘려하나 나는 조금도 공*치 않고 도리어 웃으며 심문을 답하니 소장이 말하되 왜 웃으냐 한다. 그러면 무서워하면 좋으냐 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어디서 났는지 모르고 집에 나와 **하니 주의 은혜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 고로 믿음의 결과는 무달이다. 정일형 박사는 어디 혼례식장에서 양복*하의 외투와 모자 전부를 쓰리가 가져가고 **기도 없이 집에 돌아왔건만 그 심정이 태연자약하였다. 우리는 무달의 생활을 금생과 내생에 계속하자 함이다.

***************************************

 

다석일지

 

(1958. 10. 31. 25069)

逝辭

世間多祝壽 세간다축수 天上不遠歸 천상불원귀

囹圄長期囚 영어장기수 遊魂爲變籌 유혼위변주

自己己分

無命自生絶不得 무명자생절부득 精氣自瀆味而孼 정기자독미이얼

有分自棄能而非 유분자기능이비 渴口自易未嘗試 갈구자이미상시

(1959. 3. 1. 25190)

君子行

欲之而所樂不存 욕지이소락부존 達窮所性不加損 달궁소성불가손

樂之而所性不存 박지이소성부존 故有天下不與焉 고유천하불여언

 

(1959. 3. 3. 25192)

초유

四十周遊子宮兒 사십주유자궁아 禁中治外亂名色 금중치외란명색

七十輪廻母國人 칠십윤회모국인 萬古一今自天民 만고일금자천민

 

(1959. 3. 4. 25193)

나와 모든 거

스면도 있고 좋다도 있지만 바탈은 아니.

뒤떠들어도 말 못여도 더 이 없으니

므로로 뉘 일 다 봐도 내 더런게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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