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 줄 올립니다.

by 민원식 posted Nov 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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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2호선 타고 집으로 갈 때, 신도림역에서 다시 전철을 기다립니다.
낮은 스레트 지붕의 공장들만 가득하던 곳에 고층 건물들이 개천 가까이 밀려든 지 오래지요.
천변으로는 자전거길, 산책로 깔리고,  그 위의 찻길엔 차량이, 철길엔 끊임없이 큰 소리로 달리는 기차. 참 번잡하게 변했지요.
그래도 개천가엔 풀이 자라고, 아직은 백로나 왜가리가 물속에 서 있는 한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가한 눈을 뜬다면요.
밀려드는 콘크리트와 쇠뭉치들 사이에 사는 것은, 백로나 저나 같은 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죽는 것도 그렇구요.


         생각의 강, 그 흐린 흐름- 멎다.  

전철역 옆 개천에, 하얀 새 한 마리.
흐린 물에 발 담고, 흰 그림자 흘린다.
돌처럼 굳은 눈길로 물속 세상 꿰뚫고,
어렵게 살아온, 구정물에서 어렵게 죽어온 물고기의 삶을 거둔다.

탁류에 발 담근 새를, 새처럼 조용히 바라보며
물고기 기다리듯 전철을 기다린다.
올 것 오고, 사람에 묻혀 기차로 빨린다.

내 갈길 아닌 것 같다.
내 길이어도, 나는 나 아닌 듯하다.  
탁류에 그림자 무심히 흐르듯,
난 그렇게 흔들리며 - 흐르고 - 흩어진다.

그래!
이게 만족한 삶, 지금이 만족이야!
물고기가 백로에게 가고,
나는 기차로 가, 그 흐름에 사라지고-

목적 없이 살아온 세상-
모자란 듯, 억울한 듯 살아온 한 세상-
그게 만족한 삶- 만족할 삶이지.

목적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던가!

 

 

 

 

 


순창에서 맞은 어느날 아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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