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기와 따지기

by 김진웅 posted Sep 2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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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기, 따지기


 며칠전 참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오십을 넘어가면 ‘우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골로 내려와 노인과 함께 둥지를 틀 때 노인은 우기고, 농사꾼은 따졌던 것 같습니다.

희붐한 기억을 더듬느라 힘든 노인에게 또렷한 기억을 가진 농사꾼이 근거를 들이대며 따졌다는 얘깁니다.

결국 노인은 당신의 기억을 우기다가 스스로 자괴감에 말 수가 줄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습니다. 노인도 농사꾼처럼 기억이 또렷한 줄 알았어요.

잘못은 바로 잡아야만 하는 것으로 알아온 농사꾼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않고서 그냥 넘어가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그때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사람의 감정이, 이성의 잣대와 사실의 잣대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이 아무리 옳고 좋아도 내 감정이 뒤틀리면 귀 밖으로 듣는 걸 그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마 부처님 말씀도 예수님 말씀도 바로 듣지 않으려 할 겁니다.


 친구의 말처럼, 어제 저녁 일도 아렴풋하게 여겨지는 오십의 나이에 이르면,

눈도 흐리고 귀도 흐려져 스스로도 늙어감을 실감하는데 옆에서 늙었다는 증거를 일일이 들이대면

기분이 상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간 나쎄가 젊은 농사꾼이, 노인에게 준 마음의 상처가 참 컸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노인의 나이가 된 지금에야 하게 됩니다.

그 나이가 되어보지 않으면 알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세대 간의 의사소통!

여기서 우기기와 따지기를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원융무애(圓融無碍 : 원만하여 막힘이 없어 거리낌이 없는 상태)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외려 생각은 외곬으로 깊어지고 굳어져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해 지는 것 같습니다.

친구의 얘기를 빌면 어릴 때 상처는 벽에 사춤 치듯 상처에 흙을 쓱 발라놓아도 쉬이 낫지만,

나이가 들면 잘 낫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릴 때야 놀면서 온갖 험한 소리를 다 들어도 자고 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친구가 되어 놀지만, 그러나 늙어서는 그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 없음의 경지, 즉 무아(無我)를 실천하는 일이 인생 공부의 끝이라지만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많이 배우고, 보고, 들은 것은 내 생각의 철옹성을 쌓는 일에만 사용했을 뿐,

결국은 생각도 몸처럼 굳어져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잊어도 좋을 일은 생경스럽게 잘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은 금방금방 잊어버리는 나이가 이 오십 고개의 나이인 것 같습니다.


 해서 나이 오십 전의 사람은 오십이 넘는 사람에게 그이의 흐린 기억이나 생각에 대해 너무 따지지 않는 것이,
또 오십이 넘은 사람은 자기의 기억이나 생각을 너무 우기지 않는 것이

서로간의 감정에 상처를 주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아니겠는가를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