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거기

by 정유철 posted Sep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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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 한다는 녀석과 반에서 가장 공부를 못한다는 녀석을 불러 세우고 말한다.

“너희 둘은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니?”

공부를 못하는 녀석은 숫기가 많아 수줍어하지도 않고 웃고, 공부를 잘 하는 녀석은 기분이 나쁜지 피식 웃고 만다.

가장 지능이 높다는 원숭이보다 사람은 몇 백배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이라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는 힘이다. 생각하는 내용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말이고 글이다. 그러니까 말하고 글을 쓸 줄 안다는 것은 참 얼마마한 능력인지 모른다. 사람을 따르는 개가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개가 말을 하고 글을 쓴다면 생각한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개는 할 줄 모른다.

말하고 글을 쓸 줄 아는 아이들, 그러니까 생각하는 아이들은 그것만으로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아이들 사이에서 누구는 공부를 잘 하고, 누구는 못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참 작은 차이다.

어른들은 두 아이가 있으면 누가 더 나은지 알고 싶어 한다. 꼭 한 놈한테 더 많은 금덩이를 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둘을 견주고 더 낫고 더 못난 놈을 가리고 싶어 한다. 그러면 미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카인은 동생을 죽이지 않았던가.

공부를 잘한다는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한다. 반에 앉은 아이들 대부분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어떤 아이는 손뼉을 친다. 그런 칭찬을 듣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우리는 거기서 거기다. 백 미터를 구초 구륙에 뛴다는 볼트하고 백 미터를 십 오초에 뛰는 나하고 모두 폭탄이 터지면 죽는다. 몇 초 차이를 마치 엄청난 차이처럼 여기고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고 생난리를 피는 사람들을 보면 참 우습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히틀러는 참 열심히 살았다지? 전쟁터에서 군인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 열심히 산다는 게 뭘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사느냐. 그 방향이 바르지 못하면 게으른 것만 못하다.

나는 서른 다섯 나이에 겨우 깨달았다. 전교 1등이나 전교 꼴등이나 거기서 거기다. 이걸 표어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게 되기까지 이십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