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깽이와 불쏘시개
날이 그리 차지는 않지만 그냥 잠을 자기엔 추워서 요새는 거의 매일 군불을 때고 있다.
불을 때면서 늘 생각하는 게 불쏘시개와 부지깽이의 역할에 대해서다.
불쏘시개..이는 장작에 불을 붙게 하여 장작불이 방을 데울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성냥개비로 불을 그어 장작에 불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불쏘시개는 그 자체로써 방구들을 데우지는 못해도 장작에 불을 붙여 구들을 데울 수 있게 한다.
불쏘시개가 장작에 불을 붙여 장작이 활활 타들어가다가도 어느 순간 연기가 나고 잘 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잘 타들어가던 불꽃도 어느 순간 사그라들며 숯을 남기려 한다.
이때 부지깽이가 필요하다.
잘 타지 않고 연기가 많이 날 때는 부지깽이로 장작을 살살 움직여 공기를 불어넣어 주면
장작은 다시 잘 타들어간다. 그리고 사그라들던 장작 또한 부지깽이로 한데 모아주면
다시 힘껏 제 몸을 불사르며 타들어간다.
그러나 부지깽이의 이런 좋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역할이 있다.
바로 불을 꺼뜨리는 역할이다.
불을 붙일 때 잘 붙게 하려고 부지깽이로 불쏘시개든 나무를 건드리면
십중팔구 불은 붙지 않고 꺼지고 만다.
불쏘시개에 불이 옮겨 붙으면 어느 정도 가만히 두어 제 힘으로 불쏘시개를 태울 수 있게 지켜보아야 한다.
옮겨 심은 나무를 자주 돌보면 죽어 버리는 이치와 거의 같은 것이다.
또한 맹렬히 붙고 있던 장작도 부지깽이로 흩뜨려버리면 금방 그 화력을 잃고 꺼져 버린다.
세상일에 눈을 돌려본다.
감을 따고 있는데, 고향 쪽에서 감 농사, 벼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감농사도 흉년인데다 감 값도 별로라 재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오늘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주인 왈, ‘요새는 길거리에 사람새끼가 얼씬도 거리지 않는다.’며
독설을 퍼붓더라는 얘기를 했다. 사실 그렇다. 올해가 귀농 후 제일 감이 팔리지 않는다.
늘 주문을 해 주던 지인들도 망설이고 있는 걸 보면 살기가 팍팍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일이란 좀 여유가 있을 때 사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꾼이야 감이 팔리지 않으면 손에 돈이 덜 들어오는 것일 뿐 크게 손해가 나는 일은 없지만,
도회지에서 월세든 전세를 얻어 장사를 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어쩔까 싶다.
나라는 가뭄으로 타들어가고, 민생은 이처럼 살기 어려운데
지금 이 땅의 지도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지 궁금하다.
말로는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긴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지도자는 부지깽이와 같다.
백성들이 숨구멍이 막혀 힘겨워할 때 숨통을 트여주어 숨쉬기를 편하게 해 줄 수도 있고,
잘 살고 있는 백성들의 힘을 흩뜨려 기운을 빼는 일도 할 수 있다.
도덕경 17장에
가장 훌륭한 지도자(太上:태상)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도 알려지지 않는 지도자(不知有之:부지유지)라 했고,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란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侮之:모지)라 했다.
이 땅의 지도자는 과연 어느 반열에 서 있는 것일까..?
장작불을 잘 피우려 장작을 너무 들썩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불은 꺼져가고 온 나라 안이 연기로 가득 차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