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 언님의 아래 글이 많은 생각을 낳게 합니다.
나라고는 없다고 했는데-
온 우주가 내 집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다석님은 1956.12.6. YMCA강좌에서
무거무래역무주(無去無來亦無住)를 강의하면서 우주인을 말씀하십니다.
“어디에 사십니까?”
“우주에 삽니다.”
대답이 이쯤은 되어야 우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아가
우주인으로서 잠은 어디서나 자면 되고
음식은 아무것이나 먹으면 된다고 하시면서
산다는 것이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다석님 말씀에 비춰보면 “온 우주가 내 집”이라고 생각하시는
정수복 언님은 우주인이 분명합니다.
온 우주가 내 집인 우주인 언님께서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하고 물으시니
듣는 이는 어리둥절할 뿐입니다.
온 우주 전체가 내 집인데 가고 오고할 다른 집이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적인 네 집 내 집, 여기 저기가 있어야 가고 옴이 있지
절대 우주 전체가 내 집인데 가고 옴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주인에게는 가고 옴이 없습니다. 무거무래(無去無來)입니다.
그렇다면 우주인은〈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까?
다석님은 다음과 같이 무주(無住)를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기〉는 영원한 미래와 영원한 과거 사이에 접촉하고 있는
한 점이며 〈지금 여기〉사는 내가 그 접촉점을 계속 찍어나갑니다.
가온찍기 입니다.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묵는 것은 몸뚱이 껍데기만 묵는 것이지
생각의 불꽃인 “내”가 묵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묵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생명은 자기의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묵지를 못합니다.
묵는 것도 가는 것입니다. 자는 것도 가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은 새로 나가며 사는 것입니다.
묵어가는 것은 참나가 아닙니다.
머무를 곳 없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몸뚱이만 가지고 사는 것은 생심(生心)입니다.
몸뚱이의 충족은 죄악을 낳습니다.
맛을 그리워하거나 무엇을 좀 더 했으면 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못씁니다.
뭔가를 보아야겠다고 하가나 좋은 소리를 좀 듣겠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마음이 거기서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상과 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 “무주(無住)”입니다.》
다석강의 292~302쪽
“나라고는 없다.”고 하시는 언님은 “무주(無住)”에 살고 계시네요.
매임 없는 “무주(無住)”에 살고 계시는
우주인 정수복 언님!!
많은 생각을 하게 하여주신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