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백
저는 올해 60이 되었습니다.
흔히 “60이상의 노인세대” 이렇게들 얘기하니 저도 이제 노인세대로 들어가나 봅니다.
큰일을 치루고 나면 몸 회복이 더딥니다.
기억력이 부쩍 떨어져, 옛날이면 대강 몇 페이지, 중간쯤이라든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던 내용들이 심지어는 어떤 내용이었든지 조차 가물거립니다.
새로운 것이 입력이 잘 안됩니다.
책을 잠시 쉬었다 읽으면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일쑤고
혹 그 내용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옮길라 치면 세부적인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생뚱맞은 대답을 하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습니다.
얘기나 당부를 되풀이하여 자식들에게 구박을 당하기 일쑤구요.
시력이 떨어져 텔레비죤을 앞 쪽으로 당겨 놓았습니다.
눈이 나빠져 책을 보는 시간 보다 쉬어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구요.
산행을 하노라면 쉬운 코스로 가자해서 동행하는 이가 “노인네하고 다닐래니, 거 참” 하고 웃습니다.
부엌에서 그릇을 놓쳐 많이도 깨뜨립니다.
음식을 먹노라면 정말 맛있구나 하는 감각도 떨어지고 국이 자꾸 짜집니다.
“아이고, 늙었구나” 싶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나이만큼 안 보이나 봅니다만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제가 느끼는 노화는 분명합니다.
60.
인생의 한 싸이클이 돌았습니다.
한 싸이클이 돌았다니 이제 부터는 덤이고, 다시 시작입니다.
덤의 삶이 주어졌으니 감사고
새로운 시작이면 저도 무언가 달라져야겠습니다.
신체도 지적인 노화도 이미 커졌으니 처음과 같을 수도 없고
또 한 생을 살아봤으니 같아서도 안 되겠지요.
암기력이 떨어졌으나 이해력은 좋아졌습니다.
세부적인 것은 놓지나 통찰은 깊어져야겠지요.
작은 것은 흘려보내고 큰 테두리를 보는 힘은 커져야겠습니다.
이제, 밖을 보는 눈이 침침해졌으니 마음의 눈을 뜨고 봐야겠습니다.
지식의 축적이 어려워졌으니 지혜 로와 져야겠습니다.
행보가 느려졌으니 가슴을 열어 따뜻해지고 싶습니다.
몇 년 동안 나이를 잊고 살았습니다.
쉰여덟 인지 아홉인지 나 자신 별 상관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군요.
60.
앞뒤를 가르는 기준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돌아보고 새로이 출발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생의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 인생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생을 살려면 다시 태어나야겠지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리석었음을 알았으니 현명해지고 싶습니다.
실수가 많았으니 그 실수로 인한 깨달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좌절이 많았으니 희망이 그 좌절로부터 나옴도 알아야겠습니다.
어둠이 있었으니 빛이 어둠으로부터 나옴도 깨달아야겠구요.
물질의 창고는 비었으니 마음의 창고로 바꾸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내 고통이 컸던 만큼 너그러워지고 싶습니다.
나에게서 맴 돈 삶이었으니 넓게 보고 큰마음으로 살아야 될 것 같습니다.
혼자 온 삶이었으니 앞으로는 함께 가야겠습니다.
혼자 걷는 길이 외로운 줄 알았으니 손잡고 같이 걷고 싶습니다.
팔장도 끼고 어깨도 감싸 안고 등 두드리며 함께 가고 싶습니다.
삶 자체가 신비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은총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전반의 삶이 푸욱 썩어 후반 삶의 거름이 되어야겠습니다.
60이라는 나이에 책임을 느낍니다.
정확히 내년 10월 5일이면 만 60이 됩니다.
그래도 1년 넘어 시간이 있다는 게 아직 흠 많은 제 모습을 보며 위안이 됩니다.
그 날까지는 제가 잘 썩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렇다고 그 날까지 충분히 썩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의 나날들을 그리 살도록 염원을 둡니다.
“삶의 고백”이란 이 시간을 통해 제가 자신과 진지하게 대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한백과 들어주신 한백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이 혼자서는 게을러지기 쉬우니 제가 게을러지면 따끔한 일침을 주시도록 도움을 청하며, 또한 그 일침을 제가 얼른 알아차리도록 이끌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저는 올해 60이 되었습니다.
흔히 “60이상의 노인세대” 이렇게들 얘기하니 저도 이제 노인세대로 들어가나 봅니다.
큰일을 치루고 나면 몸 회복이 더딥니다.
기억력이 부쩍 떨어져, 옛날이면 대강 몇 페이지, 중간쯤이라든지 이렇게 기억하고 있던 내용들이 심지어는 어떤 내용이었든지 조차 가물거립니다.
새로운 것이 입력이 잘 안됩니다.
책을 잠시 쉬었다 읽으면 앞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일쑤고
혹 그 내용이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옮길라 치면 세부적인 표현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생뚱맞은 대답을 하거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습니다.
얘기나 당부를 되풀이하여 자식들에게 구박을 당하기 일쑤구요.
시력이 떨어져 텔레비죤을 앞 쪽으로 당겨 놓았습니다.
눈이 나빠져 책을 보는 시간 보다 쉬어야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구요.
산행을 하노라면 쉬운 코스로 가자해서 동행하는 이가 “노인네하고 다닐래니, 거 참” 하고 웃습니다.
부엌에서 그릇을 놓쳐 많이도 깨뜨립니다.
음식을 먹노라면 정말 맛있구나 하는 감각도 떨어지고 국이 자꾸 짜집니다.
“아이고, 늙었구나” 싶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나이만큼 안 보이나 봅니다만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 제가 느끼는 노화는 분명합니다.
60.
인생의 한 싸이클이 돌았습니다.
한 싸이클이 돌았다니 이제 부터는 덤이고, 다시 시작입니다.
덤의 삶이 주어졌으니 감사고
새로운 시작이면 저도 무언가 달라져야겠습니다.
신체도 지적인 노화도 이미 커졌으니 처음과 같을 수도 없고
또 한 생을 살아봤으니 같아서도 안 되겠지요.
암기력이 떨어졌으나 이해력은 좋아졌습니다.
세부적인 것은 놓지나 통찰은 깊어져야겠지요.
작은 것은 흘려보내고 큰 테두리를 보는 힘은 커져야겠습니다.
이제, 밖을 보는 눈이 침침해졌으니 마음의 눈을 뜨고 봐야겠습니다.
지식의 축적이 어려워졌으니 지혜 로와 져야겠습니다.
행보가 느려졌으니 가슴을 열어 따뜻해지고 싶습니다.
몇 년 동안 나이를 잊고 살았습니다.
쉰여덟 인지 아홉인지 나 자신 별 상관이 없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군요.
60.
앞뒤를 가르는 기준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돌아보고 새로이 출발해야 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생의 전반기가 끝나고 후반 인생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생을 살려면 다시 태어나야겠지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리석었음을 알았으니 현명해지고 싶습니다.
실수가 많았으니 그 실수로 인한 깨달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좌절이 많았으니 희망이 그 좌절로부터 나옴도 알아야겠습니다.
어둠이 있었으니 빛이 어둠으로부터 나옴도 깨달아야겠구요.
물질의 창고는 비었으니 마음의 창고로 바꾸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내 고통이 컸던 만큼 너그러워지고 싶습니다.
나에게서 맴 돈 삶이었으니 넓게 보고 큰마음으로 살아야 될 것 같습니다.
혼자 온 삶이었으니 앞으로는 함께 가야겠습니다.
혼자 걷는 길이 외로운 줄 알았으니 손잡고 같이 걷고 싶습니다.
팔장도 끼고 어깨도 감싸 안고 등 두드리며 함께 가고 싶습니다.
삶 자체가 신비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은총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전반의 삶이 푸욱 썩어 후반 삶의 거름이 되어야겠습니다.
60이라는 나이에 책임을 느낍니다.
정확히 내년 10월 5일이면 만 60이 됩니다.
그래도 1년 넘어 시간이 있다는 게 아직 흠 많은 제 모습을 보며 위안이 됩니다.
그 날까지는 제가 잘 썩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렇다고 그 날까지 충분히 썩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의 나날들을 그리 살도록 염원을 둡니다.
“삶의 고백”이란 이 시간을 통해 제가 자신과 진지하게 대면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한백과 들어주신 한백 식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제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이 혼자서는 게을러지기 쉬우니 제가 게을러지면 따끔한 일침을 주시도록 도움을 청하며, 또한 그 일침을 제가 얼른 알아차리도록 이끌어 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