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저는 또 한 번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느낍니다.
1.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것
지난 해 가을은 참 힘도 들고 심(心)도 들었습니다. 농부는 사계절 중 여름과 겨울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름엔 태풍, 장마가 너무 큰 시련을 주고, 겨울엔 삭풍이 몸과 마음을 다 시리게 하거든요. 해서 농부는 봄, 가을을 좋아합니다. 봄엔 씨 뿌리는 재미-일 벌리는 재미, 가을엔 거두는 재미가-일 줄이는 재미, 있거든요.
그런데 작년 가을엔 거둘게 별로 없었습니다. 콩은 종자도 못 건지고, 무 배추는 큰 집에서 얻어와 겨우 김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작년 저희 길벗농원 단감은 참 귀했습니다. 농약과 화학비료에만 의존하는 일반 관행농으로 짓게 되면 8t에서 10t의 분량이 나오는 과수 물량이 겨우 2.5t으로 마무리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둘게 참 많았습니다. 밤은 작년만큼 거둘 수 있었고 감은 작년보다 배나 거둘 수 있었습니다. 관행농의 절반 수준이지만, 어쨌던 지난 해 2.5t으로도 한 해를 버티고 살아왔으니 큰 변화가 없는 한 내년 가을까지는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옥수수, 조, 수수도 먹을 만큼 거두었고, 메주 쑬 콩은 물론 사야 했지만 그래도 밥에 넣어 먹을 콩 정도는 거둘 수 있었고, 무. 배추는 남에게 인심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양이 넉넉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가을엔 힘은 들어도 심(心)이 들지 않는 즐거운 날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게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제행무상은 아닐련지요?
* 다음에 제법무아 올려드리겠습니다. 냉방에서 컴을 하다보니 손이 시려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