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守岩 칼럼

동서 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 철학·종교·사상가다석 류영모

내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게 진짜 행복

기사입력: 2016/03/30 [18:32] 최종편집: 매일종교신문

 내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게 진짜 행복

박영호 다석사상연구회장 다석 탄신 126주년 기념회서 열강

 

박영호(朴永浩·83) 다석사상연구회 회장은 한국의 사상가이자 종교가인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의 1세대 애제자 가운데 막내이다. 1959년에 스승을 만나 1981년까지 20여 년간 다석을 가장 가까이 모신 인물이다. 그는 평생을 다석사상 연구와 실행에 매진해 왔으며, 지금도 매주 한 차례 성천문화재단에서 다석사상을 강의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 311일 서울 영등포구 63로 라이프오피스텔 1310호 성천문화문재단 강의실에서 열린 다석 탄신 126주년 기념강연회에서도 다석은 내게 누구인가를 주제로 열강했다. 그는 이날 나도 연로해 올해를 끝으로 강연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다음은 원로 사상가 박 회장의 강연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영적으로 거듭나야 진짜 선비참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다석은 예수나 석가와 같은 반열에 선다. 이 말을 하면 기독교나 불교 신자들이 깜짝 놀라겠지만, 다석을 우상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되레 예수와 석가를 우상화하는 것이 문제다.

예수는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다고 했고, 석가는 모든 물질은 항상됨이 없다. 허공만이 항상된다고 했다. 만유보다 큰 것은 허공밖에 없으니,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합이나 한 것처럼 거의 맞다. 다석도 사람이 되자면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는 또 땅의 아버지는 아버지라 말라고 했고, 석가는 고향 가빌라성에 돌아와 밥 얻으러 다니는 것을 핀잔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샤카족이 아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깨달은 삶을 살았다. 다석 역시 사람이라면 하느님과의 사랑에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했다. 몸뚱이는 죽지만, 영적인 생명은 안 죽는다. 영적인 붓다나 영적 예수는 소멸하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참나를 깨달은 사람은 극히 적다. 석가는 자기 손톱에 흙을 올려놓고 참나를 깨달은 사람이 손톱 위의 흙만큼 적다고 표현함으로써 많은 제자들이 참나를 깨닫기를 바랐다. 공자도 천생덕어여(天生德於予: 하늘이 내게 덕을 내렸다)’를 말했다.

참나와 영적인 생명을 뜻하는 덕은 같은 개념이다. 사람은 부드러워야 한다. 인격의 완성은 부드러움이다. 정치인들이 너무 사납지 않고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어떤 어려운 국면에서도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 군자는 짐승 성질을 갖거나 소인배가 돼서는 안 된다. 소인배들이 서민을 수탈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는다고 선비가 아니다. 영적으로 거듭난 사람이 진짜 선비다.

 

본인은 19822월 다석 선생이 돌아가신 그해 가을 48살 때 얼나를 체험했다. 속이 확 열리는 듯한 활연관통(豁然貫通)을 느낀 것이다. 몸뚱이에서 짐승 냄새가 안 나고, 탐욕과 이기심, 음심이 사라졌다.

 

박영호 회장은 내가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고 말했다. ©

 

인간은 대통령 되려고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인생은 영원한 생명을 깨닫는 여정이다. 붓다나 예수는 스스로 해놓은 일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영적인 삶을 깨닫고 갔을 뿐이다. 다석도 해놓은 일이 없다고 했다. 참나를 깨달았을 뿐이다. 지옥에 갈지, 천당에 갈지 떨 것 없다. 죽으면 참나로 돌아가 하느님께 원대 복귀하는 것이다. 죽으면 개체가 아니라, 얼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붓다는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없애려고 했으나, 본래 괴로움은 없앨 수 없다. 죽는 것 겁내면서 하느님을 믿고, 부처를 믿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부처님은 스스로 자손을 끊었는데, 부처님 앞에 가서 아들 딸 낳아 달라고 비는 것은 어불성설이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다석은 처음 자신을 만난 뒤, 6년 만에 내게 홀로서기를 가르쳤다. “우리가 사귄 지도 여러 해가 지났으니, 각기 제 노릇을 할 때가 되었다며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하지 말라고 했다. 이제 젖떼기를 할 만큼 자랐으니,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받아먹으라는 가르침이었다. 스승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시울이 젖도록 서운했다.

예수도 세상을 떠날 때 제자들에게 성령(얼나)에게 배우라고 했고, 석가도 제자들에게 법성(얼나,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했다. 나는 다석의 생존 당시 여쭐 것이 많아 편지도 많이 하고 숱하게 찾아갔다. 다석에게 제자 박영호는 성가신 구도자였을 것이다. 소나 염소를 길러보면 알겠지만, 새끼가 어미젖을 들이받는 것은 젖 잘 나오라고 하는 짓이다. 선생님에게 이해해 달라고 편지를 드렸더니, 회답 대신 강의시간에 내게 다가오더니, “뜸베질(소가 뿔로 닥치는 대로 들이받는 짓)은 저 위(하느님)에 대고 해야지 내게 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야. 하하하시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석은 하느님이 진정한 스승임을 일러준 것이다. 예수도, 부처도 똑같은 가르침을 줬다. 입으로 하는 말은 소용이 없으니, 하느님(얼나의 근원인 니르바나)의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이다. 예수와 부처는 세상적인 행복을 찾지 않았다. 내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땅의 행복은 일시적 기만일 뿐이다.

다석 류영모의 생애

다석 류영모 선생은 서울 출생으로, 한국의 개신교 사상가이며 교육자, 철학자, 종교가이다. 호는 다석(多夕)이다. 조만식, 김교신 등과 같은 세대로,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이현필 등의 스승이다. 다석(多夕)은 많은 세 끼()를 다 먹지 않고 저녁() 한 끼만 먹는다는 뜻이다. 그 자신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1890313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아버지 류명근과 어머니 김완전 사이에 맏아들로 태어났다. 5살때 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우고 6살때 홍문서골 한문서당에 다니며 <통감>을 배웠다. 10세에 수하동 소학교에 입학하여 2년을 다니고 다시 한문 서당에 다녔다. 12살 때부터 자하문 밖 부암동 큰집 사랑에 차린 서당에서 3년 동안 <맹자>를 배웠다.

 

15세 때에는 YMCA 한국 초대 총무인 김정식의 인도로 개신교에 입문하여 연동교회에 다녔다. 경성일어학당에 입학하여 2년간 일본어를 공부했다. 1909년 경기도 양평의 양평학교에서 한 학기동안 교사로 일했다. 1910년 남강 이승훈의 초빙을 받아 평안북도 정주 오산학교 교사로 2년간 근무했다. 1912년에는 기독교 사상가요 문인인 톨스토이를 연구하여 그 영향으로 기성교회를 나가지 않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짧은 소설들(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드러나듯이,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은 교회에 나가는 종교행사의 충실한 참여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삶과 복음을 이웃에 대한 자비, 정직한 노동, 양심적 병역거부, 악을 선으로 이기는 비폭력투쟁 등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이해했다. 일본 도쿄에 가서 도쿄 물리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수학하였다.

 

1915년 김효정과 결혼하였고, 이후 육당 최남선과 교제하면서 잡지 <청춘>'농우', '오늘' 등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19193.1운동 때에 이승훈이 거사 자금으로 기독교 쪽에서 모금한 돈 6000원을 아버지가 경영하는 경성피혁 상점에 보관하였다. 후에 이것이 적발돼 압수당했으며 류영모 대신 아버지 류영근이 체포되어 105일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21년 조만식의 후임으로 오산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1년간 재직하였다. 1928YMCA의 연경반 모임을 지도하기 시작하여 1963년까지 약 35년간 계속하였다. 1928년 이전에는 아버지의 경성피혁상점의 일을 도왔는데, 이후로는 아버지 류명근이 차려준 솜 공장인 경성제면소를 경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잡지 성서조선에 기고를 하였으며 이 일로 1942년 일제에 의해 종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57일 만에 서대전 형무소에서 아들 의상과 함께 풀려났다. 해방 후 행정 공백기에 은평면 자치위원장으로 주민들에 의해 추대되었다.

 

정인보, 이광수와 함께 1940년대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리기도 했던 류영모는 1921년 오산학교 교장을 지내나 이후 은퇴하여 농사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노자>를 번역하기도 했다. 기독교를 한국화하고 또 유, , 선으로 확장하여 이해했다. 그의 강의 중 일부는 제자들에 의해 남아 있고, 해설과 함께 나오기도 했다. 강의들은 순우리말로 되어 있으나, 기발한 표현이 많고 함축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학자들은 류영모의 종교다원주의가 서양보다 70년이나 앞선 것에 놀라고 있다. 그의 종교사상은 1998년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강의되었다.

 

제자 중에서 가장 아끼던 이는 함석헌이었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은 류영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러나 함석헌이 퀘이커로 종교적 외도를 한 것에 대해서 크게 나무라고 의절하였다. 류영모와 제자 함석헌의 사상은 20088월호 <기독교사상>에서 특집기사 왜 유영모와 함석헌인가?’로 소개되었다.

 

동서 사상을 아우른 창조적 생명 철학자류영모의 사상

다석 류영모 선생은 우리 근·현대사가 낳은 위대한 철학자다. 일상의 삶 속에서 이제 여기 이 순간의 삶에서 처음과 끝이고, 영원과 절대인 하느님을 모시고 이웃과 더불어 전체 하나의 세계를 이루려 했다. 그의 사상은 우리 전통 사상과 현대 사상의 결합으로서 함석헌의 씨알 사상, 민중 신학, 종교 다원주의 사상, 토착화 신학, 생명 철학의 선구이다. 신학과 철학, 과학과 윤리를 통하고 몸과 마음, 이성과 영혼을 통전(通典)한다. 우리 사회는 동양의 전통 종교 문화를 지니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깊이 받아들이고,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고, 오랜 식민지 생활, 남북 분단과 전쟁, 군사 독재를 거치면서도 급격한 산업화와 세계화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사상계는 해방 후 일제의 식민 통치에 저항하면서 닦아 낸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민족사상과 단절됨으로써 그 뿌리를 잃고 말았다. 이제 우리 근·현대사의 값진 경험으로부터 인문학적 부흥이 일어나고 동서 문명을 아우르며 세계 평화 시대를 여는 철학이 나와야 할 때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주체성과 세계 개방성, 평화 지향성은 세계화 시대에 상생과 평화의 철학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다석 류영모는 우리 고유의 천지인(天地人) 합일(合一) 사상, 기독교 사상 그리고 생각을 중심에 놓는 서구 근대 철학을 결합함으로써 동서고금을 통합하는 현대적 사상을 형성했다. 그의 사상은 두루 통하는 종합적인 한국 사상으로 우리 사상의 뿌리를 밝혀 준다. 동서 문화를 아우르는 다석의 철학은 지구화와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상생 평화의 세계를 지향해야 하는 인류에게 자극과 영감을 줄 것이다.

다석은 생각을 '신과의 소통과 연락'으로 보았다. 다석에게 신, 하느님은 '절대 하나'이고 '전체 하나'이다. 다석 사상의 핵심과 목적은 '하나'를 추구하는 데 있다. 그는 단일 허공, 하나의 세계는 인식론적으로 "깜깜한 세계"라 했고 "하나"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라고 했다.

다석에게서 생각은 앎(지식)을 넘어서 모름에 이르는 것이다. 그는 '모름직이'란 말을 '모음을 지킴'으로 풀이한다. "사람은 모름을 꼭 지켜야 한다." 모르는 것을 지켜야 아는 것, 알 수 있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다석 유영모190~91, '7.생각: 존재의 끝을 불사르며 위로 오르다' 중에서)

 

다석 유영모는 한국 근현대사의 철학사상가 다석 류영모 선생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이다.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 전통 사상과 현대 사상을 결합한 종교 다원주의 사상과 생명 철학의 선구자이자 한국적 사상을 만들어 낸 다석의 생애와 사상의 배경을 보여준다. 다석 유영모는 다석 사상의 전반적인 특징과 그의 사상이 철학계에서 외면당하는 이유, 삶과 사상을 네 시기로 구분해 설명한다. 또한 삶과 현실의 문제인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과 생명과 정신을 완성한 밥 철학과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소개한다. 신앙 체험 속에 맞게 된 기독교 사상과 함께 그를 바탕으로 한 동양 종교와의 사상 통합을 하게 된 계기와 다석 사상의 현대적 의미와 상생평화통일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 등도 함께 수록했다 

이 책은 다석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해설서이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생애와 그의 사상적 특질이 형성된 배경을 밝히고, 그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다석의 정신과 사상을 오롯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정말 장애가 되는 것은 그의 글귀가 난해하다는 데 있다기보다 그의 혼과 삶의 세계를 가늠해 보고 헤아려 보는 정신적인 안목과 체험이 부족한 데 있다. 그의 사상은 동서 문명의 만남과 우리 역사와 문화의 큰 흐름 속에서 보아야 한다.

 <수암 (守岩) 문윤홍·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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